웨하스 의자 + 반짝반짝 빛나는 + 호텔 선인장 + 낙하하는 저녁 + 울 준비는 되어 있다 - 에쿠니 가오리 전5권 세트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에쿠니 가오리는 요시모토 바나나,야마다 에이미와 함께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인기있는 일본 여성 소설가이다.우리나라에선 츠지 히토나리와 공저한 <냉정과 열정 사이>로 갑자기 확 알려졌다고 하는 게 맞지만.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녀의 작품들을 좋아하지 않는다.읽고 나면 한없이 나른하게 슬퍼지기 때문,그래서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해지니까.그녀의 모든 작품에는 이런 고요한 애잔함과 슬픔들이 배어 있다.글들에 등장하는,어딘가 감정의 한부분이 비틀려있는 듯한 여성 주인공들은 슬프고 힘든 사랑을 하고,그 사랑 외에는 딱히 무언가에 집착하지 않고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다.그녀의 소설 속 현실은 묘한 비현실성을 띤다.이야기가 끝나도 희망찬 미래가 보이는 것은 아니다.그래서 나는 또 서글퍼진다.

간결하면서도 투명하고 잔잔한 느낌의 섬세한 표현들,감각적 묘사, 심리 표현들은 멋지지만 이 애잔함에 휩쓸리는 것이 싫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 읽냐 하면,그건 또 아니다.술술 읽히니 집어들기는 어렵지 않으니까.그리고 재미도 있는 편이니까.20대와 30대 여성들이 주 독자층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소담출판사
나의 점수 : ★★★★

새로운 형태의 삼각 관계.유미리의 <루주>와 비교해 보자.

그녀의 작품 중(내가 읽은 것들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알콜 중독증인 쇼코는 게이인 남편 무츠키와 서로의 부모님들을 안심시키고 의사가 맞아 결혼을 했다.보통의 부부와는 다르지만,둘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낸다.남편의 애인 곤과도 잘 지내는 편.하지만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지 세 사람이 사는 듯한 관계는 불안하다.혼란이 찾아오고,셋은 어떻게 될까.

(위에 언급한 비교작품인 유미리의 <루주>도 한 남자를 사이에 둔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동성애인이 있던 한 남자는 주인공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서로를 인정하는 기묘한 관계가 시작되지만 누구도 편하지 않다.결국 여성은 그를 원래 애인에게 보내주기로 하지만,그는 자살하고 만다.유미리의 딴 작품들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다.)


<낙하하는 저녁>도 한 남자와 두 여자,셋이 등장한다.애인 다케오와 살고 있던 리카는 어느 날 그에게서 헤어지자는 말을 듣는다.(그 말을 했던가? 어쨌든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그는 리카와 헤어진다)그의 새로운 여자 하나코는 무척 매력적이고 알 수 없는 여성이다.여러 남자들을 만나지만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는 누구에게도 잡히지 않는 여자.태연히 리카의 집에 들어오고 그의 이야기를 하고,두 여자는 잠시 같이 살기도 한다.그녀를 웬지 미워할 수가 없는 리카는 이별을 인정할 수 없고,15개월 동안 천천히 이별을 한다.

<웨하스 의자>는 우산과 스카프 디자이너인 한 여성이 유부남과의 오랜 연애를 하다가,그 사랑으로 인해 부서져가는 내용이다.조용하게 하나씩 하나씩 망가져 가는 여주인공. 작품 중에서도 상당히 슬프고 힘든 느낌.

<하느님의 보트>는 젊은 시절 한 번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그가 찾아올 것,찾아내줄 것만을 기다리며 여행을 다니는 모녀의 이야기이다.작가 자신도 말했듯이,어머니 요코의 사랑은 조용한 광기이다.한 곳에 몇 년 이상 결코 머무르지 않으며,항상 다음에 떠날 곳을 찾으며 살고 있는 것에 익숙해지려 들지 않는 요코.그녀의 삶은 오로지 그 남자-딸 쇼코의 아버지-로 인해 지탱되고 있다.조용하고 어른스러운 딸은 어머니와 함께 그런 삶을 살아갔지만 ,나이가 들자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현실을 보지 않는 그녀의 삶에 편입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며 기숙사로 들어간다.요코는 16년 만에 도쿄로 돌아오고,이후.... 모녀의 관계,심리 묘사가 탁월한 책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사실 그녀의 작품 중에서도 상당히 싫어하는 편이다.역시 조용하고 쓸쓸하지만,어딘지 조금 다르다.함께 쓴 소설이라서일까? 젊은 시절 사랑했던 연인과 헤어진 여자는 악세사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새로운 애인,좋은 사람과 함께 살고 있지만 아직 옛애인을 잊지 못했다.그와 사귀던 시절 10 년 후에 이탈리아의 어떤 곳(탑인가?)에서 만나기로 한 둘의 약속.그 날이 다가오자,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운명의 날이 다가오고,등등.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는 에세이집이다.소설이 아닌 수필도 쓸쓸한 애잔함을 깔고 있으며,작가와 남편의 삶도 그렇다.아아 이런 사람이니까 이런 글을 쓰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 두세 가지 작품이 더 있는데,사실 가장 읽어보고 싶은 나오키상 수상집인 <울 준비는 되어 있다>와 세 남자의 우정 이야기인 <호텔 선인장>을 읽어보지 못했다.이 작품들을 읽고 나서 그녀에 대한 평가가 바뀔지는 모르겠지만,일단 책소개는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섬세한 묘사와 쓸쓸하고 애잔한 사랑,그것이 나의 에쿠니 가오리 한줄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