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하성란 지음 / 창비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하성란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몇몇 중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작가다.특히 한국 작가의 비율은 극히 낮아지는데,권지예나 박민규,성석제보다는 애호도 순위에서 한 랭크 위라고나 할까.포스팅이 늦은 이유는 그의 모든 작품을 다 읽고 나서 쓰고야 말겠단 고집을 계속 부려왔기 때문이다.아직 <옆집 여자><곰팡이꽃>과 단편 몇 개를 읽지 못했는데,이러다간 도대체 언제 쓰게 될지 몰라서 읽은 대여섯 작품만으로 일단 해보기로 했다.뭐 또 읽고 또 쓰지 뭐.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하성란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나의 점수 : ★★★★

한국소설 중 꽤나 마음에 들었던 작품.

하성란,맘에 들어!!

오랫동안 라이프로그를 차지했던,그녀의 가장 최신 개인 소설집이다.사실 그 이후에도 많은 문학상 수상작품집들에서 그녀의 단편을 찾아볼 수는 있으나(물론 다들 수작이다)일단 이 포스팅에선 개인 소설만을 염두에 두기로 했다.사실 마이크로 묘사로 유명했던 그녀의 경향이 <삿뽀로 여인숙>근처에서 슬슬 바뀐다 싶더니 거의 이제 정착한다는 느낌이다.사실 초기작인 <루빈의 술잔>에서 시작하는 것이 정석이겠으나,그 책은 대중적으로 접근하기가 상당히 힘들기 때문에,일단 가장 흥미있는 걸로 그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푸른수염부터 나가기로 했다.약간 비굴하게도 느껴지지만 좋은 작가를 소개하기 위해서 그정도야 감수해야지.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는 동명의 단편소설을 대표로 내건 단편집이다.모든 작품들이 하나같이 깊이와 재미를 담고 있으며,사회적인 문제들과 개인의 삶의 연관에 대해 이야기한다.그녀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 현실에 대한 직관과 웬지 희미한 듯한,하지만 현실의 사람들인 그녀의 인물들.내가 좋아하는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들과 딱 맞는 단어의 사용.그리고 무엇보다 발전한 점은,"재미있다"이다.

솔직히 말해 <삿뽀로..>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마이크로 묘사를 기반으로 한 현대인의 삶,그리고 생각을 사람들에게 던져준 좋은 순수문학 작가였지만 재미는 없었다.하지만 <내 영화의 주인공><삿뽀로 여인숙>등에서 그녀는 점점 자신의 스타일을 바꾸기 시작했다.하지만 이때만 해도 이 변화에 그녀 스스로 적응이 힘든 듯했고,어정쩡한 수준의 글에 약간 실망도 했었다.하지만 이제 그녀는 재미와 작품성의 두마리 토끼를 잡은 듯하다.

두말할 것도 없이 재미있으며,인생과 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들의 향연.표제작 <푸른수염의 첫번쨰 아내>는 푸른수염의 마지막 아내 대신,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는 어떻게 해서 죽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을 중심으로 풀어나간다.컬트영화적인 요소와 미스테리적 요소들로 흥분과 기묘함이 뒤섞인 글이라니,옛날의 그녀와는 딴판이지만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시선만은 변하지 않았다.그 외에도 화성 씨랜드 참사를 다룬<별 모양의 얼룩>이라든가,총기난사 사건을 다룬 <파리>라든가.그녀의 소설의 중심은 사회 속에서 부서지고 흔들리는 <인간>이다.나는 항상 인간을 다루는 소설이 좋고,소설가가 좋다.

읽은 것은 이 외에 <내 영화의 주인공><루빈의 술잔><삿뽀로 여인숙><눈물의 이중주><식사의 즐거움>인데,이 중 전화점이랄까 분수령이 되는 두 작품에 대해서만 더 말해 보자.

루빈의 술잔
하성란 지음 / 문학동네
나의 점수 : ★★★★

그녀의 초기 단편집 <루빈의 술잔>.지금의 그녀와는 천양지차다.지루할 정도로 꼼꼼한 마이크로 묘사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고의적으로 깊이를 제거한 꼼꼼하고 치밀한 묘사,주관이 극도로 자제된 문장들.이런 묘사를 만나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새로운 경악으로 다가온 문체 뒤에 숨겨진 것.그것들로 표현되는 현대의 서걱거릴 정도로 건조하고 지루한 도시인의 일상.소통의 불가능성.그리고 좌절.당시 김영하나 배수아 같은 새로운 감각을 앞세운 신예가 활동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자신만의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준 셈이다.

그녀의 이런 스타일은,최근의 속도감 있는 소설들에 익숙해진 많은 사람들의 눈과 마음으로는 무척이나 당혹스럽고 어색하다.그래서 아마 끝까지 다 읽는 데에는 상당한 의지와 인내와,거부감을 이겨내는 것이 필요할 듯.심리가 아닌,그저 풍경과 사물들에 대한 지독할 정도의 묘사들은 차라리 소리 없는 울음처럼 다가온다.그녀의 인물들은 사물과도 같이 지루하고 정적이다.타자와의 관계가 없는 인물들.그들은 저항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표제작 <루빈의 술잔>은 자신과 주민등록번호가 같은 여자를 알게 된 한 여자의 이야기다.주인공은 그 여자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그리고 그녀가 없는 동안 그녀의 집에 들어가고,그녀 근처의 사람들을 만나고,물품들을 사용한다.하지만 그녀는 주인공의 존재를 알게 되고,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바꾸게 되면서 이 기묘한 동거,그리고 그녀와 주인공의 관계는 바뀐 비밀번호와 열리지 않는 문으로 차단되고 만다.

이 외에도 그녀의 데뷔작인 신춘문예 당선작인 <풀>과 <두 개의 다우징><내 가슴속의 부표>등이 인상적이었다.그녀의 이런 초기성향은 솔직히 재미는 떨어지고 가끔 지루하기도 하지만,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이란 점(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것)에서 가장 큰 장점이랄까를 가지고 있다.그녀의 최신 경향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그녀의 본질 자체가 바뀌지는 않았으므로)가끔 이런 그녀의 옛 글들이 그리워지곤 한다.그녀만의 스타일을 접한다는 면에서,<푸른수염..>다음으로 추천하는 글.


삿뽀로 여인숙
하성란 지음 / 이룸
나의 점수 : ★★★★

예전의 스타일이 상당히 사라졌음.발전일지도 모르지만,난 옛날이 더 좋았는데.

<삿뽀로 여인숙>은 그녀의 과도기적 작품이다.마이크로 묘사에서 벗어나 새로운 스타일로 가는 중간의 글.<내 영화의 주인공>의 허술함보다는 훨씬 나아서 과도기의 추천작이라면 이것.그런데 이 작품은 묘하게 권지예의 초기작과 닮은 분위기를 풍긴다.

주인공 진명은 쌍둥이 남동생을 교통사고로 잃은 후 끊임없이 달린다.그를 잊기 위해 노력하지만 언제부턴가 "와타시노 나마에와 고스케데스"란 환청이 들려온다.그를 찾아야겠단 생각이 든다.하지만 그 와중에도 남동생 선명을 사랑했던 여자 미래,진명을 사랑하는 남자 김정인 등과의 기묘한 관계를 이어간다.이들을 잇는 고리는 바로 삿뽀로.마침내 그녀는 삿뽀로 여인숙을 찾아,고스케를 찾아간다.그리고 결말.

사실 조각난 글들의 모자이크식 이야기같은 느낌도 늘고,독자엑 상세한 설명은 해주지 않아 조금 뭔소린가?싶기도 하다.하지만 읽고,다시 읽고,..하게 된다.마이크로 묘사는 덜해졌지만 구성의 묘와 특유의 건조한 분위기는 살아있다.이상한 매력이 있는 책이다.

그리고,하성란을 추천한다.한국소설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최소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재미있게 읽었다면,최근 활발히 활동하는 한국 작가에는 김영하나 배수아,김훈,성석제나 은희경만 있는 게 아니니까.하성란이나 권지예,심윤경 등은 또 다른 스타일을 꾸준히 밀고 나가고 있다.여성 작가들에 대한 비판도 알고 있지만,한번 읽어본다 해서 나쁠 것도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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