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떨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작가에 대한 추천사(?)라면,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좋아한다면 거의 취향에 맞을 듯.

그리하여 지금까지 읽은 그녀의 작품은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오후 네 시>,<적의 화장법>,<두려움과 떨림>,<시간의 옷>이렇게 다섯 작품.(시간의 옷은 마지막 20쪽쯤 남기고 도서관 문이 닫혀서 덜 읽었지만)

그런데,하나같이 스타일이 주욱-일정해서,뭐 다른 것도 이럴 테니 꼭 안 읽어도 상관은 없겠지만,글솜씨나 재미나 문체 등등은 맘에 들어서 아무래도 구할 수 있으면 다시 몇 권 정도는 더 읽을 듯.

그녀는 아직 서른 정도의 젊은 작가로서,프랑스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대중적 인기와 어느 정도의 문학적 소양을 인정받고 있다.<바나나 신드롬>처럼 <노통 신드롬>도 몰고 다니는 모양.또 굉장히 다작을 하는 작가.열일곱 살 때부터 지금도 쉬지 않고 글을 쓰고 있으니.지금까지 번역된 것만 해도 한 열 권 되는 걸로 아는데.

유쾌하고 재미있지만 풍자적이고 인간에 대한 진실한,때로는 추악할 정도로 솔직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평범한 사람이 비현실까지는 아니지만 독특한 상황에서 독특한 사람들을 만나며 겪는 이야기나,약간 비현실이 섞인 이야기가 주조.

노통은 프랑스 어와 벨기에 어가 공용어인 벨기에 인으로(그래서 그녀의 소설이 항상 프랑스 어로 쓰여지고,도서관 프랑스 소설칸에 꽂혀 있는 건지),어렸을 적부터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문화를 접했다고 한다.특히 일본에서의 생활이 굉장히 기억에 남았고 그녀에게 큰 영향을 끼친 모양으로,일본에 대한 이야기들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일본이 배경인 소설도 읽은 다섯 권 중에만 두 권.

그래서,책 얘기는 안 하냐?라고 하신다면 뭐 해야지.하지만 워낙 소설들이 일정한 스타일이 확립되어 있어서 작품 하나하나보다는 작가인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더 중요한 것 같이 생각되기에.




그래도,<두려움과 떨림>은 내가 읽은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왜냐하면,뒤끝이 가장 덜 찝찝했으니까.아까도 말했듯이 그녀는 한없이 유쾌하고 탄복시키는 대화,이야기와 유머,위트를 선사하고 명확 적절한 단어들을 사용한 군더더기 없는 문장들을 보여준다.멋진 캐릭터들과 즐거운 사고의 반전과 일탈을 보여준다.강하지만 거북하지는 않은 자의식을 표현하지만(왜냐하면 모든 것이 그녀의 시선으로 각색되어 보여지니까),그래서 그녀의 글을 읽는 것이 즐겁기도 하지만,

인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주 적나라하게.그래서 그녀의 작품들은 뒤끝이 그리 좋지는 않다.풍자와 유머로 포장되었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추악한 일면들을 가진)인간이니까.특히 오후 네시나 적의 화장법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비일상적 상황,캐릭터를 만나서 변화하고,아니 변화했다기보다는 지금까지 몰랐거나,무의식적으로 숨겨왔던 자신을 깨닫는 것은 상당히 불편한 감정을 안겨준다.드러나는 것은 <몬스터>적인 일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살의나 강간의 욕구일 수도 있고(오후 네 시),자만심과 우월감,자기합리화일 수도 있고(시간의 옷),집단심리에 휘몰린 비굴함일 수도 있다(두려움과 떨림).뭐 그 외에도 많지만 그녀는 항상 작품들에서 그런 인간을,본성을 보여준다.그녀의 이야기속에 담긴 것은 인생이라기보다는 인간이다.

그렇지만,이것은 칭찬이다.물론 그런 면이 거북스러움을 안겨주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없었다면 그녀의 글은 그냥 약간 지적인,위트와 기지,발상의 전환으로 유희를 안겨주는 것에 머물렀을 테니.물론 그렇게 큰 문학성을 느낀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녀의 글이 한번 읽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했다.물론 내가 읽지 않은 모든 작품들까지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아차,<두려움과 떨림>이야기를 해야지. 이 글은 홀로 일본에 온 벨기에 여성이(100%는 아니라도 상당히 자전적인 이야기인 듯하다)취직한 일본 회사에서 겪는 이야기다.어렸을 적 살았던 일본에 대한 동경 때문에 일본까지 왔지만,회사는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철저히 일본적인 가치와 집단 속에서 그녀는 외톨이가 되고,근처의 사람들의 행동 또한 철저히 배타적이다.

이야기는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데,주인공의 눈으로 본 상사들과 일본,그리고 회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열하는 식이다.굉장한 나락의 상황까지 떨어져 가지만 그녀는 모든 상황을 오히려 유쾌하게 보려고 한다.그녀가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법과 그녀가 보고 겪는 일본 사람들(상사들)에 관한 이야기는 굉장히 재미있다.독특한 사고방식 때문에 신선하기도 하고.그래서 그런 상황의 이야기이지만 읽으며 그리 우울하거나 어두워지지 않는다.마지막까지 그렇고,이 글은 상당한 해피 엔딩(?)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도 여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본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그나마 덜 어둡다거나 강도가 약하다고나 할까.그래서 뒤끝이 가장 깔끔했던 듯 싶다.
<오후 네 시>는 평온하던 생활에 찾아온 사나이,오후 네 시면 항상 집을 방문하는 사나이로 인한 주인공의 변화에 대한 야악간은 섬뜩한 이야기.
<시간의 옷>은 머언 미래로 잡혀간 작가가 미래에 대해서 알아가며 미래인과 토론하고,울분을 토하고,화를 내고,뭐 별별 감정을 뱉어내다가,미래인을 변화시키고,아마 돌아오는?(덜 봤으니까)이야기.미래인들의 관념과 사고가 상당히 신선하고 독특하다.

<적의 화장법>은 공항에서 자신에게 달라붙는 한 떠벌이 사내를 마주하게 된 비즈니스맨의 이야기다.개인적으로 두번째로 마음에 들었던.역자가 말하길 읽으며 황당하다가-역겹고-섬뜩하고-충격적이고-반전을 느꼈다는데 순서대로 따라가며 느꼈다.반전이 상당하긴 하지만 ,역시 척 팔라닉의 <파이트 클럽>이 생각나.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은,세 살 어린아이의 세상에 대한 유쾌한 이야기인데 이런 패턴은 전에도 상당히 본 적이 있어 좀 시시.

뭐 여기까지 했으면 당연히 비판도 있어야지.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건 너무 스타일이 똑같다는 거였다.물론 주인공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지만,글쓰는 스타일과 주인공의 사고방식이나 성격에 묻어나는 작가가 너무 한결같아서.그래서 몇 개만 봐도 줄줄 꿰겠고 더이상 안 봐도 별 문제 없을 듯하고.처음엔 신선한 발상과 기지에 넘치는 문체가 상당히 좋아도 다들 비슷하니 익숙해지면 별 거 아닌 걸로 보여 버리고.순서 없이 뒤죽박죽으로 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글쓰는 데 큰 발전이 없고.작품별로 수준차가 꽤 있고.뒤끝이 그리 좋지 않고.

음..이런 단점들이 있지만,위에 열거한 장점들도 물론 많으니까,좀 인기 있다고 해서 웬지 싫어!이러면서 밀어버리기엔 좀 아깝다.한번은 읽어볼 가치 있음.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건<두려움과 떨림>,<적의 화장법>,<오 후 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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