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이 만난 레닌 - 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슬라보예 지젝.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레닌 외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양인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참 읽기 힘든 책이다.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참 읽기 힘든 책이었다. 러시아 역사에 대해서도, 동유럽 사회주의에 대해서도 문외한이 내가 읽기에 말이다. 배경지식이 없다는 건 참 이럴 때 속수무책일 때가 많다. 내가 무식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그래도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건 있다. 바로 첫번째가, 사회주의=소비에트권력+권력에의 접근가능성이라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소비에트가 권력을 얻어야만 한다. 레닌이 그렇게도 외쳤던 모든 권력은 소비에트로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권력층은 모든 접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교육일 수도, 의료일 수도, 그래서 레닌 이후 스탈린독재가 나왔는지도 모른다.  

둘째는 이것이 첫번째보다 더 중요한 건데, 바로 다시 레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루어지는 반자본주의적 모든 혁명적 운동이 자본주의로 종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파시즘이 자본주의 내파적 파열이듯이, 모든 대중적인 운동은 자본의 큰 아가리로 흡수되고 있다. 노동조합이 기업가와 협력을 하는 것도 자본주의에 종속하는 한 가지 경우라 할 수 있다. 노동계급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가 되어야 하는데 노동계급이 계속해서 자본의 이윤에 속박당하는 것이다. 이럴 때 레닌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거다.  

우리 눈앞에는 매일 혁명적 상황이 펼쳐진다. 중요한 건 이러한 열정을 자본주의로 안정화시키지 말고, 충격으로 정신적 외상으로 만들어 대중적인 지지와 공감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때 중요한 것이, 조직형식이라는 당이다. 대중적인 공감을 당이라는 외부성이 정치적인 올바름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레닌으로 다시 회귀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란 비계급이며, 보편적 계급이며, 모든 이해관계를 초월하였기에 계급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유일자가 된다. 하지만 유아적 공동체로 회귀하는 건 소박한 환상에 그칠 때가 많다. 그래서 국가라는 환상의 공동체가 민족을 이유로 우리를 아직까지 규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이었지만, 그래서 다시 한 번 더 읽어봐야하겠지만, 선뜻 다시 읽게 되지는 않을 성 싶다. 그래도 책꽂이에 버젓이 꽂혀있는 걸 보면 마음은 흐뭇하다. 내가 저 두꺼운 책을 다 읽었지? 하는 만족 아닌 만족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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