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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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단순하다. 워낙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밀란 쿤데라라는 이름이 나오면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도는 사람들이 많았다. 평가도 다양했다. 너무 어렵고 심오한 책. 사랑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해준 책.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준 책 등등. 과연 어떤 책일까?



2.


 저자소개를 읽어보니 체코사람인데 프랑스로 이민을 한듯 하다. 체코 출신 작가는 처음이다. 목차를 살펴보니 독특한 점이 발견된다. 1장과 5장, 2장 와 4장 목차가 동일하다. 흠, 이건 교차대구법인가? 그렇다면 들어와서 3장에서 방향을 틀겠군. 그리고 진짜는 6장에서 나오겠군. 제목과는 다르게 시작부터 뭔가 가볍진 않다. 첫 장 펼치자 영원회귀라는 단어가 나온다. 허허. 시작부터 영원회귀라니. 대충 어떤 내용일지 짐작은 된다. 확실하다. 가벼운 책은 아니다.



3.


 시작부터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그는, 이러는데 누가 누군지 설명을 안해준다. 읽다보니 대충 짐작은 간다. 눈치밥으로 읽어야되는 책인건가? 당을 많이 써야될 것 같은 책이다. 초콜릿을 좀 꺼내와야겠다.



4.


 이 책은 7장의 챕터로 이루어졌다. 각 장마다 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구성이다. 1장은 토마시의 이야기이다. 2장은 테레자의 이야기이다. 3장은 사비나와 프란츠의 이야기이다. 4장은 다시 테레자의 이야기, 5장은 다시 토마시의 이야기이다. 다섯 개의 챕터가 하나의 스토리를 엮고 있어서 사실상 하나의 장이라고도 볼 수 있다. 6장은 해설, 7장을 결론에 가깝다. 사실 이 책은 3파트로 이루어진 책이나 다름없다.



5.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가벼운 연애소설로 읽을 수도 있다. 아니면 냉전시대의 허무주의라는 시대상을 표현하는 소설로 읽을 수도 있다. 삶의 당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고찰을 하는 철학서로 읽을 수도 있다. 아마도 이게 이 책의 매력이겠지.



6.


 가벼운 연애와 무거운 연애- 무엇을 추구하는가? 그냥 적당히 즐기다 헤어지는 연애가 좋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두 사람의 영혼이 교감하는 진지한 만남을 추구하는지. 그런 질문을 던지는 소설로 읽을 수 있다.

 아니면 시골 흔녀가 도시의 능력있는 존잘남이지만 주변에 여자가 들끓는 바람둥이 남자와 운명처럼 만나 결별과 재회를 반복하다 결국 나만 좋아하는 남자로 길들이는 신데렐라 소설로 읽을 수도 있다.

 이것저것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남 눈치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다 하면서도 챙길 건 다 챙기는 알파걸의 삶에서 짜릿한 쾌감을 맛볼 수도 있다. 능력남들을 마음껏 꼬시고 휘두르다가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팜므파탈의 경험을 대리만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7.


 조금 더 들어간다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대립하는 냉전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 시대를 바라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도 던져 볼 수 있다. 4인의 인물들이 벌이는 치정극 속에서도 중간중간 시대상을 날카롭게 묘사하는 장면들이 계속 등장한다. 기자들, 무장투쟁, 서명운동, 그리고 전쟁.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별거 아닌 것인가? 무거운 것인가 가벼운 것인가?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책을 단순하게 연애물로 볼 수 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오늘날 냉전은 해소된지 오래이고 공산주의는 역사책에서나 등장하는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고 있는 시대임은 여전하다. 다만 그 이데올로기가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무언가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신념을 무겁게 받아들이냐, 가볍게 받아들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밀란 쿤데라가 던지는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8.


 더 깊이 들어간다면, 인간 존재 자체의 의미란 무엇인가? 라는 고찰로도 이어진다.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인가? 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생을 가볍게 대해야 하는가 무겁게 대해야 하는가? 아니, 애초에 그 선택에 우리의 의지가 작용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우리의 의지대로 삶을 가볍게도 무겁게도 대할 수 있는 것인가? 복잡한 질문이다. 아마 이 대답에 정답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 저자의 대답은 7장에 나타난다. 그리고 아마도 이게 밀란 쿤데라가 이 책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9.


 제대로 소화하려면 상당한 배경지식을 요하는 책인 것 같다. 또 상당히 많은 철학적 고찰을 해야하는 책이다. 한번 읽어서는 제대로 소화하기 어려운 책임은 분명하다.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배치한 소설 내부의 장치도 상당히 많이 보인다. 일회독은 스토리를 따라가기 위한 독서였다면, 재독을 통해 저자의 스토리 뽑아내는 능력을 살펴보며 하나하나 감상하는 것도 즐거울 것 같다.



10.


 개인적으로 저자의 결론에 완전히 동의하진 않는 편이다. 동의하는 부분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7장에서 전개되는 플롯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든다. 무겁지 않고서는 가벼워질 수 없고, 가볍기 위해서는 무거워져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결국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같은 말이 된다. 가장 가벼운 삶과 가장 무거운 삶은 결국 같은 삶이 되지 않을까? 이 책을 쓴지 거의 40년이 되어가는데 저자는 여전히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아니면 생각의 변화가 있었을까. 저자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진다. 다음 책은 무의미의 축제를 읽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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