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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망루
배이유 지음 / 알렙 / 2023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밤의 망루는 8가지 주제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도서이다. (△검은붖꽃 △홍천 △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밤의망루 △옛날에 농담이 있었어 △소리와 흐름 △멈춘다 흐른다)
단편소설을 쓴 작가들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장편소설이 나의 호흡과 더 맞다. 장편소설보다 짧은 분량에 다양한 내용을 압축해서 표현해야 하고, 주제를 가지고 써야 하므로 장편소설보다 단편소설을 쓰는 행위가 더 힘들겠다는 생각은 든다.
나의 머리는 이과에 훨씬 가깝다.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국제경영을 전공했다. 나의 뇌는 단순하다. 그래서 이야기 전개 방식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보다 서서히 진행돼 구체적인 상황이 설명되고 생략되는 부분이 적은 장편이 더 나의 호흡과 맞다. 그래서 단편소설을 사랑하고 단편소설을 잘 이해하고 읽는 사람들이 사실 부럽다. 단편소설은 이따금 시도하지만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다.
밤의 망루 책 역시 나에게 쉽지 않은 책이었다. 그러나 몇 번 곱씹어 계속 읽어볼 소설인 것 분명하다.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면서 여러 번 읽은 내용들이 많다. 다만 나의 낮은 이해도와 무지가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작가가 잘 쓴 소설을 잘 이해 못 한 나를 보면서 더욱 책을 읽고 단련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여러 단편 중 나는 ‘홍천’과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의 단편이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홍천 단편이 더 내게 다가왔다.
서로 낯선 사람들이 자살을 위해 함께 만나 홍천으로 떠났다. 탁의 자동차를 타고, 미아, 제리, 본 네 사람은 각자의 삶의 고민으로 인해 자살을 결심한 듯했다. 운전했던 탁은 여러 번의 사업 실패와 이혼을 통해 굴곡진 삶을 살았던 사람으로 느껴졌다. 미아는 어린 자식을 엄마 맡기고 자살하기 위해 낯선 사람들과 떠나는 길 위에 동참한 듯했다. 제리는 직장 상사의 폭언 등 삶에서 자신의 하고 싶은 말들을 뱉어 내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것들이 쌓이고 쌓여 내적 상처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본은 외국에 입양과 파양 그리고 다시 입양을 반복했던 사람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힘들었을 사람으로 느껴졌다.
이들은 자살하기 위해 강원도 홍천으로 떠났다. 그들이 도착한 숙소에서 자살하기 위해 행동으로 옮기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식욕으로 우선 맥주, 냉동피자 등을 먹는다. 연탄불을 피웠지만 순간 탁의 말에 그들은 자살을 위한 행동을 멈춘다.
“바로 옆의 내린천이 래프팅으로 유명하답니다. 지금이 하기 좋은 계절이래요. 나, 너 우리.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하루를 선물하는 건 어때요.” -52p
이 말 때문에 본을 제외한 그들은 자살에서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온다. 이 단편을 읽으며 그들이 삶을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을지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팠다. 자살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외로웠을까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자기 생각과 아픔을 들어줄 사람, 그저 비판하지 않고 그대로 안아주고 믿어줄 단 한 사람만 있었더라면 그들은 자살까지 결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회가 언젠가부터 점점 각자도생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서글프다. 집단적인 문화를 강요하는 것도 나쁘지만 개인주의에 각자도생까지 요구하는 사회가 되고 있는 것 같아 무섭다. 코로나 전부터 1인 창업을 시작해 2021년 폐업까지 나는 개인적으로 조직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다시 2022년부터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바뀐 사회문화에 적잖이 당황했다. 2017년 말까지 조직 생활 후 2022년 공백 속에 사회는 많이 바뀌었다. 코로나 영향인지, 아니면 시대적 변화의 영향인지 당황스러웠다. 아니면 지금 내가 속한 조직이 조금은 다른 형태의 조직일 수도 있다.
이런 날로 심해지는 사회라고해도 고민하고 있는 한 개인의 목소리를 적어도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극한까지 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살을 하려고 모인 네 명이 래프팅으로 하루를 선물한 그 하루 덕에 그들은 다시 일상의 삶을 돌아갔으니 말이다.
한번 읽을 때는 잘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두 번 읽으니 더 이해가 잘 되었다. 단편은 한번 읽은 소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단편을 잘 이해하려면 한번 읽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읽어야 작가의 글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편보다 짧은 길이의 단편을 쓰려면 오히려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용이 압축적이면서 주제를 담기가 쉬운 작업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밤의 망루의 여러 다른 단편을 틈틈이 더 읽어봐야겠는 결심을 한다.
“그거 알아요?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정말 내뱉고 싶은데 말이 되어 나오지 않을 때 얼마나 답답한지. 용기와 관련된 것일 거예요. 나는 비겁하고 용기가 없었어요. 상대방의 급소를 말로 치고 싶은데, 머리통을 날리고 싶은데 내 말이 총이 되지 못하고 그만 꼬리를 내려버리죠. 상대가 불편해하거나 싫어할 말은 조금도 하지 못하고 소심하게 눈치를 봤던 거죠.
저항할 줄 모르는 말들이 가슴속에 꽉 들어찼는데도 그 말이 벽에 갇혀 뚫고 나오지 못하고 압력으로 팽창해 있을 때 지독한 고통을 느껴요. 쏟아지는 폭언 앞에서 대항할 그 한순간의 비명 같은 말이라도 쏟아내고 싶은데 도저히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할 때, 해야 한다는 의지와 다르게 더 깊숙이 안으로 들어가는 내 말이 얼마나 답답하고 바보 같은지, 그거 알아요.
그해 여름에도 내 안에 울분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아 3년 전인가. 그 여행에 동행했던 건 약간의 즉흥성도 있었어요. 나를 억누르던 널빤지를 부숴버리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니 나를 똥째로 깨부수고 싶었어요. 해머로 내리치듯. 똬아!” - 39p
위문장이 요즘들어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1인 창업을 하면서 전혀 돈을 벌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고, 단순한 기간제 일자리로 하루 6시간 정도나 8시간 했지만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단순한 일이었으니까. 그때의 기간제와 지금의 계약직은 다르다. 계약직인데 정규직처럼 일을 시키고 월급은 적다.
1인 창업을 접고 일자리를 구하면서 마흔이 훌쩍 넘은 나는 기존에 했던 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고, 지금까지 정규직으로 일했던 일자리는 낼 수 없었다. 그나마 나이를 잘 적지 않는 계약직 자리나마 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의 경력을 인정해 줄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아 가장 낮은 직급의 자리로 지원했고, 운 좋게 합격했다. 내가 선택한 삶이지만 가끔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점점 뒤로 가는 이 인생이 미치게 화가 날 때가 있다.
지금의 나는 홍천의 제리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참다가 말하는 편이지만 여기는 그런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답답한 분위기를 가진 조직이다. 그 간 남자들과 일해 마음에 안 들면 싸우기라도 해 서로 대화로 풀었는데 이 조직은 그렇지 않다. 자신들이 무척이나 엘리트층에 속한다는 자부심 때문에 알게 모르게 그런 행동들이 드러난다. 자신들은 타인들에게 신사적으로 대한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내가 속한 부서의 가장 높은 상사 즉 나보다 네 살 많은 상사에게 들어가서 보고하면 내가 이야기를 다 끝마치지도 않았는데 알아들었다며 내 말을 잘라버린다. 알아서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거의 보고하러 갈 일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보고할 일이 있어 들어가면 으레 무시하는 느낌을 받아 울화통이 터진다. 너희가 다닌 직장 규모보다 훨씬 더 큰 조직에서 있었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런 곳에서도 이러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직장생활하며 사건 사고도 무수히 많이 겪었다. 남자분야에서 일해 선입견으로 거래처에서 문전박대 당한 적도 많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감당할 수 있었다. 그보다 더 한 일도 많이 겪었지만 지금 내가 겪은 이런 무시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지난 회사들에서는 오히려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잘한다는 말에 사람들이 나를 경계하면 경계했고, 일을 잘한다는 칭찬을 받았으면 더 받았다. 나를 싫어해도 일 잘해 다른 부서로 이동갈때도 나를 데려갔다. 그런데 이 조직은 자신들이 엄청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좀 많다. 사실 그래서 짜증이 난다. 그놈의 박사 딱지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남을 무시하는지 인간이 덜 된 듯하다. 차라리 월 천만원 벌수 있는 곳에서 개업하지 왜 이런 곳에 와 박사 대우를 받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 박사가 아닌 직원의 말도 경청해야 스스로 존경받지 않을까. 겉으로 젠틀한 척 하는 것이 더 역겹다.
나는 박사 학위를 가졌다고 그 사람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부하고 일 머리는 다르다. 머리가 똑똑한 것 인정한다. 조직에서 엄연히 직책이 있는데 자신이 박사 학위가 있다고 박사라고 불러달라고 했다고 한 사람의 이야기를 얼마 전에 다른 부서의 사람을 통해 들었는데 그 말을 듣고 화가 났다. ‘박사 그래서 그게 얼마나 대단하니’ 진짜 존경받을 사람은 굳이 자신이 먼저 그러라고 하지 않아도 먼저 불러 줄 것이다. 그리고 존중해 줄 것이다.
나이가 많아 조용히 다녀야 하지 했는데 가끔 분노가 올라온다. 그래서 다른 곳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어제부터 찾아보지만, 이 나이에 딱히 어디 갈 곳이 없다는 현실을 느끼며 다시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이 단편소설이 더 나에게 공감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살다 보면 또 웃는 날이 올 것이고, 그것은 어떤 작은 시발점으로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곱씹을 문장을 필사를 해봐야겠다. 나의 감정을 사그라뜨리기 위해서라도.
#출판사의 지원으로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서평인지 제 개인적인 고백인지 모르겠네요. 너무 감정이입되어 서평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