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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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미셀 투르니에의 작품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달린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를 비틀어 비판한 소설이라는 정도의 정보만을 가지고 내가 알고 있는 로빈슨 크루소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한 재미있는 에프소드가 쏟아지는 재밌는 소설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프롤로그부터 시작하여 도대체 무슨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힘든 말들, 상징들, 언어들, 감정들... 이건 그냥 소설이라기 보다는 심오한 한 인간 내면의 깊이 들어가 그의 내면의 언어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철학서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기도 한 로빈슨은 난파선에서 혼자 살아남아 외딴 무인도에 조난을 당한다. 그는 처음에는 누군가 자기를 구하러 오기를 간절히 바라다가, 그것을 포기하고, 이제 이섬에 스페란차라는 이름을 짓고 자신 스스로 총독, 행정관, 법관, 농부, 사제 등등 소위 문명의 문화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로 섬을 스스로 건설해 나간다. 그 과정은 힘들고 지난했지만 문명인으로써 마땅히 열심히 그 일을 한다.

 

어느날 그는 우연히 스페란차에서 그 지역의 아아리칸 족들이 와서 심판의식을 하며 죽이려고 하는 한 소년을 구하게 되고 그에게 그를 구한 요일인 금요일을 뜻하는 방드르디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그를 노예로 부린다.

방드르디는 노예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로빈슨이 하라면 무슨일이든 한다. 하지만, 로빈슨은 성에 차지 않는다. 방드르디 속에 있는 무언가가 그에게 복종하고 있지 않는듯한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그러다가 방드르디가 그들의 문화의 총체라고 부를만한 동굴에 있던 폭약더미에 실수로 담배불을 던져 동굴이 폭발하고, 로빈슨이 그동안 애써 구축해 왔던 속세의 문화는 잿더미가 되고 만다.

 

그 후 방드르디와 로빈슨은 동등한 관계의 동료와 같은 관계가 된다. 부질없는 계급도 없고 가축사육장도 없고 논도 없고 밭도 없고, 그야말로 빈둥거리다 배고프면 낚시하거나 채집하거나 하며 먹고산다. 그러면서 로빈슨은 그 전부터 방드르디에게서 느껴왔던, 자연과 하나인듯한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새삼 발견하고 그를 좋아하게까지 된다.

 

해여, 나를 방드르디와 닮게 해다오. 웃음으로 활짝피고, 송두리째 웃음을 위하여 빚어진 방드르디의 얼굴을 나에게 다오. 매우 높으면서도 뒤로 젖혀진 저 이마를, 검은 머리 타래의 꽃장식으로 덮인 저 이마를, 조소를 띠며 항상 불이 켜져 있는 듯 하고, 아이러니 때문에 양끝으로 찢어져 있으며,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재미있어 뒤집혀질 듯한 저 눈을...”(271p)

이 정도이면 가히 방드르디의 찬가라고 할만 하지 않은가!

 

그러던 어느날 지나가던 배가 스페란차에 다가온다. 그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순간이었던가! 로빈슨은 그 배에 손님으로 초대 받는다. 그들과 만나며 자신이 이미 23년이라는 세월 넘게 이 섬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된다. 선장의 저녁식사의 초대에서 식사를 하며, 무언가를 욕망하고, 욕심부리고 또 속이고 속이는 듯한 저질스러운 속세의 때 같은 것을 느끼며, 로빈슨은 스페란차에 남기로 결심하게 된다.

방드르디도 그의 노예로써 배에 올라 여기저기 구경을 하다 높은 돛 위에 올라가 보며 바람을 느끼기도 하고, 새로운 것들에 흥미를 보인다.

 

하지만 로빈슨이 스페란차에 남겠다고 선장에게 말하고 로빈슨과 방드르디와 함께 섬으로 돌아왔다. 새벽녘 로빈슨은 잠에서 깨어 주변에 있어야 할 방드르디를 찾았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제 타고 왔던 배는 그대로인데, 방드르디는 어디로 갔을까? 로빈슨은 어머니 자궁과 같은 동굴의 좁은 틈을 뚫고 들어가 이제 스페란차에서의 영원한 잠을 청하고자 했다. 그런데 그곳에 어제 배에서 선장과 선원들에게 온갖 구박을 당하던 소년을 만나게 된다. 소년은 방드르디가 타고온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방드르디는 천연 그대로의 순수한 호기심으로 자신의 몸을 맡기며 모험을 떠난 것이다!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죄디(목요일이라는 뜻)란다. 그건 하늘의 신인 주피터의 날이지. 그건 또 어린아이들의 일요이기도 하단다.” 로빈슨이 그에게 말했다.(319p)

이렇게 방드리디, 태평양의 끝소설은 막을 내린다.

 

이제 스페란차에 또 다른 방드리디죄디라는 어린아이가 또 다른 천국을 만들며 맘껏 행복하게 살리라고 예상해 마지 않는다.

 

처음 세계적인, 현대문학의 거장, 이런 거창한 수식어를 듣고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이렇게나 난해하고 재미없는 책이 그러한 평가를 받다니... 라는 아주 짧은 소견으로 작가를 모욕했던 내가 너무나 한없이 한심스럽게 느껴진다. ‘미셀 투르니에라는 이름에 걸맞는 명작중에 명작이라 일컬을만한 작품이다.

한 인간의 마음 깊숙이 내재해 있는 온갖것들... 죄악, 욕심, 더러움, 욕망, 욕정, 순수, 열망, 순결, 이상, 상상.... 이 모든 것을 이처럼 심오한 언어들로 꽉 채운 철학책 같은 소설을 쓸 수 있는 이가 또 누가 있을 수 있을 것인가!

 

로빈슨이 볼 때 악()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은 데 있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그 사람들 모두가 열에 들뜬 듯이 추구하는 것으로 보이는 여러 가지 목적의 어쩔 수 없는 상대적 성격이 바로 악의 바탕이라 비판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목적을 추구하고 있었고, 그 목적이란 어떤 획득, 어떤 부, 어떤 만족 따위였다. 그렇지만 무엇 때문에 그 획득, , 만족을 추구한단 말인가?”(3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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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 2 - 20세기의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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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어느곳에 어떤 얼굴로 서있을까? 나이서른에 우린 무엇을 사랑하게 될까. 젊은날의 높은 꿈이 부끄럽진 않을까?...’

로 시작하는 고등학교 졸업식즘에 발표하는 고등학교 학보에 학생회장으로써 글을 써서 낸적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마침내 해방이다! 비록 원하던 학교는 아니었지만 원하는 학과에 대학을 합격해 놓고 고등학교 문집에 내 글을 싣기까지 한 그때의 내 마음은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러면서 학생회장 인사말에, 나이 서른즈음엔 우리 모두 꿈을 이루어 놓았노라고, 아니, 적어도 그 꿈에 근접해 있겠노라고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며, 희망차게 글을 써 놓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나이 50을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여전히 그때의 ‘나이서른에 우린...?’하던 노래에 대한 어떠한 해답도 없이 ‘젊은날의 높은 꿈’에 대한 민망함과 내 인생에 대한 한심스러움과, 아쉬움과, 내가 했던 잘못된 결정들과... 또... 여러것들에 맘이 복잡해 지고 있다.

이 책 ‘세 여자’를 읽고 수많은 인생 중에 뜻대로 되는 인생이 어디에 있으며, 아무리 노력했다 한들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는 인생이 있을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면서, 내 인생만 이런 것은 아니구나... 라는 위안 아닌 위안을 느끼며 어찌보면 세 여자보다는 좀더 덜 복잡하고 고생스럽지 않은 시대에 태어난 내가 그들 보다는 좀더 인생을 쉽게 살지 않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소설에서 '세죽'이 '정숙'에게 자신은 원래 상해로 유학 온 것은 영성여보고의 음악선생이 되겠다는 꿈이었으나, 지금은 공산당 당원으로써, 박헌영이라는 인물의 혁명가의 아내로써 손에 물이 마를틈 없이 살고 있지만, 영성여보고의 음악선생이라는 물도 된장도 아닌 그런 인생보다는 이렇게 사는 것이 훨씬 낫다고 이야기 하는 장면을 보며, 과연 물도 된장도 아닌 그런 인생을 지금 내가 살고 있지는 않은지 한심스럽기도 하고... 암튼 인생의 앞길이 내가 계획한 대로만 꽃길만 있을거라는 고등학교 졸업 그때의 나에게서 그 때의 꿈 중 제대로 하나도 못 이룬 중년이 된 내게 위안이 된다고라고나 할까...


이 소설 ‘세 여자’의 주인공은 일제 식민지시대를 풍미하며 누구보다 가열차게 반일 혁명투쟁, 그것도 '공산당'이라는 당을 만들고 당 때문에 온갖 고초를 당하며 뜻대로 살지 못한 사람들이다. 아니, 세상의 거대한 파도에 삼켜져 내동댕이쳐진 치열한 여성의 삶이었다.


나는 이 세여자 중 ‘고명자’의 삶이 가장 애닳다.

강경 제일 부자 판사님 고명딸이 1950년 춥고 시린 냉방에서 굶어 죽을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디 고명자 뿐인가? '주세죽'은 조선공산당 창당 예비 대표라는 것 때문에 엄청난 고문을 당하고 또 소련에서 그의 생활 메이트였던 조선공산당 책임자 역할을 하던 김단야가 일본 밀정의 협의로 사형을 받고 주세죽은 멀고 먼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의 공장에서 유형생활을 하다, 마지막으로 딸(박헌영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지키기 위해 모스크바로 온지 얼마 안되어 심한 고생과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나마 나은 삶이라고 할수 있는 것이 '허정숙'의 삶이었으나, 허정숙 역시 조선공산당 창당 멤버중 한사람이며, 여성동맹 회원, 투옥과 출감, 미국으로의 유학과 공산당 재건운동, 마지막엔 중국 연안의 중국공산당과의 반일 전쟁에 함께 한 쟁쟁한 여성 혁명운동가 였으나, 결국엔, 자신의 남쪽에서의 공산당 당원들이 미제의 밀정이었다는 끔찍한 고백을 하는 일을 당하고 난 후에야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제 명대로 1991년 사망하게 되었다.

책 표지는 1925년 청계천을 배경으로 발을 담근 세명의 단발머리 여성들의 사진이 실려있다.

고명자, 주세죽, 허정숙. 그들의 1925년은 가히 혁명의 열기로 타오르던 청춘의 절정, 인생의 찬란함, 서로에 대한 우정.. 이 모든 것이 영원하리라는 젊음의 단란함으로 넘쳐 흐른다.

하지만 이 셋의 운명은 앞서 이야기 했듯이 그 끝없는 절망이 어디까지 인지 알수 없는 절망감으로 뒤엉킨 채 끝나버렸다.


일제 강점기의 공산당 당원으로써의 독립혁명투쟁가들의 삶이 그렇게 귀결되지 않으면 이상하겠지만, 그들의 인생의 질곡과 또 동료들의 비참한 생이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반쪽짜리 역사 밖에 배우지 못했다. 이승만이라는 친미주의자가 정권을 세우고 일제 강점기 내내 호의호식하던 매국노들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였기에, 그시절 그토록 뼈져리게 조국과 민족을 사랑했던 이들이 사회주의자 였다는 이유로 역사 책에 이름 한자 제대로 올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작가의 노고가 없었다면, ‘세 여자’의 삶을 누가 기억하며, 또 추모해 줄수 있을까? 한국근현대사, 현대사 꾀나 공부했다고 생각하는 나 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니, 이 소설이 나오지 않았다면 영영 모를뻔도 하였다.

12년간의 지난한 세월을 거쳐 수많은 자료를 모으고 역사적 사실을 최대한 반영하여 멋지게 글을 써주신 작가님께 경의의 인사를 드린다.


세 분 모두 인생이 꽃길이 아니었지만, 혹은 그 생의 과정과 마지막이 너무나 모질었지만, 후대의 우리들에게 느끼게 하는 바가 큰 사람으로 살으셨기에, 부디 저 세상에서나마 후세대들의 위안과 존경을 느끼며 편히 영면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세여자 #고명자 #주세죽 #허정숙 #조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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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의 미래 - 헬레나와의 대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지음, 최요한 옮김 / 남해의봄날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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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를 오래 전에 읽고 가끔 헬라나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가 궁금했다.

라다크 사람들의 자본주의의 정면폭격을 묵도하며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주었던 헬레나는 지금쯤은 우리들의 어떠한 미래를 위해 고민하고 있을지, 가끔 내 사는 현재를 돌아보며 궁금해 했다.

내가 무심해서 일까... 헬레나는 '오래된 미래' 이후에 경제구조를 지역화하여 생태계와 공동체를 보호하려는 단체를 설립하여 거의 40년 동안 꾸준히 활동해 오고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있었다니...

아무튼 이제라도 그의 책을 읽고 그의 활동과 그가 바라는 미래모습. '로컬의 미래'를 만나게 되어 기쁘다.

'지역화는 글로벌 경제가 입힌 손상을 만회하는 가장 전략적이고 효과적이며, 상식적인 방법이다.'(11p)

'경제 체제는 힘을 중앙에 집중시키고, 교육의 기회와 일자리를 인위적으로 줄여서 치열한 경쟁을 조장했다. 아울러 아이들의 정신에 깊이 침투해서 보편적인 사랑과 인정욕구를 소비로 왜곡시켰다. 결국 라다크는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우울증과 자살, 폭력 사태에 휩싸였고 환경이 파괴되었다.'(12p)

'우리는 더 크고 더 중앙 집중화에 박차를 가하는 경제 구조에서, 더 분권화하고 지역화하는 인간적인 규모의 경제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13p)

머릿글만 읽어도 머리가 다 환해지는 느낌이다.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인간성의 말살에 따른 삶의 피폐가 어디에서 기인했고, 그 해결책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계화는 기업화 대신 쓰는 암호명이다. 거대 기업과 은행이 직원에게 정당한 임금을 주고 싶지 않아서, 도로를 보수하고 공원을 유지하고 노인과 장애인에게 연금으로 돌아가는 세금을 내고 싶지 않아서 세상을 재편하려고 꾸미는 시도다."(21p)

이 얼마나 명쾌한 해답인가! 끊임없이 욕망하게 하고, 끊임없이 갈망하게 하는 자본의 탐욕. 어느 통계자료에 미국 통상 임금노동자에 비해 CEO들은 350여배의 월급을 가져가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미국을 제끼고 소득격차가 세계1위를 달리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은 말해 더해 무엇하리...

자본의 탐욕은 우리의 의식깊숙이 들어와 끊임 없이 욕심을 부리는 삶을 갈망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에 대한 헬레나의 해법은 '로컬화'다.

'이 모든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지역화를 세계화 하는 것입니다. 바로 대대적으로 소규모가 되는 것이죠. 즉시 경제활동의 규모를 줄이고, 분산하여 지역사회와 로컬 경제가 인간의 사회적 욕구를 포함한 스스로의 필요흘 최대한 충족할수 있는 권한을 주어야 합니다. (162p)

헬레나는 로컬화를 실현할수 있는 11가지 정책을 제안한다.

① 로컬 경제를 위한 대안 무역지침

앞으로의 무역의 목적은 기업의 이윤과 국내총생산(GDP)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잉여생산물을 시장에 공급하고 국내에서 생산할 수 없는 재화를 획득하는 것이다.(98p)

② 지역기반 금융 체계 확립

지역사회의 은행과 신용협동조합을 더 많이 지원하고 이용하면 훨씬 더 다양한 중소기업이 번영할수 있다.(99p)

③ 건전한 경제지표 적용

이에 사람들은 GDP를 대신할 다양한 대안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실질진보지표이다.기존지표에 “중요한 경제.환경.사회 요소를 단일체계에 넣어서 발전과 실패의..(101p)

④ 편파적인 세금 체계의 개선

거의 모든 나라가 체계적인 세금규제로 중소기업을 차별한다.(102p)

⑤ 재생 에너지의 분산 작업

대형 발전소 대신 분산한 재생 에너지 인프라를 지원하면 소도시와 마을, 농촌 경제 일반이 튼튼해져서 건전하지 못한 도시화를 막을수 있다.(103p)

⑥ 다품종 유기농 생산지의 확대(105p)

⑦ 소규모 로컬 생산자를 위한 규제 완화

”스스로 선택한 로컬 푸두를 생산, 가공, 판매, 구입, 소비할“ 권리를 부여하는 조례(107p)

⑧ 시장과 공공장소에 투자 (108p)

⑨ 로컬 미디어와 로컬 엔터테인먼트 지원

지역의공연예술문화 시설을 지원하면 세계화한미디어를 대신할 대신랄 대안으로 발돋음(110p)

⑩ 로컬에 기반한 교육으로의 전환(110P)

⑪ 중앙 집중형 의료 체계의 개선

예방의학에 더 의존하는 작은병원을 통해서 더 많은 환자가 보건의료 혜택을(111p)

이 11가지 정책이 실현될때 지구는 그야말로 '인간다운' 곳으로 탈바꿈 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헬레나는 우선 내 주변에서 '동지 찾기' 부터 시작하라고 한다.

시민들의 인식을 넓히고, 역동적인 정치 켐페인을 벌이고, 계몽적인 시민 행동과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 마음 하나 다잡기 어려운데 이러한 운동을 펼쳐 나가야 '로컬의 미래'가 도래할진데,,

오늘부터 '동지 찾기'에 나서자.

#로컬의 미래 #지역화 #동지찾기


** 문장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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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특별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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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일생에 비한다면 사람의 일생은 하루살이에 불과하다. 단 하루의 무상한 삶을 영위하는 하루살이들의 눈에는, 우리 인간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지겹게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는 한심한 존재로 보일 것이다. 별들의 눈에 비친 인간의 삶은 어떤 것일까? 아주 이상할 정도로 차갑고 지극히 단단한 규산염과 철로 만들어진 작은 공 모양의 땅덩어리에서 10억분의 1도 채 안되는 짧은 시간 동안만 반짝하고 사라지는 매우 하찮은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428p)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일 때 시간의 흐름이 지연된다는 특수상대성이론도 있지만, 굳이 과학적 증명을 모르더라도, 우리는 어떤 때는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쏜살같이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수능시험을 앞둔 초조한 고사장에서 시험지가 나눠지기까지 시간은 한없이 길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막상 시험지를 받고 문제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서 답안지를 제출해야 할 시간이 다 되어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는 과학적 상식과는 다른 현실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다는 상식, 이를테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같고, 물체는 위에서 아래로 직선으로 떨어지며,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등의 지극히 진실이라고 믿었던 사실들이 실은 그저 우리가 경험하는 어느 한 측면의 찰라의 진실일 뿐일뿐..

이토록 광대한 작품을 읽고 몇 글자 독후감으로 정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따름이겠지만, 그래도 받은 감동이 크기에 졸저으로나마 그 기억을 남겨두고 싶어 글을 남긴다.

고전중에 고전이 바로 칼세이컨의 ‘코스모스’일 것이다. 그런데 그 책의 엄청난 두깨와 과학서적이라는 불가촉 영역을 침범할 수 없기에 그냥 모르고 살고자 부러 외면하고 살아왔었다. 하지만 함께 책읽는 모임에 초대를 받아 마침내 신성영역의 문을 살짜기 열어보게 되었다. 과연 두종류의 인간이 있다는 명언. ‘코스모스를 읽은 인간과 읽지 않은 인간’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명언이 충분히 느껴지는 명작이다. 코스모스를 읽기 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음을 느끼기에, 두 분류의 인간 중 다른 쪽으로 넘어왔다는데 안도를 느끼면서도 아직도 저편에 있는 인간들과 어떻게 교류를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 또한 남게 되었다.

이렇게 인류지혜의 총체를 읽고 나서 어떻게 몇문장으로 그 내용을 정리할 수 있겠냐 만은 내가 느낀 바만 지극히 내 관점에서 조금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그런데 내가 코스모스를 읽고 나서 가장 크게 바뀐점이 있다면, 그 전엔 어떤 책을 읽고 내가 느낀바를 글로 쓰면서도 설혹 나의 관점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내가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했는지 혹은 다른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비웃지는 않을지 고민하였지만, 이제 코스모스를 읽고 나서는 내가 느낀바 또한 찰라의 진실이 담겨있고, 광막한 세상에 무엇을 진리라고 또는, 진리가 아니라고 할수도 없기에 그저 나의 찰라의 진실을 적는데 주저함이 없어지게 되었다.

칼세이건은 이 책에서 인간은 100억 내지 200억년전에 있었던 대폭발(이 이유는 아직도 신비로 남아있다.)이후 성간구름의 중력활동에 의해 별이 탄생하였고, 그 주 성분은 주로 수소와 헬륨인데, 그 수소와 헬륨의 작용으로 다른 물질이 생겨났으며 우리 지구도 그 물질들의 연금술로 지금과 같은 지구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지구에 우연히 생물종이 탄생하여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의식을 가진 우리 인류가 발생되기에 이러르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인류 또한 먼 빅뱅에서 시작되었으며 그래서 우리는 별들의 후손인 것이다. 우리는 지구라는 환경에서 진화 하였으므로 만약 다른 은하계 행성에 생명이 존재한다 하더라고 결코 인간과 같은 모습이리라는 기대는 버리는 것이 좋다고 한다.

1조개의 별들을 각각 거느린 1조개의 은하가 존재하는 이 광막한 우주에 생명 존재가 우리뿐 이라는 것은 공간의 낭비이겠지만, 그렇다고 꼭 생명존재가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는 것이 현재이다. 그래서 칼세이건은 끊임없이 외계 생명에 대한 탐구와 외계 은하와의 교신을 꿈꾸며 그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현재도 그 시도는 계속 되고 있지만, 일부 신비주의자(결코 이들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외에는 외계 생명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칼세이건은 지구의 탄생에서부터 멸망까지,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앞으로의 미래까지, 이것을 밝히기 위한 인류의 장대한 모험과 연구와 거기에 일생을 바친 수많은 이들의 삶과 연구들을 꼼꼼히도 정리하고 방대하게 기록해 놓았다. 모두 그의 연구와 그 연구의 의미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한 과학서적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과학서적이라는 데에 동의할 수가 없다. '코스모스'는 과학책이 아니라 인류학, 아니면 ‘철학책’ 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칼세이컨은 이 책을 통해 우리 인류는 우주 변두리의 아주 작은 행성에 찰라에 불과한 삶을 살고 있는 유한한 존재이지만, 언젠가 우리 인류도 우주시민의 일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지구인이라는 공동운명체를 더욱 건강하고 평화롭게 사는 지혜를 구현하며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인류 구원의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다.

하루살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지겹게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는 한심한 존재로 우리를 보는 것처럼, 우리는 우주를 그저 영속의 시간을 느리게 지속하며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의미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그래서 칼세이건은 우리에게 눈을 더 크게 뜨고 시야를 더 넓게 하여 우주를 하루살이 보듯이 볼 수 있는 통찰의 시야를 갖고 살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남긴 것은 아닌지...

아글타글하며 다른 사람의 한마디 말에, 돈에, 무엇에 속박받는 존재가 아닌 우주적 존재로써의 시야를 가진 인류가 되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 칼세이건이 이 책을 쓴 이유가 아닌가 싶다.

미물인 나는 이 이상의 깨달음을 얻기는 어렵지만, 어렴풋이나마 코스모스의 지혜의 찰라 먼지의 끝자락을 엿보았다고 믿고 싶다.

2021. 4. 5 식목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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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세트 - 전10권 - 개정판 홍명희의 임꺽정 1
홍명희 지음, 박재동 그림 / 사계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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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미숙박사님의 강의를 유투브를 통해 우연히 보게되었다.

그 전에도 그 명성은 익히 들은바 있지만, '감이당'이라는 인문학공동체를 이루어서 공부하며 삶을 사는 이들을 보니 당연 부럽기도 하고 경외감도 들고... 최근에 강의하시면서 사람은 누구나 '출가'를 하여 공부를 하여야 한다는 말씀이 가장 와 닿았다. 인생의 어느때쯤은 먹고 사는 데 메여 살것이 아니라 진정 내가 누구인지, 이 생에 나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내가 진정 행복한지 탐구할 시간이 이어야 한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 출가를 위해 나 스스로 설수 있도록 다방면 준비할수 밖에...

고미숙 선생님 강연중 '호모ooo'시리즈도 있거니와 '동의보감' '명리학' 등 다양한 주제가 있는데, 그 강연 중 많이 회자되는 내용이 바로 '임꺽정'이라는 소설이다. 동의보감 강의를 하시며 몸과 나. 몸으로 부딪치며 사는 삶 중 임꺽정을 사례로 많이 들다보니 당연히 임꺽정 소설에 관심을 가질수밖에 없었다. 마치 옛날 개그콘서트 봉숭아학당의 한 학생이 연변에 대해 이야기 하며 온갖 허풍을 늘어놓는데, 미처 가보지 못한 이들이 허허 웃으며 속을수 밖에 없는데... 고미숙선생님이 임꺽정 이야기를 할때마다 아직 임꺽정을 읽지 않은 나로써는 개그프로를 볼때처럼 그냥 막연히 상상하며 웃을수 밖에... 그래서 임꺽정을 제대로 알기위해 읽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그렇게 나도 감탄을 자아내고 싶었다.

총10권으로 이우러진 대작을 선뜻 읽겠다고 다짐할수 있었던 데는, 내가 책읽기에 이력이 난 사람이라 큰 고민할것도 없다. 익히 '토지'를 비롯하여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혼불'.. 심지어 '삼국지'까지 다 읽어본 내가 겁낼것 없이 덜컥 시작한것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10권을 매향 아침, 밤으로 시간 날때마다 꼬박 꼬박 읽었지만, 읽는데 거의 한달 반이나 걸렸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우리의 '문체'라고 해야될까.... 우리의 '언어'라고 해야 할까... 우리조상들이 매향 썼던 언어로 된 이 책이 쉽게 이해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고미숙선생님 말마따나 근 100년의 시간이 흐르며 우리가 지금 쓰는 말과 그때의 말이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이렇게까지 언어가 바뀌게 된것은 무슨연유에서였을까? 일제를 거치고 소위 개화를 거치고 외국문화가 판치고 표준어라는 것이 자리잡고 하면서 우리 고유의 유려하고도 맛깔난 언어는 사라지고 지금의 실용적인 간단한 언어만 남게 된것은 아닌지...

소설 '임꺽정'은 내가 궂이 붙이지 않더라도 우리 민족사 20세기를 빛낸 거장의 문학작품이라는 것은 두말 할것도 없고 벽초 홍명희 선생이야, 문학가를 넘어 독립운동가, 정치운동가였으니 그의 면면을 보나 살아가신 궤적을 보나 고금의 '영웅'이라 칭하실만한 분이시다. 임꺽정이 어디 그냥 소설이라고만 할수 있으랴, 우리 민족의 살아온 민속학이며 언어의 보물이다.

10권이나 되는 소설의 내용을 내가 한꺼번에 다 정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그래도 열심히 읽은 보람으로 이 책에 나오는 임꺽정 이하 주요인물들에 대해서 한번 정리해 보련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임꺽정'이니 당연히 처음부터 임꺽정이야기로 시작될것으로 생각하였는데, 내 생각이 틀렸다. 소설 임꺽정은 총 10편으로 정리되어 있는데, 그 첫번째 편이 '봉단편'으로 임꺽정 아버지의 사촌누이'봉단'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물론 이때는 임꺽정이 태어나기 훨씬 전이다. 연산군 말기 갑자사화로 인해 거제도로 귀양갔던 '이교리'가 목숨 부지를 위해 황해도 땅으로 도망을 하게 되고, 거기서 신분을 숨기고 고리백정집 딸 봉단에게 장가들어 게으름뱅이 데릴사위 노릇을 하게된다. 장모에게 갖은 수모를 당하다 중종반정이 일어나서 다시 신분을 되찾고 서울로 올라오는게 봉단편의 내용이다. 이교리가 봉단이 집에 있을때 '백정학자'라는 소리를 듣는 봉단의 삼촌 양주팔과 교류를 맺게 되는데, 서울로 올라올때도 데리고 올라온다. 봉단은 서울로 올라온뒤 중종의 특별한 은혜로 숙부인으로 신분이 상승하고 평생 남편과 백년해로 하게 된다.

양주팔은 남소문안에서 갖바치 백정으로 가죽신을 만드는데, 전의 '이교리'와 친한 동무일뿐 아니라 이교리를 통해 서울의 많은 양반들과 교류하게 된다. 특히 '조광조'와도 각별한 사이로 나온다. 3권 양반편에는 그야말로 양반들의 이야기로 꾸며지는데, '기묘사화'와 '을사사화'를 통해 스러져간 많은 양반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역사에 무뇌한 들에게는 많이 어려운 편이 될듯했다. 역사에 이렇게 정통해서 세세히 그때 상황을 밝여두었으니, 그 즈음때의 역사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양주팔이 갖바치질을 하고 있을때 봉단의 사촌 '임돌이'도 아버지 상을 치루고 서울로 오다가다 하다 양주 고기다루는 백정집의 데릴사위로 들어가게 된다. 이 임돌이와 그의 백정부인 '애기' 사이에서 태어난것이 바로 임꺽정이다. 임꺽정이 위로 누나가 하나 있는데, 훗날 양주팔의 아들과 결혼하여 딸 '애기'를 뒤늦게 낳는다.

임꺽정이 이름이 '꺽정'이 된데에는 어려서부터 장난이 심하고 부모 말도 잘 먹히지 않아 '저 놈이 커서 뭐가되나 걱정'이라고 '걱정이, 걱정이'라고 부른것이 아예 이름이 된 것이었다. 꺽정이 부모가 아예 양주팔에게 교육을 맡겨서 그 집에 주로 가서 살다시피 하게 되어서 양주팔에게 글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로써 많은것을 배우게 된다. 그때 양주팔의 아랫채에는 두 집이 세들어 살고 있었는데, 한 집은 연산주를 욕하는 말 한마디를 고해바친 마을 주민때문에 서울로 옥살이 오게된 사람의 부인이 임신중에 왔다가 그예 남편이 옥사하여 유복자로 태어난 박유복와 그의 어머니 모자가 와서 살고, 또 건너방에는 양반 서자이지만, 사화로 부모잃고 할머니와 살고 있는 이봉학이가 와서 살고 있었다. 박유복이와 이봉학이 모두 꺽정이와 또래지간이라 셋이서 어울려 공부도 하고 말썽도 많이 저질렀다.

이봉학이는 어려서 부터 활쏘기를 좋아하게 되어 나중에 백발백중 한량으로 출사하게 되고, 박유복이도 재주를 갖고싶어 하다 표창 날리기 연습을 하여 귀신같은 솜씨를 갖게 되고, 꺽정이도 우연한 길에 칼쓰는 도인에게 칼쓰는 법을 배우게 되어 귀신같은 검술을 갖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길게 끌자면 끝도 없어,, 인물들만 간단 정리하고자 한다.

임꺽정은 그렇게 어린시절을 보내고 양주팔과 전국 팔도를 여행하던 중 백두산에서 황운총이라는 백두산 사슴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고 양주 집으로 들어와 살았는데, 덩치가 산만하고 힘이 천하장사라, 근방에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도적이 될 생각은 없었으나 가족이 감옥에 갇혀 파옥을 하여 결국 가족을 이끌로 청학동으로 들어가 도적 수괴가 되고 말았다. 도적떼가 정돈된 후 서울 나들이 갔다가 연이어 3명의 부인도 얻고 기생첩까지 들이게 되어 총 5명의 부인을 두게 된다.

박유복은 임꺽정의 어린시절 동무이지만, 어머니의 청으로 외삼촌네로 갔다가 다리가 마비된 병신이 되었다가 이인을 만나 다리를 고치고 아버지를 밀고했던 사람을 찾아가 죽이는 원수를 갚아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가 최영장군 사당의 귀신 마누라 된 이를 데리고 도망와 청석골로 들어와 두령이 된다.

이봉학이는 양반출신으로 활을 잘 쏘아 남쪽 지역에 왜란이 났을때 참전하였다가 눈에 띄어 제주현령을 하기까지 되었는데, 나중 도적과 내통한 죄가 발각되어 기생첩을 데리고 청석골의 두령이 된다.

그외에 길막봉이, 곽오주, 배돌석이, 황천왕동이, 서림이 들이 기막힌 사연으로 도적이 될수밖에 없어 청학동에 들어와 두령노릇을 하며 크게 세를 형성하게 된다.

두령 중 서림이라는 모사가 서울서 붙잡히게 되고, 조정에서 순경사까지 파견하여 청석골패는 청석골을 버리고 자모산성으로까지 가게된다.

그런데 황당(?) 하게도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난다. 홍명희 선생이 여기까지만 집필하신 것이다. 아마 이 후로도 이야기가 꾀 길어질듯 한데... 역사기록을 보면 자모산성으로 갔다가 마지막에 구월산으로까지 이동하게 되는데 여기서 대부분 두령들도 죽고 임꺽정도 화살을 비오듯 맞아 죽은것으로 되어있다.

홍명희 선생께서 여러사정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아 서운치만, 이야기가 여기까지인것을 어찌하리... 임꺽정의 이야기는 줄거리 보다는 한사람, 한사람의 이야기, 한사건, 한사건에 공을 많이 들여 읽는 이로 하여금 재미를 주는데 더 주안점이 있는지라 비록 이야기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그간 읽은 재미가 톡톡히 큰지라 아쉽지만 아쉽지만은 않다.

내가 임꺽정을 읽기 전에는 임꺽정이 신분차별, 국정혼란에 대한 개혁세력으로 생각하였었는데, 내용인즉 꼭 그렇지는 않다. 임꺽정이 어쩔수없이 도적패의 두령이 되고, 그외 두령들도 대게가 세상에서 더이상 살수 없는 형편이되어 모여 세를 이루어 조정의 근심이 되었지만, 개혁을 주창하는 혁명세력은 아니고,, 그 들 나름의 사는 방편이 있을뿐이었다. 명종 때의 윤원형, 문정왕후, 보우 요승 등의 혼란스러운 정치가 임꺽정이와 같은 이들을 만들었고, 그들은 그 운명의 소용돌이에서 나름 잘 살려고 버둥쳤을뿐이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임꺽정이 패의 도적질, 살인등의 행각이 정의롭지만은 않은것은 당연하다. 내가 그동안 어떠한 환상으로 임꺽정을 그리고 있지는 않았는지....

앞서도 말 하였지만, 임꺽정이라는 소설은 20세기 최고의 문장, 이야기라고 하여도 손색이 없다. 최고의 이야기꾼의 다른 작품도 찾아서 꼭 읽어보리라... 대작을 읽고 나면 아쉬움도 크고, 홀가분도 크다. 이제 또 다른 어떤 이야기로 빠져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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