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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 2 - 20세기의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어느곳에 어떤 얼굴로 서있을까? 나이서른에 우린 무엇을 사랑하게 될까. 젊은날의 높은 꿈이 부끄럽진 않을까?...’
로 시작하는 고등학교 졸업식즘에 발표하는 고등학교 학보에 학생회장으로써 글을 써서 낸적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마침내 해방이다! 비록 원하던 학교는 아니었지만 원하는 학과에 대학을 합격해 놓고 고등학교 문집에 내 글을 싣기까지 한 그때의 내 마음은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러면서 학생회장 인사말에, 나이 서른즈음엔 우리 모두 꿈을 이루어 놓았노라고, 아니, 적어도 그 꿈에 근접해 있겠노라고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며, 희망차게 글을 써 놓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나이 50을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여전히 그때의 ‘나이서른에 우린...?’하던 노래에 대한 어떠한 해답도 없이 ‘젊은날의 높은 꿈’에 대한 민망함과 내 인생에 대한 한심스러움과, 아쉬움과, 내가 했던 잘못된 결정들과... 또... 여러것들에 맘이 복잡해 지고 있다.
이 책 ‘세 여자’를 읽고 수많은 인생 중에 뜻대로 되는 인생이 어디에 있으며, 아무리 노력했다 한들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는 인생이 있을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면서, 내 인생만 이런 것은 아니구나... 라는 위안 아닌 위안을 느끼며 어찌보면 세 여자보다는 좀더 덜 복잡하고 고생스럽지 않은 시대에 태어난 내가 그들 보다는 좀더 인생을 쉽게 살지 않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소설에서 '세죽'이 '정숙'에게 자신은 원래 상해로 유학 온 것은 영성여보고의 음악선생이 되겠다는 꿈이었으나, 지금은 공산당 당원으로써, 박헌영이라는 인물의 혁명가의 아내로써 손에 물이 마를틈 없이 살고 있지만, 영성여보고의 음악선생이라는 물도 된장도 아닌 그런 인생보다는 이렇게 사는 것이 훨씬 낫다고 이야기 하는 장면을 보며, 과연 물도 된장도 아닌 그런 인생을 지금 내가 살고 있지는 않은지 한심스럽기도 하고... 암튼 인생의 앞길이 내가 계획한 대로만 꽃길만 있을거라는 고등학교 졸업 그때의 나에게서 그 때의 꿈 중 제대로 하나도 못 이룬 중년이 된 내게 위안이 된다고라고나 할까...
이 소설 ‘세 여자’의 주인공은 일제 식민지시대를 풍미하며 누구보다 가열차게 반일 혁명투쟁, 그것도 '공산당'이라는 당을 만들고 당 때문에 온갖 고초를 당하며 뜻대로 살지 못한 사람들이다. 아니, 세상의 거대한 파도에 삼켜져 내동댕이쳐진 치열한 여성의 삶이었다.
나는 이 세여자 중 ‘고명자’의 삶이 가장 애닳다.
강경 제일 부자 판사님 고명딸이 1950년 춥고 시린 냉방에서 굶어 죽을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디 고명자 뿐인가? '주세죽'은 조선공산당 창당 예비 대표라는 것 때문에 엄청난 고문을 당하고 또 소련에서 그의 생활 메이트였던 조선공산당 책임자 역할을 하던 김단야가 일본 밀정의 협의로 사형을 받고 주세죽은 멀고 먼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의 공장에서 유형생활을 하다, 마지막으로 딸(박헌영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지키기 위해 모스크바로 온지 얼마 안되어 심한 고생과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나마 나은 삶이라고 할수 있는 것이 '허정숙'의 삶이었으나, 허정숙 역시 조선공산당 창당 멤버중 한사람이며, 여성동맹 회원, 투옥과 출감, 미국으로의 유학과 공산당 재건운동, 마지막엔 중국 연안의 중국공산당과의 반일 전쟁에 함께 한 쟁쟁한 여성 혁명운동가 였으나, 결국엔, 자신의 남쪽에서의 공산당 당원들이 미제의 밀정이었다는 끔찍한 고백을 하는 일을 당하고 난 후에야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제 명대로 1991년 사망하게 되었다.
책 표지는 1925년 청계천을 배경으로 발을 담근 세명의 단발머리 여성들의 사진이 실려있다.
고명자, 주세죽, 허정숙. 그들의 1925년은 가히 혁명의 열기로 타오르던 청춘의 절정, 인생의 찬란함, 서로에 대한 우정.. 이 모든 것이 영원하리라는 젊음의 단란함으로 넘쳐 흐른다.
하지만 이 셋의 운명은 앞서 이야기 했듯이 그 끝없는 절망이 어디까지 인지 알수 없는 절망감으로 뒤엉킨 채 끝나버렸다.
일제 강점기의 공산당 당원으로써의 독립혁명투쟁가들의 삶이 그렇게 귀결되지 않으면 이상하겠지만, 그들의 인생의 질곡과 또 동료들의 비참한 생이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반쪽짜리 역사 밖에 배우지 못했다. 이승만이라는 친미주의자가 정권을 세우고 일제 강점기 내내 호의호식하던 매국노들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였기에, 그시절 그토록 뼈져리게 조국과 민족을 사랑했던 이들이 사회주의자 였다는 이유로 역사 책에 이름 한자 제대로 올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작가의 노고가 없었다면, ‘세 여자’의 삶을 누가 기억하며, 또 추모해 줄수 있을까? 한국근현대사, 현대사 꾀나 공부했다고 생각하는 나 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니, 이 소설이 나오지 않았다면 영영 모를뻔도 하였다.
12년간의 지난한 세월을 거쳐 수많은 자료를 모으고 역사적 사실을 최대한 반영하여 멋지게 글을 써주신 작가님께 경의의 인사를 드린다.
세 분 모두 인생이 꽃길이 아니었지만, 혹은 그 생의 과정과 마지막이 너무나 모질었지만, 후대의 우리들에게 느끼게 하는 바가 큰 사람으로 살으셨기에, 부디 저 세상에서나마 후세대들의 위안과 존경을 느끼며 편히 영면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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