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바람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 허나영/비에이블 화가의 인생을 바라보면서 그 당시의 화가가 처했던 감정과 풍파 그리고 파란만장했던 사건과 기억들을 더듬어 내려가본다. 저자는 화가는 아니지만 예술을 전공하고 현재는 대학교에서 강의를 맡고 작가활동을 하는 분으로 삶에서 느껴온 작은 퍼즐과 같은 기억들을 화가의 것과 동일시해보면서 과거의 그 현장으로 떠나본다. 어느정도 알다시피 화가의 삶에서 비운의 감정과 서사가 그들의 그림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고 보는 이들과 평론가들에게 다가오는 느낌이 묵직하다. 해서 화가들의 삶을 들여다 본 뒤 색으로 표현해본다면 밝은 색은 아닐 듯 싶다. 짙고 어두운 무채색계열에 가까울런지도 모르겠다. 인상주의 화가의 거목으로 불리은 에두아르 마네의 삶을 들여다볼 때 그 전에 책에서 봤던 스토리와 사뭇 달랐다. 그 전에는 인상주의 화가들을 이끌어 주는 리더의 느낌이었고 물심양면으로 챙겨줬던 이야기로 기억이 나는데 이번에 본 마네의 행보는 달랐다. 당시 프랑스의 화풍은 사진과 흡사하게 묘사한 아카데미즘이 주류를 이뤘으며 권위적이었던 분위기였다. 마네는 늘 공모전에서 낙방을 거듭했고 낙방한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회에 늘 걸리곤 했고 거기거 풀밭위의 점심식사가 논란이 되었다는 것은 아는 스토리인데 어쨌든 공모전에 입선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했고 도전한 끝에 입선에 들었다고 하였다. 그 이후도 예술계에서 출세와 주류에 들고 싶다는 의지가 늘 있었고 자기와 같은 처지의 인상주의를 이끌 화가들의 모임은 나가지 않고 단신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하니 홀로 구별되어 지고 싶었던 느낌이 크다. 렘브란트는 네덜란드에서 젊었을 때부터 그림실력을 인정받고 승승장구 하는 삶을 살았다. 훌륭한 처를 얻고 지위와 부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인생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만은 않았던 듯 싶다. 오히려 훗날 드리울 먹구름의 나날들을 위해 미리 마련한 편안하고 만족스런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낭비벽이 있던 렘브란트는 진귀한 외국의 물건들을 사모으는데 취미가 있었고 그림을 의뢰하는 고객들과 잦은 마찰로 인해서 그림의뢰가 줄게 되었고 이는 고스란히 생활고로 이어지게 된다. 그 가운데 아내가 사망하고 아내의 사후 재산관리의 걱정으로 아내의 유언으로 유산은 자녀에게 인도되었고 렘브란트는 유산을 사용하려면 재혼을 할 수 없었는데 그 당시 만났던 애인과 결혼이 무산되기에 이른다. 애인도 그 후 사망하고 자녀까지 사망하는 등 주변의 가까운 가족 및 연인이 연이어 사망하는 비극을 겪는 아픔을 떠안는다. 그는 자화상을 자주 그렸는데 그런 세월 속에서 그린 수척하지만 웃고 있는 거친 피부의 노인이 된 자신의 모습에서 모진 풍파를 겪은 한 인간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이를 볼 때 작품은 그냥 보기보다는 그려진 작가의 배경과 삶을 미리 알게 되면 감상의 질이 달라지는 것은 확실했다. 하여 그런 것을 설명해주는 도슨트는 매우 필요한 자리라는 생각이 간절히 든다. 고독하고 외로웠으며 어두웠던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면 사실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치 않다. 프리다칼로의 그림에서 본능을 뚫고 자신의 처지를 고스란히 그려 놓은 것을 보아도 그렇다. 에드바르트 뭉크의 그림에서도 그러했다. 우리가 아는 절규하는 사람의 모습외에도 뭉크는 자신이 사랑하는 이와 두번이나 사랑을 이루지 못했고 정작 결혼했던 여인과 만족스런 삶을 살지 못했다. 그 결과 여자에 대해서 늘 좋지 않은 감정으로 살았으며 아내로 부터 겉돌았고 그런 탓에 아내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뭉크는 그 시점에서 자신의 삶을 후회하며 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여성화가로서 성차별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그림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여 자신의 좌절과 슬픔을 승화시킨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그림 중 구약성경의 유딧서 속의 장면인 여인 유디트가 적장의 목을 덤덤하고 확신에 찬 모습으로 베는 장면은 섬뜩하거나 끔찍하기 보다는 기개와 강인함이 느껴진다. 그 외 작품들 속 저자의 구성진 설명을 통해 화가의 그림들에서 감정을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