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 삶과 죽음을 고뇌한 어느 철학자 황제의 가장 사적인 기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그레고리 헤이스 해제, 정미화 옮김 / 오아시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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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그레고리 헤이스
정미화

오아시스

로마의 3대 황제에 들어가는 이 중 한명이다. 황제 중에 거의 유일하게 철학자로도 불리며 특히 스토아학파의 영향을 받았다. 명상록은 개인의 기록이며 전장에 나가있을 적에 즉 인생에서 가장 고된 기간 중에 쓰였다. 자녀가 10명이지만 대부분이 죽었고 코모두스가 후계를 물려받아 공동집권하였고 이내 마르쿠스는 사망하였다. 마르쿠스도 알았겠지만 코모두스는 아버지에 비해 능력이 훨씬 미치지 못했으며 집정기간이 짧았고 일찍 죽었다.

명상록은 단숨에 읽는 책이 아닌 것이 마르쿠스 자신이 스스로에게 자주 다그치며 깊이 훈계하는 내용 위주로 쓰였기에 읽는 이에게도 교훈을 듣는다는 입장에서 두고두고 보는 경우가 많다. 한편 괴테와 같은 대작가도 명상록을 종종 꺼내 읽었다고 한다.
해제를 맡은 작가 그레고리 헤이스는 그리스 로마 고전연구 및 철학 분야에서 유명한 학자이다. 비교적 다른 번역서보다 읽기가 더 좋았다.

읽고 있으면 내용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 많이 든다. 무심한 투로 단정을 내리듯이 서술하는 것이 많았고 철학에 특심한 사람다웁게 깊은 생각에 따라 나온 서술이 많이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다른 사람이 볼 것을 염두하고 쓴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목이 명상록인 것도 맞지 않다고 역자는 말한다. 명상록은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도록 하기위해 정한 의도적인 제목의 느낌이 든다. 지극히 개인적으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회고록이나 비망록, 그리고 부제로 로마황제이자 철학의 삶을 깊이 실천했던 현자의 기록 정도가 어땠을까.
당시는 로마의 네로황제 때 상당했었던 초기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있었던 시절이었는데 마르쿠스도 이에 대해서는 특별히 대응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점이 오늘날의 평가에 있어서 종교에 대한 관용이 부족했던 마르쿠스의 처사로 회자된다. 정치적인 의도였지만 로마 콘스탄티누스대제때 니케아공의회에서 100년하고 조금 뒤에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는 때가 후대에 오게 된다.
스토아철학에 속했던 한 현자의 가감없는 기록을 자주 읽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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