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박사 평전 석주명
이병철 지음 / 광문각출판미디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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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비 박사 평전 석주명

이병철 광문각출판미디어
파주나비나라박물관

1985년에 첫 출간된 '석주명'이란 평전 이후 저자는 내용을 보완하여 '나비박사평전석주명' 이란 이름으로 금년에 재출간 하였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일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나비박사 석주명이란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더랬다. 어떤 경로인지는 모르겠다. 다른 책에서일까 매스컴에서 일까 혹은 숭실대학교에 박물관에서 였을까. 책을 보니 당시 평양에 있던 숭실고등보통학교에 1921년(13세)에 입학을 하셨었다. 현재는 후신인 숭실고등학교가 은평구 신사동에 있고 숭실대학교는 상도동에 있다 당시엔 두학교가 같은 뿌리였다.
하지만 전학을 송도고등보통학교로 가게되고 졸업 후 교사로 오래 재직하시면 연구및 집필활동을 이어나가셨다.

평전을 보니 과장된 바가 없을것으로 보아도 실로 대단한 활동과 몰입, 집중력에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분이었다. 18세 일본 가고시마 고등농림학교 농학과에서 두드러진 학구적기질로 현지 담당교수님에 인정받고 고국인 한국으로 돌아가 10년 고생하면 너라면 학문을 이룰 수 있겠다 싶었는지 가르침을 잘 받았다. 이때 나비박사 석주명의 고난길이 결정된 부분이다. 송도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가 초반에는 공부보다는 활동적인데다 기타를 좋아했고 다른 악기도 다룰 줄 알므로 음악에 재능을 갖춰 그쪽으로 진출하려 했을정도였으나 낙제수준의 성적으로 충격을 받았다. 그 후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 공부에 힘을 쏟아 일본의 명문에 입학하게 된 터였다.

어떤 계기로든 마음을 다잡고 공부에 뜻을 두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열정을 나비박사 석주명의 전반적인 인생을 통해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비록 42세라는 오늘날로 하면 너무나 젊은 학자는 6.25전쟁이 발발한 해 10월에 노상에서 괴뢰군으로 오인받아 술에 취한 국군과 시비가 붙다가 석주명 본인이 괴뢰군이 아님을 거듭 시인하였음에도 총격을 받아 사망하게 되었다.
태어남과 죽음은 하늘에 달려있지만 아까운 대한의 별이 허망하게 지는 순간이었다.
그 분의 노력과 업적은 나비표본만 75만 마리정도 되며, 제주방언 등 제주학, 에스페란토어에 공헌한 바 등 나비연구에 가장 헌신하셨으나 그 외에도 다양한 연구와 업적이 있었다.
나비 채집으로 전국을 쉼없이 다니시어 전국나비 분포도를 그릴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최초 국토산악회에서 자연스레 활동및 도움을 줄 수도 있었다. 한 가지를 열심리 하면 파생되는 여러가지 일들을 단연 하게 되는 사례이다.
가장 인상적아었던 것은 연구를 바라보는 학자의 열심이었는데 그 부분은 그 분의 결과물이 증거해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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