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 하 - 고려의 영웅들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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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고려거란전쟁 하편

길승수/들녘

하편이 시작되자마자 흥미를 더해가는 것이 도순검사 양규와 그 휘하의 부대 흥위위가 거란에게 빼앗긴 곽주를 탈환하는 무용담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적은 병력(공성전은 적 성안의 군사수에 10배정도 갖추어야 하지만 10배는 고사하고 성안의 군사에도 못미치는 수준)으로 곽주를 다시 찾는 것은 무모함에 가까웠고, 중랑장 등 장수급 인원들도 손사래를 치며 양규의 말이 정말 진담으로 뱉는 것인가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기도 했지만 양규의 불도저같은 추진력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양규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려 했던 무리수를 둔 것도 지금 고려군이 전반적으로 밀리는 상황인데다 정공법으로 가기엔 군사의 숫자도 태부족이라 유일한 방법은 야습, 게릴라, 소수인원의 특공작전 뿐이라 전세를 뒤집으려면 모험을 감행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위험한 작전의 선봉에 누가 설 것인가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지난 전투때 거란에 투항하고 살아 돌아온 치욕을 씻지 못하고 덤으로 주어진 삶을 무거운 마음으로 지내는 노전과 상관인 노전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보고도 못본 척하고 철수해버린 최충 이 두 사람은 참수형 감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었다. 양규의 부대에 합류하면서 어찌하든지 공을 세워 다시 명예를 회복하여 살아서 치욕을 씻든 의미있게 전사하든지 해야했기에 자신이 선봉에 선다며 아무도 하지않는 꺼리는 일을 자처하였다. 적기에 중요한 작전의 부장급 인재가 두사람이나 중용이 되었다.

그렇게 가까스로 소수의 병사만 잃고도 기사회생으로 노전과 용기있는 별동대의 활약으로 성문의 빗장을 열고 고려군을 성에 들여 곽주를 탈환하였고 그 소식은 조정까지 전해지며 이후 일파만파 퍼져서 꺾였던 고려군의 전의가 되살아났다. 그 무렵 소설에서 강감찬이 처음으로 언급된다. 조정의 대신들에게 야전에서 승전보를 듣고만 있는 우리 고관들이 더 분발해야하지 않느냐고 채근하였고 투항은 있을 수 없고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장구머리(머리가 몸에 비해 큼)와 단신의 외모로 다소 볼품이 없었던 문신출신 강감찬은 눈에 띄는 공적은 없지만 원칙주의를 잃지 않아 가늘지만 길게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터다. 구주대첩의 중심에서 전공을 세운 구국의 영웅으로 알며 역사를 배웠지만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양규를 중심으로 김순흥 등 제목처럼 여럿의 '고려의 영웅들'을 그려내고 있다.

지금 이 책을 모토로 한 드라마로 방영중인 <고려거란전쟁>에 강감찬 장군이 1화부터 등장하면서 기선을 잡고 있는데, 아직 드라마를 안봤으나 앞으로의 스토리전개가 책과 비교해서 어떤 식으로 달라지는 양상일까 걱정도 된다. 책을 안봤다면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전쟁을 위해 고려에 와 있는 거란의 황제 야율융서(성종), 고려의 왕인 왕순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려주고, 신녀(무녀)와 고려 장수 조원의 야릇하며 애틋한 장면, 무술에 최고인 장수 지채문의 여진족 무리를 무력으로 잡아 가까스로 촌로를 구해내는 스토리 등 소소한 스토리로 재미를 더한다. 고려군이 거란군을 무찌르는 내용이 위주이긴 하나 거란군도 단지 전투상에서 적일 뿐 고려군과 똑같은 인간이고 가족이 있는 동족임으로 단지 내가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서로 죽고 죽이는 아수라도 같은 상황이 야속할 뿐이다. 책의 상, 하권이 페이지가 적지 않지만 숨가쁘게 책장이 넘어갈 것이므로 읽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고려의 영웅들과 책을 통해 조우하는 것도 요새같이 싸늘한 가을에 뜨거운 차를 마시는 것 못지 않게 뜨거운 맛을 볼 수 있을 듯하니 늦가을 추위도 수월히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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