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숙이의 숙제 책 읽는 어린이 연두잎 10
유순희 지음, 오승민 그림 / 해와나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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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나날을 살아가던 명숙이에게 주어진 숙제가 바로 이름의 뜻을 알아오는 것이었다는 내용을 책의 뒤 표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순간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유난히 고전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소희라든지, 은서라든지 이런 평범하고도 세련된 이름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없지않았다. 그 마음 한켠에는 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는 마음도 있었나보다. 그러다 중학생이 되어 맞이한 첫 국어 시간에 출석을 부르시던 국어 선생님께서 내 이름이 너무 예쁘다고 감탄을 하셨다. 친구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부끄럽기도 했지만 순간 마음이 설레면서 자존감 또한 부풀어올랐다. 그 후로는 이름에 대해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의 이름에 대한 나의 인식이 바뀌던 그 순간은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나의 인식이 바뀐 순간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명숙이의 숙제]를 읽어가다보니 이름의 뜻을 알게 되기 전 후로 명숙이의 태도가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눈여겨 보게 되었다.


명숙이의 삶은 매우 고단하고 서글프다. 아버지는 퇴역한 군인인데 노름을 한다. 어머니는 어릴 때 돌아가셨고 새어머니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억척스러운 분이시다. 언니는 공장에 일하며 기숙사에서 지낸다. 그리고 얼마전 새어머니가 낳은 동생 진주를 돌봐야 해서 명숙이는 학교를 제대로 나가지 못한다. 명숙이는 늘상 배가 고프지만 사랑과 인정은 더욱 고프다. 새어머니를 도우려고 청소도 열심히 하고 동생도 열심히 돌보지만 그 어떤 따뜻한 말도, 용돈 십원도 받지 못한다. 학교도 가고싶지만 아버지도, 어머니도 진주를 돌봐주지 않는다. 배고픔에 건빵을 훔쳐 먹기도 한다. 이토록 팍팍하고 서글픈 삶을 표현하는 유순희 작가님의 문장들은 곱디 고와서 더욱 슬프다.


'어쩌면 말이야. 진짜진짜 내가 열심히 집안일하면 줄지도 몰라......

엄마들이 준다는 그 사랑 말이야......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사막에서 물을 찾는 것처럼 

그 마음은 간절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나중에는 화가 났다.

'사랑을 주는 게 그리 어렵나. 나라면 말이야.

겨울에 펄펄 내리는 큼지막한 눈송이가 

산과 들을 하얗게 덮을 만큼 내려줄텐데.'



눈물을 다 쏟아내고 나니 가슴이 후련했다.

아까보다 진주도 덜 무겁고, 그릇도 덜 무거웠다.

참 이상하다. 눈물이 그리 무거운 거였나?




그러던 어느날 이름의 뜻을 알아오라는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네 할아버지께 자신의 한자 이름을 들고 가서 여쭙게 된다. 버들 유, 밝을 명, 맑을 숙.

밝을 명(明)은 해와 달이 함께 있으니 그 얼마나 밝겠냐는 할아버지의 설명을 들으면서 명숙이는 자신이 빛으로 뭉쳐진 공처럼 굴러다니며 구석 구석 으스스한 어둠을 내쫓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또한 맑을 숙(淑)은 맑고 깊다는 뜻이라는 설명을 들으면서는 자신이 맑은 물을 가득 담은 우물이 된 것 같다고 느낀다. 그 순간 명숙이는 이름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 앞으로는 욕은 쓰지 말아야겠다고 처음으로 자기 자신과 약속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빛과 물이 만나 반짝반짝 빛나는 아주 예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이름의 의미를 알고, 자신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결국 새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명숙이는 진주를 돌보느라 더더욱 학교에 나갈 수 없게된다. 그래도 학교에 가고싶은 마음에 어린 동생을 기저귀 천으로 묶어 안방 문고리에 묶어두고 학교를 향해 달려가보지만 귓가에 점점 더 크게 들려오는 동생의 울음 소리에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리며 이야기는 끝나고 만다. 어찌보면 새드 엔딩이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많은 갈등 속에서 마지막에 명숙이가 발길을 돌린 것은 자포자기가 아니라 동생과 늘 함께 있어주겠다고 했던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환경과 상황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내일부터는 동생과 함께 "나의 교실"로 등교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오늘이 끝이 아니다. 

새로운 날, 또 새로운 날들이 책장처럼 펼쳐져 있다.

그 새로운 날의 시작은 내일부터다. 

명숙이는 선생님이 된 것처럼 속으로 말했다.

'내일은 주먹밥을 만들어서 진주를 데리고 나의 교실로 가자.

거기 가서 국어숙제도 하고 한자도 외우자.

언덕에 있는 학교로 돌아올 때까지.'


유순희 작가님의 [명숙이의 숙제]는 한 아이의 성장기인 것 같다. 어리고 연약했던 명숙이가 자신의 이름의 뜻을 알게되고, 이제는 스스로를 가치있고 귀하게 여기게 되면서 야속한 삶의 파도에 맞설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기르게 된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나 또한 가슴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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