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을 만들면 뭘 하실 건가요?" "고향에 다녀오려고요." 그이가 한참 침묵하더니 혼 잣말 같은 투로 다시 말했다. "그래요, 고향에." 그이를 보니 어쩐지 어머니가 생각났다. 나는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그림 몇 점이 있는 피나코테카 미술관에 가고 싶었다. 전날 밤 침대에 누워 잠이 들기 직전에 나는 어린 시절에 알게 된 흥분, 내가 침대에서 자고 있어도 바다는 여전히 거기 있고 밤새도록 거기 있을 것이며 내가 잠에서 깨어날 아침에도 내내 거기 있으리라는 걸 전율하는 확신으로 알게 됐을 때의 흥분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불 꺼진 피나코테카 전시실에 있는 그 그림들을 상상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지금, 이른 아침 광장에, 내가 시에나에 오기를 고대하던 시간에 거의 맞먹는, 사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집에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 여성 옆에 앉아 있으니, 아직은 그 그림들을 만나러 가기에 적당한 때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 P68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도시가 깨어나 분주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몇 사람을 멀찍이서 따라다녀 보기도 했다. 이 이상하고 남부끄러운 행동을 나는 현지인들이 시에나를 누비는 방법을 알아보고 그들의 일상을 일별하려는 거라고, 말하자면 현지인들을 따라 살아 보려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진실은 더 간단하고, 정신적이라기보다는 육체적이며, 개념보다는 리듬과 더 관계가 깊다. 나는 그저 거친 석판에 대고 끌을 가는 채석공처럼 이 도시에 대고 나 자신을 벼리고 싶었다. - P69
내 나침반은 이 도시에만, 이 도시의 꼬불꼬불한 길과 모퉁이, 이 도시의 책략과 결정, 이 도시의 취향과 의도에만 이끌려야 했다. 시에나는 내 나침반의 북극성이었다. 그리고 세심하게 애쓰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통제 욕구를 가지게 되기 마련이듯, 내가 느끼기에 그날의 시에나는 나의 자유와 충성심을 염려하는 듯했다. 그처럼 결연하고 그처럼 의도가 충만하고 그처럼 나의 존재에 관심이 많은 곳은 일찍이 가 본 적이 없었다. 어느 길로 접어들든, 내 걸음의 속도와 방향은 시에나가 결정하는 듯했다. 그때 기분으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그처럼 오랫동안 가고 싶어 했던 그 낯선 도시에서 평생이라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 P70
문이 하나 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공동묘지였다. 작은 도시공원만 했다. 묘석 대부분에 망자의 초상 사진이 새겨져 있었다. […] 일부는 몇십 년 전에 세상을 떴고, 몇몇은 백 년도 전에 별세했지만, 아직도 후손들이 들여다보고 있음이 명백한 것이, 무덤들이 세심하게 관리된 데다, 가져다 놓은 싱싱한 꽃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묘석에 새겨진 여성들의 얼굴이 낯익었다. 어릴 때 보던 여성들과 똑같이 근심 어린 얼굴들이었고, 그건 앞서 두오모(대성당) 광장에서 만난 나이지리아 여성의 얼굴이기도 했다. 걱정하는 얼굴, 전망을 확신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그 시에나 여성들은 사진이 찍힐 때 자신을 포착한 그 이미지가 자신보다 오래 살리라고 이미 짐작했던 것만 같다. 그들은 지친 듯이 마지못해 시키는 대로 카메라를 쳐다본다. 나는 그 사진들에 깊이 감동했고, 그 때문에 좀 놀랐다. - P75
끝까지 가면 탁 트인 교외가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잘하면 밖으로 나가는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경계까지 걸었다. 예상치 못한 광경이 나타났다. 알고 보니 내가 있던 곳은 공동묘지에서도 비좁은 옛 묘역이었다. 이제 눈 아래로 드넓은 묘역들이 펼쳐졌다. 일개 대대 수준의 묘석들이 층층 이 이어졌다. 규모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한 무덤을 깊이 생각하는 것과 끝을 모르는 죽음의 식욕을 일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망자들의 숫자가 산 자들을 압도한다. 현재란 검은 천 가장자리에 두른 금색 테두리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무도한가. 그런 생각이 우리 종족에 대한 더없는 열광과 음울한 자긍심과 함께 밀려왔다. 생이 계속될 수 없다는 증거, 어떤 갑옷을 두르든 예외 없이 모든 것이 사라져야 한다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대면하고도, 우리는 얼마나 용감하고 영웅적인가. - P76
문득 등 뒤에 누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돌아섰다.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바깥을 향해 놓인 벤치가 보였다. 벤치에는 오후의 마지막 햇살이 감돌았고, 은밀하면서도 탁 트여 사방으로 열린 시골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는 흔치 않은 이점이 있었다. 경계하기에 좋은 자리로군, 나는 생각했다. 숨기에 좋은 곳, 울기에 좋은 곳. 나는 벤치에 앉아 그 벤치가 절대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했다. 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 벤치가 그 자리에 남아 있기를 말이다. - P77
이탈리아어 강좌에 등록했다. 책과 책 사이에 주어지는 이 맹렬하고 우울한 자유로 고통받는 머리에는 뭐라도 배우려고 매달리는 편이 나을 거야,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 세번째 수업 중간쯤에 새로운 단어들이 연달아 들이닥치자 나는 쩔쩔매다가 거의 뛰쳐나갈 뻔했다. 벽에 부닥친 느낌이었다. 그러나 고비는 지나갔다. […]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로, 왜 이 경험이 이처럼 불편한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정오가 되어 풀려났다. 아마도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경험이 우리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때, 배가 고프다거나 춥다거나 그냥 당황스럽다는 의사를 전달할 수단이 없었던 때를 상기시키고, 우리 안에 그 곤혹스러움의 흔적이 남아 의사를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적마다 되살아나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그건 열한 살 나이에 모국어인 아랍어를 두고 영어로 옮겨 가야 했던 나의 특정한 경험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이동을 한 번 하고 나면 뒤에 오는 여하한 분열도 치명적인 위험을 뜻하게 될 수 있다. - P78
이곳의 많은 것이 익숙했다.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는 방식, 공공연한 애정 표현, 엮어서 말린 고추, 어릴 때 리비아에서 먹던 것과 똑같은 회향 씨앗이 든 비스킷, 돈을 다루는 신중함, 집과 음식에 대한 자부심, 일부 우아하고 친절한 여성 들의 정중한 태도, 일부 잘난 체하는 젊은 남자들의 자신만만함, 일부 나이 든 이들의 결연한 우아함, 일부 중년 남성들이 나를 보는 방식과 우리가 인식과 상호 이해의 시선을 교환하는 방식, 점심 식사 뒤의 시간, 소리와 침묵과 침묵의 소리, 모든 것의 표면에 새겨진 성, 취약성, 뺨들이 붉어지는 방식, 내게 신문을 판 여성과 빵집 주인과 식료품점 주인이 장 본 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나를 보고는 하나같이 하던 일을 멈추고 무슨 요리를 할 셈인지, 어떻게 요리할 작정인지를 묻고 자기 의견을 보태 주고 싶어 했다는 사실. - P82
잠시 후에 묘지로 들어서면서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한 가족이 보였다. 부부와 딸이었다. 다들 허리를 굽혀 묘석을 닦고 주변 꽃들에 물을 주면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딸은 열두 살쯤 되어 보였다. 나는 아이가 부모에게 품은 고요한 애정 같은 걸 알아차렸다. 아이의 태도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제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요. 제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어서 기뻐요.‘ 순식간에 간파한 것들이었다. 그들을 보자마자 왠지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제라드 맨리 홉킨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내 눈을 단속해야 할 듯했다. 잠시 앉아서 새소리를 들으려고 눈에 띄지 않게 계곡을 훤히 볼 수 있는 비밀 벤치 쪽으로 향하면서 그 가족이 묘지 없는 애도자인 나를 보지 못했기를 빌었다. 그제야 나는 시에나에 그림을 보러 온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홀로 애도하러, 새로운 지형을 살피며 여기서부터 앞으로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할지 알아내러 온 것이었다. - P92
눈이 어둠에 익지 않아서 그가 어디로 가는지 거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높은 천장 가장 자리를 두른 장식용 나무 들보들이 보일 만해지자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렸고, 이내 제 오빠를 쫓아 햇빛 가득한 안마당을 뛰어다니는 살마가 보였다. 동생보다 한 살 정도 많은 듯한 카림이 움켜잡으려는 동생의 손을 능란하게 피했다. 동생이 가까이 올 때마다 아이는 몹시 즐거워했다. 아이는 낄낄낄 웃었는데, 나는 그게 그 아이 특유의, 제 안의 기쁨이 불에 부채질이라도 하는 듯이, 온화하면서도 불꽃이 튀는 듯한 소리가 빠르게 이어지는 그런 웃음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둘이 달려와 차례로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뛰어다니느라 상기된 얼굴들이 나를 다시 만나 기쁘다는 기색이었는데, 둘이 어린아이라 아직 사회적 겉치레 요령을 완전히 익히지 못했음을 고려하면, 내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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