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자신의 걸작을 생산 한 것은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지난 후인 1311년에 이르러서였다. […] 이 도시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 두초 디 부오닌세냐가 여러 패널로 구성된 웅장한 제단 장식화인 거대한 <마에스타(Maesta)>를 막 완성한 것이었다. […] 그 현장에 있었다면, 사상 최초로 그 그림을 보는 이들 가운데 있었다면 얼마나 놀라웠을까. 그 그림은 색채와 사실적 묘사가 눈이 부실 지경이었고, 경건한 동시에 평범한 인간성과 현세적인 심리와 정서적 역동성 또한 보여주는 성모와 사도들의 서사적 힘은 너무도 압도적이어서 시에나시 전체를 심원한 감정적 반향으로 출렁이게 했다. […] 신앙과 연대라는 양쪽 측면에서 개인적이면서도 집단적인 거대한 감정이 모두를 사로잡았다. 오늘날 우리가 그 시대에 그런 회화적 형상이 발휘했던 힘을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림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당시의 세계에서 그런 회화적 재현은 신자들을 감동시키고 위로하면서, 그들이 믿는 자들뿐만 아니라 상상하는 자들 가운데 있음을, 그리하여 그들이 거룩한 이들과 신성한 이들을 실제로 보았음을 보증했다. - P106
같은 뿌리를 둔 형제 종교인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경쟁 관계에서 보자면, 나의 사례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확증으로 여겨질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무슬림이라면 내가 이런 성상에 이렇게 사로잡힌 것이 수상쩍다고, 어쩌면 불충스럽다고도 생각했을 것이다. 두 아브라함 신앙 중 어느 하나의 안에서 태어난다는 것, 한 문화에서 태어나 다른 문화, 이 경우엔 지금껏 너무나 오래 다른 아브라함 신앙과의 대결에 몰두해 온 다른 문화 안에서 성년에 이른다는 것은, 역사의 요점이 어느 한쪽이 옳다는 걸, 어느 한쪽이 신을 더 사랑하거나 더 참되거나 더 인간적이라는 걸 증명하는 데 있는 양, 영성이라는 것이 마음의 개인적 영역이 아니라 미소 짓는 신이 메달을 건네줄 결승선까지 가는 경주인 양, 편협한 구별 짓기와 비난과 사악한 동기를 가진 비교와 차별과 공포의 어휘들이 가지는 논리에 너무 밀접하게 관계되는 경우가 많다. 피나코테카에 선 내게는 이 모든 것이 요점을 빗나간 듯이 보였다. - P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