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아이는 태연하게 펄롱에게 크리스마스카드를 주었다. "오실 줄 알았어요. 그래서 안 부치고 가지고 있었어요. 엄마가 그러는데 아저씨는 신사래요." 좋은 사람들이 있지, 펄롱은 차를 몰고 시내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주고받는 것을 적절하게 맞추어 균형 잡을 줄 알아야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사람들하고 잘 지낼 수 있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특권임을 알았고 왜 어떤 집에서 받은 사탕 따위 선물을 다른 더 가난한 집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러듯 크리스마스는 사람들한테서 가장 좋은 면과 가장 나쁜 면 둘 다를 끌어냈다. - P102
"피곤하겠네." 계산하러 온 펄롱에게 미시즈 케호가 말했다. "날마다 하루 종일 일하니." "아주머니만큼 하겠어요." "왕관을 쓴 자는 머리가 무거운 법이지." 미시즈 케호가 웃으며 말했다. - P104
내 말이 틀렸으면 틀렸다고 해, 빌. 그런데 내가 듣기로 저기 수녀원 그 양반하고 충돌이 있었다며?" 잔돈을 받아 든 펄롱의 손에 힘이 들어갔고 시선은 걸레받이 쪽으로 떨어져 걸레받이를 따라 방구석까지 갔다. "충돌이라고 할 건 아닌데, 네, 아침에 거기 잠깐 있었어요."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거기 일에 관해 말할 때는 조심하는 편이 좋다는 거 알지? 적을 가까이 두라고들 하지. 사나운 개를 곁에 두면 순한 개가 물지 않는다고. 잘 알겠지만." - P105
"말했듯이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그 수녀들이 안 껴 있는 데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해." 펄롱이 뒤로 물러서며 미시즈 케호를 마주 보았다. "그 사람들이 갖는 힘은 딱 우리가 주는 만큼 아닌가요?" "그렇게 쉽게 생각할 일이 아냐." 미시즈 케호는 말을 멈추고는 극도로 현실적인 여자가 가끔 남자들을 볼 때 짓는 표정, 철없는 어린애 보듯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일린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었다. 사실 꽤 많았다. "내 말 너무 신경 쓰지 마." 미시즈 케호가 말했다. "하지만 자네 정말 열심히 살아서, 나만큼이나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딸들도 잘 키우고 있고. 알겠지만 그곳하고 세인트마거릿 학교 사이에는 얇은 담장 하나뿐이라고." - P106
왜 가장 가까이 있는 게 가장 보기 어려운 걸까? - P111
추위와 피로가 온몸을 덮쳐왔다. 조금씩이지만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린 눈이 온 세상 위로 내려앉았다. 펄롱은 왜 편안하고 안전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아일린은 벌써 자정미사 준비를 하면서 펄롱이 어디 있을까 생각하고 있을 거였다. 그러나 펄롱의 하루는 지금 무언가 다른 것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 P112
가는 길에 오래전부터 알고 거래해 온 사람들을 마주쳤다. 대부분 반갑게 걸음을 멈추고 말을 걸었으나, 여자아이의 새카만 맨발을 보고 그 아이가 펄롱의 딸이 아니란 걸 알아차리자 태도가 바뀌었다. 몇몇은 멀찍이 돌아가거나 어색하게 혹은 예의 바르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하고는 가 버렸다. 목줄을 길게 묶어 테리어를 산책시키던 나이 지긋한 부인은 대놓고 따졌다. 얘가 누구냐고, 세탁소 계집애 중 하나가 아니냐고 물었다. 한번은 조그만 남자아이가 세라의 발을 보고 웃으며 더럽다고 했고 아이의 아버지가 거칠게 손을 잡아당기며 조용히 하라고 했다. 전에 본 적 없는 낡은 옷을 입은 미스 케니가 걸음을 멈추더니 술 냄새를 풍기면서 세라를 당연히 펄롱의 딸이라고 생각했는지 눈이 오는데 왜 애를 신발도 없이 데리고 나왔냐고 묻고는 가버렸다. 길에서 만난 사람 누구도 세라에게 말을 걸거나 펄롱에게 어디로 데려가냐고 묻지 않았다. 펄롱은 말하거나 설명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최대한 상황을 넘기며 계속 갈 길을 갔다. 가슴속에 설렘과 함께, 아직 알 수는 없지만 반드시 맞닥뜨릴 것이 분명한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 솟았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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