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 그리고 허무 그리고 허무(nada y pues nada y pues nada)." 이런 기분에 사로잡혀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행여 아직 없다 하더라도, 언젠가 세월이 흘러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에 앉아 홀로 술잔을 기울이다가 우리는 문득 깨닫게 될지 모른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이, 언젠가 내가 읽은 적 있는 삶이라는 것을. - P61

서사의 각 국면에서 우리는 세 개의 물음(모티프)과 만나게 된다. 첫째,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예술의 위대함을 찬미하는 이야기다. 생명이 있는 것들이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다. 죽음을 극복하면 모든 것을 극복하는 것이다. 오르페우스가 악기 하나만으로 저승에까지 갈 수 있었고 아내를 데려갈 수 있게 허락을 받았다는 설정은 위대한 예술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지대한 신뢰와 동경을 입증할 것이다. 둘째, 이것은 금지와 위반에 대한 이야기다. 플루토가 ‘뒤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이유는 분명치 않다. 죽은 자는 살려내선 안 된다는 자신의 원칙을 깨기 위해 최소한의 명분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르페우스가 결국 돌아보고 말았다는 점이다. 돌아보지 말라고 하면 결국 돌아보게 된다. 이 모티프가 구약의 창세기에서 한국의 민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것은 이 설정이 욕망의 본질(금지가 있는 곳에 위반이 있다)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장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 이것은 상실과 애도에 대한 이야기다. 오르페우스는 애도를 끝내는 데 실패하고 타살의 형식으로 자살한 인물이다. 이상 세 가지 모티프는 이 원형적인 이야기로 들어갈 수 있는 세 개의 문이 된다. - P73

오르페우스 신화가 비극적인 것은 이것이 사랑하는 연인을 제 손으로 한 번 더 죽인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별의 순간에 연인은 나를 떠남으로써 내게서 한 번 죽는다. 그런데 더 사랑하는 사람은 더 사랑하는 사람의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이별의 순간에 상대방을 질리게 만들 수 있다. 죽은 연인을 살리려는 노력이 외려 그를 한 번 더 죽이게 되는 경우다. 이 경우 떠난 것은 너이지만, 네가 돌아올 수 없게 만든 것은 내가 되고 만다. - P75

너무 오랫동안 울음을 참아온 그는 정작 자신이 그래왔다는 사실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 중 하나는 자기 자신이 슬픔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슬픔이다. - P78

진정한 고통은 침묵의 형식으로 현존한다. 고통스러운 사람은 고통스럽다고 말할 힘이 없을 것이다. - P88

"나는 늘 내가 쓴 글이 출간될 때쯤이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글을 쓰고 싶어 했다."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 아니 에르노의 《집착》(문학동네, 2005)은 ‘고통‘이라는 단어의 출현 빈도가 분량 대비 가장 높은 작품일 것이다.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은 근래 읽은 고통의 기록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젊었을 때는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닮아 있는데 그것은 이 소설들이 고통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 아니라 고통 그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 P88

질문은 진실을 말하라고 던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대체로 인간 개개인의 진실이라는 것은 도무지 한두 마디로 말해질 수 없는 것일 때가 많다.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진실은, 이렇게 시작되는 긴 이야기의 끝에서야, 겨우 떠오를 것이다. - P92

문학이 귀한 것은 가장 끝까지 듣고 가장 나중에 판단하기 때문이다. - P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1755)에서 천하의 무자비한 폭군도 극장에서는 타인의 불행을 보며 눈물을 흘릴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인간의 태생적 동정심을 긍정했다. 그런데 한 저자는 저 대목을 거꾸로 읽는다. 극장에서는 태연한 눈물을 흘리는 인간도 자신이 직접 행하는 악덕에는 무감각해질 수 있다는 뜻으로 말이다. "우리가 스스로 야기한 상처에 대해서는 아무런 동정심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야기하지 않은 고통 앞에서는 울 수 있어도 자신이 야기한 상처 앞에서는 목석같이 굴 것이다."(사이먼 메이, 《사랑의 탄생》, 문학동네, 2016, 292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자신이 원인을 제공한 슬픔에 더 깊이 공감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행동한다. 이 경우 타인의 슬픔은 내가 어떤 도덕적 자기만족을 느끼며 공감을 시도할 만한 그런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추궁하고 심문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 슬픔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나를 불편하게 할 것이다. - P25

아이스킬로스의 소위 ‘고통을 통한 배움(pathei mathos)‘ (〈아가멤논〉, 177행)이란 고통 뒤에는 깨달음이 있다는 뜻이지만 고통 없이는 무엇도 진정으로 배울 수 없다는 뜻도 된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같은 경험과 같은 고통만이 같은 슬픔에 이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 P27

〈킬링 디어〉가 엄밀한 의미에서 ‘비극‘인 것은 이 인간 조건의 비극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특정한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바로 결함이라는 것. 그러므로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 P27

〈킬링 디어〉의 첫 장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뛰고 있는 심장이다. 이 장면은 말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심장이다. 심장은 언제나 제 주인만을 위해 뛰고, 계속 뛰기 위해서만 뛴다. 타인의 몸속에서 뛸 수 없고 타인의 슬픔 때문에 멈추지도 않는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라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에게 한계다. 그러나 이 한계를 인정하되 긍정하지는 못하겠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니까. 그럴 때 인간은 심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픔을 공부하는 심장이다.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이기적이기도 싫고 그렇다고 위선적이기도 싫지만, 자주 둘 다가 되고 마는 심장의 비참. - P28

"거대한 고통은 정체되어 있다가 이완의 순간에 터져 나오는 법이다. 이 시종을 본 순간이 바로 그 이완의 순간이었다." 예컨대 별안간 부모의 초상을 치르게 된 사람이 미처 슬퍼할 겨를도 없이 장례식을 치르고 집에 돌아와서는, 현관에 놓인 부모의 낡고 오래된 신발 한 짝을 보고 비로소 주저앉아 통곡하게 되는 상황 같은 것일까. 아마 그런 것이리라. 벤야민은 자신의 해석까지 소개하고 덧붙이기를, 헤로도토스가 왕의 심경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으므로 이 이야기가 오랫동안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이라 했다. - P31

상처와 고통의 양을 저울 위에 올려놓는 일이 비정한 일인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비정한 일은, 네가 아픈 만큼 나도 아프다고, 그러니 누가 더 아프고 덜 아픈지를 따지지 말자고 말하는 일일 것이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덜 아픈 사람이다. 지배하는 사랑과 미성숙한 사랑의 공통점 중 하나는 저울을 사용할 줄 모르거나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 데 있다. - P53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는 인간은 타인의 뒷모습에서 인생의 얼굴을 보려 허둥대는 것이다. - P55

허무에 계신 우리의 허무님, 당신의 이름으로 허무해지시고, 당신의 왕국이 허무하소서. 하늘에서 허무하셨던 것과 같이 땅에서도 허무하소서. 우리에게 일용할 허무를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허무한 것을 허무하게 한 것과 같이 우리의 허무를 허무하게 해주소서. 우리를 허무에 들지 말게 하시고, 다만 허무에서 구하소서. 허무로 가득한 허무를 찬미하라, 허무가 그대와 함께하리니. - P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에게 욕심은 팔이 세 개, 발이 네 개, 눈은 열 개쯤이면 좋겠다고 바라는 거다. 욕심은 어디에 쓰나 그런 데다 쓰지. 바라는 데에 기도하는 데에 지우고 다시 적어가는 일기에 써야지, 욕심. H가 눈을 계속 크게 뜨고 있다. 정말 인색한 그런 사람 있잖아 너무 싫어. 너무 싫은 것까지는 모르겠다. 욕심도 자기 마음, 어디에 쓰든 자기 마음이지 했었다. 그 마음이 다른 마음들을 밀치고 외면하고 부수 는 걸 너무 많이 봤다. 그렇게 되지 않는 세상이면 좋았을 것이다. 내 욕심이 내 욕심으로만 끝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므로 욕심은 어디 보이지 않는 곳에 잘 숨겨두자 하고 저 흑연 속에 꽁꽁. 오늘은 조금만 쓸게요, 내 욕심. 연필을 깎으면서 누구에겐가 허락을 구한다. 욕심은 부리는 게 아니라 쓰는 걸지도 모르겠어. - P215

탁 트인 호수 풍경에 달짝지근한 바람이 스치던 순간, 책장이 휘리릭 넘어가고 상관없다는 듯 눈을 감았던 순간, 붙잡고 싶은 중요한 게 하나도 없어서 겁이 나면서도 가벼웠던 순간, 정말 좋은 순간은 현실원칙이 전혀 상관없는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 P217

해가 지고 바람이 조금 더 쌀쌀해지면 그 기운에 기대 ‘너는 왜 내가 생각하는 네 모습이 아닌가‘를 두고 화를 내고 있는 한 사람에게 답장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네가 생각하는 나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고. - P217

구름 사이로 해가 났다.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을 조금 열었다. 고통을 이해받길 바라면서도 동시에 일반화는 거부하는, 무지에도 한숨이 나지만 아는 척에도 짜증이 나는 틈의 시간. 곁에 있는 타인의 짧은 한숨이 거대한 지뢰가 되는 이 복잡하고 기만적인 시간. - P219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은 몸을 이해하고 있다. 통증 외에는 고요하다. 슬픔을 보이지 않는 일이 슬픔을 보지 않는 일과 만나 혼자가 된다. 자기 고통조차 혼자 두는, 고통의 진짜 이름을 모르는 우리의 안녕은 이제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안녕하세요. 답하지 못한다. - P220

버지니아 울프가 썼다. 여성이 글을 막 쓰려는 순간 가장 먼저 깨닫게 되는 사실은 여성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마련된 어떤 공동의 문장도 없다는 것이라고. 아픈 여성의 몸에 대해서도 그 점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얼마 후 에이드리언 리치가 "이것은 압제자의 언어다. 그러나 당신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필요하다"라고 했을 것이다. 나도 이것이 필요하다. 관습, 관성, 관종의 규범을 거부하는 다른 언어를 제안하기 위해. 병과 몸을 이분법으로 나눠 대결시킬 수 없으니 ‘투병‘은 맞지 않았다. 앓아 누운 이미지의 ‘와병‘ 역시 아침저녁으로 달라지는 일상의 상태를 설명하기에는 적절치 못했다. 투병도 와병도 아픈 몸의 시간을 같이 살지 못하는 표현이었다. 지난 몇 개월 고통을 언어화하는 시도 가운데 적절한 언어를 찾을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소외감만 커졌다. - P224

혼자 살지만 고립되지 않기가 몇 년째 비혼 친구들의 화두이다. 너무 고립되어 자아상이 틀어졌거나 더는 연결하기 힘든 세계로 간 이들과의 절연 경험이 고민으로 이어져온 셈이다. 우리는 다를 수 있을까? 혼자 살면 어떤 면에서 보수성이 강화되는 지점이 있다는 얘기를 나누다가 그런 걱정 묻은 자문을 한다. 글쎄. 거의 낙관하지 않는 것도 이십 년 비혼 삶들의 특징 중 하나일까. 우리는 조금씩 우리가 이상해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실은 그걸 아는 사람들과만 친구로 지내고 있다. - P241

비혼이라도 삶의 양상이 다 다르다. 친구들도 그렇다. 십 년, 이십 년 살다보면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기도 하고. 차이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인 계급은 드러내 말하진 않지만 언제나 우리가 ‘너와 나는 다르지‘ 하고 등을 돌릴 수 있는 이유로 관계 틈에 도사리고 있다. 비혼 여자 둘이 ‘아파트‘에 사는 것과 비혼 여자 혼자 ‘반지하‘에 사는 일의 공통점을 찾으려고 하면 한쪽이 많이 지워진다. 이상하게 그런 부분은 잘 얘기되지 않는다. 자기 소유의 집에서 주식 동향을 살피며 살 수 있길 바라며 그 욕망에 혹시 흠이라도 생길까봐 어떤 존재들의 입을 막는 식이다. - P242

인생의 반을 혼자 살면서 거의 변하지 않은 것이라면 좋은 동행들과 서로 오고갈 길을 만드는 일의 중요성이다. 덕분에 무섭다가 무섭지 않고 막막하다가 또 늘 그렇지도 않다. 하지만 제도적으로는 잠시라도 대리/대타가 불가능하다는 것, 그래서 아파도 운신할 수 있을 만큼 아파야 한다는 현실의 제약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혼자 살아, 라고 권하기 망설여지는 이유가 된다. 비혼은 결혼하지 않음의 상태 외에도 어떤 세계로부터 배제되어 친구 없이, 가족 없이 혼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선택이다. 내 선택이 나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삶. 위협과 함께 오는 고통을 지금껏 겪고 살아남았다는 게 또 힘이 될 거라고, 아파서 결근했다는 친구의 집 앞에 죽을 걸어두며 편지도 함께 남겼다.
아플 때, 힘들 때 여자들은 곧잘 자기 저울 위에 다른 여자들을 올린다. 혹독하고 사나운 마음이 된다. - P242

기괴한 방식으로 우리는 누군가의 거울이 된다. 거울을 조심하자. 아이에게 ‘다른 사람‘은 사실 좋은 뜻이라고 말해준다. 우리가 다른 사람이어서 내가 너를 사랑하는 거라고. 세상 모든 시계가 멈출 때까지 우리는 서로를 조심하자. 아이와 새끼손가락을 건다. 마음에 새긴다는 의미의 또다른 조심彫心이 있다는 건 다음에 말해줘야지. - P246

해러웨이가 말한 실뜨기는 수동과 능동이 교차하고 연결과 멈춤이 이어지고 주체와 객체의 자리가 유동하는,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은유이기도 할 텐데 그 줄을 잘라야 한다는 거니까. 부쩍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던 참이었으니까. 남 탓 없이 무책임한 내 탓이오도 없이 조용히 실을 끊는 게 가능할지에 대해서. 잊으면 그만이라던 사람도 자기는 냉정하다고 말하던 사람도 단박에 실을 끊기는 쉽지 않아 보였지만 어쩌면 이제 나는 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 P247

내가 자책을 했던가? 기억은 없지만 그랬을 것 같다. 남은 사람이 하는 많은 일들 중 하나로, 애도의 과정으로 그러고 말았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그를 떠올리는 일과 자책하기를 동시에 했다. 그로부터 나는 또 얼마나 멀어졌나. 가끔은 아득하고 가끔은 아뜩해진다. 이제 자책은 그만두었지? 그가 추신으로 쓴 질문이 새끼손가락에 걸려서 대롱거렸다.

그때처럼은 하지 않지 물론. 하지만 알잖아. 자책은 모습을 바꾸는 괴물이야. 자학이 되었다가 자조가 되었다가 요즘은 자애 쪽으로 방향을 트는 중이야. 아주 훌륭한 변태metamorphosis지.

제 몸을 스스로 아낌의 그 자애. 방향을 틀고 있다는 건 거짓말이다. 바람을 담은 거짓말이니까 이 일기가 예언의 글이 되어서 내일의 자애를 불러오면 좋겠다. - P255

우리의 종족들에 대해 나눈 이야기들, 우리 괴물들과 우리 화석들, 뼈들과 떨어져나간 살점들이 묻힌 사막은 이제 누구도 돌보지 않는 폐허가 될 것이다. 필멸과 불멸 속 고통의 물질인 우리가 이제 사랑 없이 고통 속으로 돌아간다. 마음이 소용의 전부였던 시간이 마음도 소용없는 시간으로. 그렇게 이별이다. 그러므로 하나만 바라자. 무언가를 시도해보기도 전에 평가와 질타의 매서움부터 감당해야 했던 우리의 여성성이 각자 혼자가 되더라도 더는 연약해지지 않기를. 우리는 서로에게 환대의 역사이기도 하다. - P256

변화는 오로지 과거형으로만 인식할 수 있다. 그러니까 ‘변했다‘로만. 변한다거나 변하고 있다거나 하는 건 기원이자 주술이지 사실 우리는 전혀 모르는 것 같다고. 겨우 방향만 감지할 뿐인 것 같다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표식으로서의 돌탑이든 냄새든 기운이든 겨우 그런 것들에 의지해 맞게 가고 있나보다 안심할 수 있을 뿐이지 않나, 하고. - P273

고래의 육체만큼 거대한 기억을 가진 인간이라면 고래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의 고통도 잘 설명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누군가에게 주는 고통 역시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 점이 늘 두렵다. 이해할 수 없는 그 고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고통. - P276

인간은 사물들을 우회로 삼아 세계와 자신을 잇기도 한다. 장난감가게나 선물가게 앞에서 아이의 눈빛이 달라지는 건 일찌감치 자신을 세계와 연결할 매개로서의 사물을 알아봐서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곳의 사물들은 너무나 자극적이니까. 갖고 싶지 않아요, 라고 거짓말 하면서 목소리가 떨리고 마는 그런 것들. - P277

누군가를 웃게 할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의 불안을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 P282

비록, 내 전생이 고되고, 현생이 슬프더라도 다음 세상에는 이곳에 내리지 않도록 하옵시고 내가 두른 이 헛껍질처럼 하얗게 투명한 빛이 되어 살게 하소서. - P289

웃음으로 끝나는 기억은 안심할 수 있다. - P291

신기하다. 최초로부터 이만큼, 한참 왔는데도 그 상처의 자리로 어떤 이질감 없이 이동한다는 것이. 그 자리와 비슷한 상황, 사람들의 친숙한 악의, 돌연한 두근거림이 갖춰지는 순간 주먹을 쥐는 것만도 힘에 부치는 그 시절의 아이가 된다. 번번이 그렇다. 이대로 끝나도 괜찮아. 잠이 들 때에야 솔직할 수 있었던 자리로. 이해하시겠죠? 하지만 동쪽이는 그 자리를 허물고 싶지 않다. 나의 불완전한 낙원은 그 자리를 뼈대로 지어졌다. 좀 거추장스럽고 불편하지만 그게 내 이야기이다. 이야기 안에 자신을 기입하려는 자가 무너뜨려야 하는 건 과거가 아니라 과거를 교정하려는 지금, 주변의 억압이다. - P294

최선은 잘 모르겠지만 진심에 관해서라면 조금 안다. 밤 열시, 장례식장 앞에서 친구 문상을 하고 나온 노인들의 떨리는 손. 진심은 그런 손을 잡는다. 초저녁잠 많은 노인들이 졸음 가득한 눈으로 서로를 보다 말다 하며 서 있었다. 그들 곁에 서서 어떻게 인사를 하고 집에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내 손도 떨렸다. 우리는 모두 모임의 리더 격인 노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화장실에서 나온 노인이 한 손에 손수건을 꼭 쥐고 해산 명령을 내리듯 말했다.
"그만 가요. 가서, 우리는 살던 거 마저 삽시다." - P297

하루에도 몇 번씩, 몇 달 동안 외우고 읊었을 "이 물건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으로 시작되는 지하철 잡상인의 멘트는 그날도 이어졌는데 엄청난 대본량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망설임이나 실수 없이 제품 설명을 이어가던 그가 갑자기 툭, 물건을 든 팔을 떨구고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닫았다. 그를 따라 시간이, 지하철이 갑자기 멈춘 것 같았다. 불과 몇 초 동안 나는 몇 분의 정적에 휩싸인 것처럼 초조해졌다. 말하자면 생방송 사고였다. 생존 사고이기도 했다. 실려가고 실려오던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어 그를 봤다.
"아, 못하겠다......"
나지막한 한마디. 그와 가까이 앉아 있던 사람들에게만 들렸을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물건을 정리해 애초에 그럴 계획이었던 것처럼 다음 역에서 내렸다. 장사를 포기한 잡상인으로서가 아니라 훼손당하지 않으려고 결심한 자의 뒷모습으로, 나는 그가 내린 역으로부터 세 개 역을 더 가야 했고, 역들을 지나는 내내 얼떨떨하다가 약속이 있던 역에 내린 다음에야 울음이 터졌다. 그 갑작스러운 파열을 지금도 설명할 수 없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똑같이 울고 싶어진다.
‘아, 못하겠다······‘ 다음을 채우는 것들. 멈춤이고 하차이고 쉼이고 영영 그러지 못해서 치닫는 슬픔이다. 궤도 밖에도 삶이 있으므로 우리는 계속 고통받겠지만 "아, 못하겠다······" 하고 일단은 밖으로 탈주하는 상상. 트랙에서 병실에서 이 행성과 몸에서. - P3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짐꾼의 푸른 작업복은 날염된 천처럼 등에 마른 핏자국이 엉겨붙어 있었다. 그가 운전사 옆에 자리를 잡자 운전사는 역겹다는 얼굴로 장갑을 벗어던지고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고갱의 동일한 그림들을 보면서 나는 행복을 느꼈다. 행인들의 눈을 즐겁게 해줄 〈안녕하세요. 고갱 씨!〉였다. 울긋불긋한 이 멋진 트럭과 마주치는 행인들 모두가 기쁨을 맛보리라. 광기에 사로잡힌 파리들은 트럭과 함께 작업장 안마당을 떠났지만 스팔레나 거리의 햇빛에 다시 활기를 띠고 트럭 주위를 정신착란에 걸린 듯이 날아다녔다. 푸른색과 녹색, 금갈색의 저 미친 파리들은 큰 상자들 안에 고객 씨와 함께 갇혀 있다가 제지 공장에서 산과 알칼리 용액 속에 용해될 운명이었다. 녀석들에겐 이미 부패한 이 피보다 더 좋은 게 세상에 없었으니까. - P82

지하실로 도로 내려가려다가 소장과 마주쳤다. […] 그렇게 그의 몸을 일으키는데, 그가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것이 느껴져 나는 또 한번 용서를 빌었다. 무얼 용서해달라는 건지 나도 알 수 없었지만 뭐, 놀랄 일도 아니었다. 늘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게 내 운명이었으니까.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것에 대해, 이런 성질을 가진 것에 대해. 심지어 나 자신에게까지 용서를 빌곤 했으니까······ 나는 죄책감으로 무겁고 비참한 심정이 되어 내 지하실을 바라보면서 터키옥색 집시 여자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는 움푹한 자리에 몸을 눕혔다. 그리고 거리의 소음에, 현실의 저 아름다운 음악 소리에 귀기울였다. 건물 다섯 층에서 폐수가 쉴새없이 꾸르륵대며 빠지는 소리와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도 들렸다. 땅 밑 깊은 곳으로 주의를 돌리자 시궁창과 하수구에 콸콸 흐르는 똥과 오수의 희미한 소리도 또렷이 분간되었다. 파리떼는 떠나가고 없었지만 콘크리트 포석 밑에서 쥐들이 찍찍대며 이 도시의 모든 하수도에서 절망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지하 세계의 패권을 다투는 전쟁이 변함없이 창궐해 있었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나 자신의 밖과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 역시 마찬가지다. 안녕하세요, 고갱 씨! - P83

내가 보는 세상만사는 동시성을 띤 왕복운동으로 활기를 띤다. 일제히 전진하는가 싶다가도 느닷없이 후퇴한다. 대장간 풀무가 그렇고, 붉은색과 녹색 버튼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내 압축기가 그렇다. 만사는 절룩거리며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지는데, 그 덕분에 세상은 절름발이 신세를 면하게 된다. - P85

나는 삼십오 년째 폐지를 꾸리고 있다. 그런데 이 일을 제대로 하려면 대학 교육을 받았거나 적어도 제대로 된 인문학 교육을 받았어야 하리라. 최적의 조건은 신학 학위가 아닐까 싶지만. 내 직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는 나선과 원이 상웅하고, 프로그레수스 아드 푸투룸과 레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이 뒤섞인다. 그 모두를 나는 강렬하게 체험한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는 행복이라는 불행을 짊어진 사람인데, 프로그레스 아드 오리기넴과 레그레스 아드 푸투룸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이제야 깨닫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저녁식사를 하며 〈프라하 석간신문〉을 읽듯이, 이제 나는 그런 생각들을 소일거리로 삼는다. - P85

어제는 그 선로 변경 초소에서 뇌졸중으로 죽음을 맞은 외삼촌의 장례를 치렀다. […] 그렇게 수습한 것들을 관 속에 놓인 삼촌의 옷에 몽땅 쑤셔넣었다. 그리고 아직 못에 걸려 있는 철도원 모자를 삼촌의 머리에 씌우고 삼촌의 손가락 사이에는 이마누엘 칸트의 아름다운 글귀를 끼워넣었다. "나의 생각을 언제나 더 크고 새로운 감탄으로 차오르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내 머리 위의 별이 총총한 하늘과, 내 마음속에 살아 있는 도덕률이다······" 언제 읽어도 변함없는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글귀였다. 하지만 나는 곧 마음을 고쳐먹고 젊은 칸트의 책을 들척이다가 더 아름다운 문장을 찾아냈다. "여름밤의 떨리는 미광이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하고 달의 형태가 정점에 이르는 순간, 나는 세상에 대한 경멸과 우정, 영원으로 형성된 고도의 감각 속으로 서서히 빠져든다······ - P87

녹색 버튼과 붉은색 버튼을 누르면 압축판이 전진하거나 후진했다. 기계가 멈출 때마다 나는 술을 마시며 칸트의 『천계론』을 읽었다. 한 불멸의 정신이 침묵 속에서, 밤의 절대적인 침묵 속에서, 그때까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물론 이해할 수는 있지만 정녕 설명할 수는 없는 개념들이다. 너무도 놀라운 글귀들이어서 나는 저 높은 곳의 별이 총총한 하늘한 자락을 보려고 건물의 배기까지 뛰어가야 했다. 그러고 나면 역겨운 종이 더미와 솜뭉치에 둘러싸인 생쥐 가족들에게로 돌아왔고, 그들을 갈퀴로 찍어 압축통 속에 던져넣었다······ 폐지를 압축하는 사람 역시 하늘보다 인간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건 일종의 암살이며 무고한 생명을 학살하는 행위이지만, 그래도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 P91

처음에 나는 그녀가 항시 불을 지피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을 사기 위해 그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불은 그녀 안에 있었다. 타오르는 불꽃이 없다면 그녀는 살 수 없었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나는 이름도 모르는 그 집시 여자와 함께 살았다. 그녀도 내 이름을 알려고 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저녁마다 우리는 말없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다시 만났다. 그녀는 내 집 열쇠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 P99

그녀가 치맛자락에 빵 부스러기를 모아 담아 경건한 몸짓으로 불속에 던져넣었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불이 모두 꺼진 방안에 누워 천장에 눈길을 고정한 채 빛과 그림자가 춤추듯 일렁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 위에 놓인 맥주 단지를 집어들라치면 해초와 수중식물로 가득한 수족관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아니면 보름달 밤에 깊은 숲속에서 흔들리는 그림자들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 P100

사실 나는 땅거미가 지는 해질 무렵을 너무도 사랑했다. 하루 중에서 무언가 굉장한 일이 닥칠 것만 같은 기분에 젖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이런 불확실한 시각에는 모든 거리와 장소가 평소보다 더 근사해 보였다. 사람들의 표정도 명상에 잠긴 듯 온화해졌고, 그 순간만은 나 역시 아름다운 청년이 된 것 같은 환상에 빠졌다. 거울이나 상점 진열창을 힐끗거리면 주름살 하나 없는 내 모습이 보였고, 놀란 내 손가락들이 얼굴을 더듬었다······ - P101

하지만 어느 저녁, 집에 돌아왔는데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불을 켠 뒤 밖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새벽까지 기다렸지만 헛일이었고,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도 그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 다시 그녀를 볼 수 없었다. 한 개비 장작처럼, 성령의 숨결처럼 단순했던 내 어린 집시 여자. 내 난로에 불을 지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던 여자. 건물 잔해 속에서 찾아낸 무거운 널빤지들을 커다란 나무 십자가처럼 어깨에 메고서 끌고 오던 여자. 감자 스튜와 말고기 소시지면 족했고, 난로에 불을 지피고 가을 하늘에 커다란 연을 날리는 것 외에는 더이상 바라는 게 없었던 여자. - P104

나는 이 히틀러와 열광하는 남녀들과 아이들을 파쇄하고 짓이겼는데, 그럴수록 나의 집시 여자가 더 간절히 생각났다. 열광이라고는 모르던 여자. 내 난로에 불을 지퍼 자신의 스튜를 끓이고 내 맥주 단지를 채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던 여자. 빵을 성체처럼 쪼개고, 그런 다음에는 난로와 불꽃과 열기, 타닥타닥 타오르는 감미로운 불길을 보며 명상하는 것 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던 여자. 이 불의 노래는 그녀가 유년기부터 알아왔고 그녀의 종족을 신성한 유대감으로 묶어주던 것이었다. 그 빛은 사람들의 얼굴에 우수 어린 미소를 그려 넣으며 모든 고통을 물리치는 것이었고, 그녀에게는 절대적인 행복의 그림자였다······ - P106

침대에 등을 대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데 아주 작은 생쥐 한 마리가 내 가슴팍 위로 떨어져 미끄러지듯 달아나 몸을 숨겼다. 내 가방이나 외투 호주머니에 두세 마리가 딸려온 게 틀림없었다. 마당에 변기 냄새가 가득 퍼져 있는 것을 보니 곧 비가 퍼붓겠다 싶었다. 술과 노동으로 멍해진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이틀 동안 내 지하실을 청소하며 생쥐들을 희생시킨 참이었다. 그저 책이나 갉아먹고 폐지 더미에 뚫린 구멍 속에 살며 그 작은 둥지 안에서 새끼들을 낳고 키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소박한 짐승들인데. 추운 밤이면 내 품안에서 공처럼 옹크렸던 내 어린 집시 여자처럼 몸을 사린 생쥐들이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래도 저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연민과 사랑이 분명 존재한다. 오랫동안 내가 잊고 있었고,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그것이. - P107

무엇보다 그들이 낀 장갑에 나는 모욕을 느꼈다. 종이의 감촉을 더 잘 느끼고 두 손 가득 음미하기 위해 나는 절대로 장갑을 끼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런 기쁨에, 폐지가 지닌 비길 데 없이 감각적인 매력에 아무도 마음을 두는 것 같지 않았다. 바츨라프 광장의 에스컬레이터를 탄 사람들처럼, 책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올라가 스미호프 양조장의 가마솥만큼이나 거대한 가마솥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저 끔찍한 용기가 가득차면 벨트가 멈추었고 거대한 수직 나사가 천장에서 내려와서는 무시무시한 힘으로 종이를 짓누른 뒤 지친 탄식을 내뱉으며 천장으로 도로 올라갔다. 그러고 나면 모든 게 다시 시작되었다. 벨트가 흔들리며 카렐 광장의 분수대만큼이나 커다란 타원형 용기 속으로 종이를 밀어넣었다······ 책더미들이 여기서 몽땅 파괴되었다. 나는 이제 마음을 추스르고 유리 벽 너머로 트럭들이 손때 묻지 않은 새 책들을 쏟아놓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었다. 그 책들은 어느 누구의 눈이나 마음, 머리도 오염시키지 못한 채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 P111

대담해진 나는 압축통을 에워싼 승강대 위로 기어올라가보았다. 한 번에 5만 리터의 맥주를 생산해내는 스미호프 양조장에서처럼 그곳을 어슬렁거리면서, 공사가 진행중인 집의 비계 위에 올라선 것처럼 난간에 기대어 홀을 내려다보았다. […] 스웨터들과 캡들이 앵무새나 꾀꼬리, 물총새의 깃털처럼, 요란한 색깔의 향연 속에 길을 잃고 있었다. 소름 끼치는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나는 상황을 정확히 이해했다. 저 거대한 압축기가 다른 모든 압축기에 치명타를 가할 것이고, 내가 몸담고 있는 직업에도 상이한 유형의 사람들과 작업 방식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었다. 실수로 그곳에 버려진 책들과 사소한 기쁨도 끝이었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처럼 늙은 압축공들이 누렸던 좋은 시절도 끝이 나고 만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게 되었으니까. 매 꾸러미에서 책을 한 권씩 골라 보너스로 준다 해도 나는 거기서 끝장이었고,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책 속에서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찾겠다는 열망으로 우리가 종이 더미에서 구해낸 장서들도 모두 끝장이었다. - P112

그러나 내 용기를 결정적으로 꺾어놓은 건 그 젊은이들이었다. 양다리를 벌린 채 손을 허리에 갖다대고 우유와 코카콜라를 병째 들이켜는 젊은이들. 더럽고 지친 늙은 일꾼이 일감에 매달려 혼신의 힘으로 맞붙었던 시절은 완전히 끝이 나고 만 것이다! 새 인간, 새 방식과 더불어 바야흐로 새 시대의 막이 오른 것이다. 우유를 수리터씩 들이켜며 일한다는 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암소들이라면 갈증이 나서 죽을지언정 우유라면 한 모금도 마시려 하지 않을 텐데. - P114

그들의 그리스 휴가 계획은 나를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았다. 헤르더와 헤겔의 책들은 나를 고대 그리스에 던져놓았고 프리드리히 니체는 디오니소스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건만 내가 막상 휴가를 떠나본 적은 없었다. 일을 따라잡느라 휴가는 늘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하루라도 결근을 하면 소장은 가차없이 추가로 이틀을 더 근무하게 했다. 어쩌다 하루 쉬는 날이 찾아와도 나는 수당을 받고 일하러 갔다. 일이 항시 밀려 있는데다, 내 역량을 넘어서는 종이 더미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으니까. 사르트르 양반과 카뮈 양반이, 특히 후자가 멋들어지게 글로 옮겨놓은 시시포스 콤플렉스는 지난 삼 십오 년 동안 내 일상의 몫이었다. 그러나 부브니의 사회주의 노동단원들은 일이 밀리는 법이 없었다. 고대 그리스의 미소년들처럼 볕에 그을린 젊은 남녀들이 작업을 재개하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플라톤도, 괴테도, 불멸의 고대 그리스도 모르는 그들은 헬라스에서 여름을 보내는 일에도 그저 무덤덤하기만 했다. - P116

저 젊은이들은 완전히 새로운 존재인 게 확실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내 지하 공간으로 돌아왔다. 뒷문으로 들어와 어슴푸레한 빛과 희미한 전구, 곰팡내를 다시 찾았다. 내 압축기와 반들반들 윤이 나는 압축통, 세월의 손길이 밴 그 나뭇결을 어루만졌다. 그 순간 난데없이 비통한 고함소리가 귓전을 때려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천장에서 소장이 충혈된 눈으로 얼굴을 아래로 들이밀고 내지르는 소리였다. 내가 긴 시간 자리를 비운 사이 작업장 안마당이 종이로 뒤덮여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가 대체 무엇 때문에 나를 꾸짖는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면서 스스로가 비열한 인간처럼 여겨졌다. 더이상 나를 보아넘길 수 없게 된 소장은 내가 아직 아무한테도 들어본 적 없는 욕설을 쏟아놓았다.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능한 인간이고 바보천치였다······ 부브니의 거대한 압축기와 청년 사회주의 노동단원들 그리고 그들의 그리스 여행에 심적으로 팽팽히 대립해 있는 나는 멍청한 인간이었고, 내 작은 압축기보다 더 미미한 존재였다. - P122

만차는 이미 잿빛이 된 머리를 짧게 자른 모습이었다. 어린 소년이나 운동선수, 아니면 신의 은총을 입은 육상 선수의 머리 모양이랄까. 한쪽 눈이 다른 쪽 눈보다 아래로 내려가 우아한 인상을 주었다. 사시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시각적인 결함이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무한의 문턱 너머에 자리한 정삼각형의 한복판, 존재의 심부에 영원히 고정된 채 길을 잃고 방황하는 눈이었다. 그녀의 사팔눈은, 어느 가톨릭 실존주의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금강석에 난 영원한 흠을 암시했다. 나는 망연자실하여 그곳에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경악을 금할 수 없었던 건 두 개의 크고 흰 장롱처럼 보이는 천사의 두 날개였다. 그것들이 보일락 말락 파닥이는 것 같았다. 비상에 앞서, 아니면 하늘로부터 귀환한 뒤 잠깐 동안, 만차가 부드럽게 날갯짓을 하는 것 같았다. 이제 나는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책이라면 질겁하며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던 만차가 말년에 성스러움의 경지까지 올랐음을······ - P127

그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천사가 그녀 앞에 나타났었고, 그 천사의 조언대로 그녀는 한 토목공을 유혹 했노라고. 그리고 가진 돈을 털어 전원에 땅을 샀는데, 토목공이 그녀와 함께 텐트에서 밤을 보내며 낮에는 이 땅에 집을 지을 기초공사를 했다고. 하지만 그녀는 이 토목공을 차버리고 석수와 살았고, 이 석수 역시 텐트 아래서 그녀와 사랑을 나누며 사방 벽을 쌓았다고. 뒤이어 그녀는 목수와 살았는데, 그는 이미 그녀의 방과 침대를 함께 썼다고. 그다음은 배관공이자 아연공인 남자의 차례였는데 해당 작업이 마무리되자마자 이 남자 역시 차버렸고, 그다음으로 함께 살게 된 기와공이 시멘트 기와지붕을 올려주었다고. 그다음엔 화가가 그녀와 밤을 함께하며 천장과 벽에 칠을 하고 집 정면에 초벽을 발라주었고, 마지막엔 소목장이가 그녀에게 가구를 만들어주었다고. 그렇게 만차는 사랑과 온전한 의지로 자신의 집을 가졌고, 노예술가까지 덤으로 얻게 된 것이었다. 정신적인 열정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 신의 작업을 이어가며 그녀를 천사의 모습에 담아 조각하는 남자였다. 우리는 이렇게 만차의 삶을 한 바퀴 돌아본 뒤 정원으로 되돌아왔다. - P129

만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상도 하 지 않았던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평생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멀리까지 간 사람이 만차였다. 책들에 둘러싸인 나는 책에서 쉴새없이 표징을 구했으나 하늘로부터 단 한 줄의 메시지도 받지 못한 채 오히려 책들이 단합해 내게 맞섰는데 말이다. 반면 책을 혐오한 만차는 영원토록 그녀에게 예정된 운명대로 글쓰기에 영감을 불어넣는 여인이 되어 있었고, 심지어 돌로 된 날개를 퍼덕이며 비상했다. 깊은 밤 환히 불밝혀진 왕성의 두 창문처럼 부드러운 빛을 발하는 날개였다. 리본과 장식 줄, 황금산 산등성이에 자리한 레너 호텔 앞에서 그녀가 신고 있던 스키를 장식한 똥, 그 모든 사연이 담긴 우리의 러브 스토리를 그 날개는 멀리멀리 사라지게 만들었다. - P130

소장은 나더러 마당에 나가 비질을 하라고 했다. 일손이 필요한 곳에 가서 거들든지, 그것도 내키지 않으면 아무 일 안 해도 좋다고. 다음 주면 나도 그곳을 떠나 멜란트리흐 인쇄소 지하실에서 백지를 꾸리도록 되어 있다고.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삼십오 년을 잉크와 얼룩 속에서 일해온 내가, 더럽고 냄새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선물과도 같은 멋진 책 한 권을 찾아낼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매 순간을 살아온 내가, 이제 비인간적인 백색 꾸러미들을 만들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다니! 이런 통고를 받자 나는 평정심을 잃고 벌렁 나자빠졌다. 흐느적대는 꼭두각시처럼 계단 맨 아랫단에 주저앉았다. 소장의 통고에 마음이 몹시 갑갑해졌고, 입가에는 실성한 미소가 떠올라 사라질 줄 몰랐다. - P133

난데없이 철학 교수가 곁에 와 섰다. 그가 낀 안경알이 두 개의 유리 재떨이처럼 햇빛에 반짝였다. 그는 늘 들고 다니는 가방을 손에 든 채 얼빠진 사람처럼 내 앞에 남아 있었다. "젊은이는 잘 있나요?" 내가 모자를 쓰고 있을 때면 그가 어김 없이 하는 질문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해본 뒤, 젊은이는 없다고 대답했다. "이런, 그래도 아픈 건 아니겠죠?" 그가 놀란 표정으로 받았다. "네, 아픈 건 아니죠." 내가 모자를 벗으며 말했다. "아픈 건 아닙니다. 그래도 솔직히 말씀드려야겠군요. 이젠 끝장입니다. 루테의 기사도, 엥겔뮐러의 비평도 말이죠." 교수는 깜짝 놀라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당신이 그 영감이고 그 젊은이군!" 나는 모자를 다시 눈 위까지 당겨 쓴 뒤 가시 돋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국내 정치』 지난 호도, 『국가 소식』도 끝장입니다. 그 사람들이 나를 지하실에서 내쫓았어요. 아시겠어요?" - P141

나는 이웃집까지, 지난 삼십 오 년간 뼈빠지게 일해온 작업장 입구까지 걸어 갔다. 곁에서 교수가 겅중겅중 걸어오며 내 옷소매를 잡아당겨 손안에 10코루나짜리 지폐를 밀어 넣더니 다시 5코루나짜리 지폐를 쥐여주었다. 그 지폐를 내려다보며 나는 서글프게 물었다. "더 잘 찾아보라고요?" 그는 내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두꺼운 안경알 너머로 말처럼 휘둥그레진 눈을 뜨고 안경을 만지작거리면서 말을 더듬었다. "그렇소. 더 잘 찾아보라고······"
"찾으라니." 내가 받았다. "대체 무얼 말이죠?" 그러자 그는 알아듣기 힘든 소리로 중얼거렸다.
"또다른 기회를, 다른 데서." 그는 몸을 숙여 인사한 뒤 뒷걸음치며 돌아서서 불행의 본거지를 막 벗어난 사람처럼 사라져갔다. - P142

카페 ‘검은 양조장‘ 카운터에 기대앉아 나는 맥주 한 잔을 마신다. 이봐, 오늘부터 넌 혼자야. 홀로 세상에 맞서야 해. 마음이 안 내키더라도 사람들을 보러 나가 즐기고 연기를 해야 할 거야. 이 땅에 발붙이고 있는 동안은 말이야. 오늘부터는 수심에 찬 원들만 소용돌이치는군······ 전진이 곧 후퇴인 셈이지. 그래, 프로그레스 아드 오리기넴과 레그레수스 아드 푸투룸은 같은 말이야. 너의 뇌는 압축기에 짓이겨진 한 꾸러미의 사고에 불과하지. - P149

하지만 나는 한 발짝도 떼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렇다, 난 아무데도 가지 않을 것이다. 계속 술을 마신다. 참담했던 그 보라색 양말 사건이 있고 이십 년이 지난 뒤 스테틴의 변두리 동네와 벼룩시장이 열린 골목길을 성큼성큼 걷고 있는 내 모습이 다시 보인다. 맨 끝자리에 앉은 초라한 행상인의 좌판에 오른쪽 샌들과 보라색 양말 한 짝이 놓여 있다. 틀림없는 내 샌들, 내 양말이었다. 발 치수도 41, 내 치수였다······ 나는 깜짝 놀라서, 불가사의한 출현을 목격한 사람처럼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 고물상은 세상 어딘가에 발 치수가 41인 외다리 남자가 존재할 거라 믿었을 뿐 아니라, 이 남자가 멋을 내려고 스테틴까지 와서 오른발에 신을 샌들과 보라색 양말 한 짝을 살 거라 믿었던 것이다! 그 놀라운 장사꾼 옆에서 한 노파가 월계수 잎 두 장을 손에 들고 사라고 졸라댔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내 샌들과 보라색 양말이 세상의 수많은 고장을 보고 난 뒤 어느 날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질책하듯 내 길을 막아서며. - P153

나는 빈 잔을 돌려준 뒤 전찻길을 건넌다. 공원의 모래가 발밑에 밟히며 얼어붙은 눈처럼 저벅거린다.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참새들과 꾀꼬리들이 목청을 돋워 노래한다. 유모차 몇 대가 보인다. 젊은 엄마들이 햇살 가득한 벤치에 앉아 머리를 젖혀 얼굴에 따스한 햇볕을 쪼인다. 나는 벌거숭이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타원형 풀 앞에 한참 동안 머물러 있다. 아이들의 배에 난 팬티 고무줄 자국에 마음이 동해서······ 갈리시아의 경건과 유대 인들은 밝고 선명한 색깔의 허리띠를 착용해 자신들의 몸이 둘로 뚜렷이 구분되게 했다지. 심장과 폐와 간과 머리는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고, 그 밖의 장과 성기는 그저 감내해야 하는 대수롭지 않은 부분이었다······ - P154

우리는 만신창이가 된 다음에야 최상의 자신을 찾을 수 있다. - P160

나는 ‘부베니체크‘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맥주 한 잔을 시킨 뒤 멍하니 앉아 있다······ 2톤의 책이 잠든 내 머리를 위협하며 호시탐탐 나를 덮치려고 한다. 스스로 걸어놓은 다모클레스의 검이다. 나는 형편없는 성적표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다. 술잔 안의 거품이 도깨비불처럼 표면 위로 떠오른다. - P161

태어나는 건 나오는 것이고 죽는 건 들어가는 것이라고 노자가 말한 이유는 뭘까? - P163

압축기가 악사의 손에 들린 아코디언처럼 몸을 비튼다. 나는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복제화 한 점을 내 상자에서 꺼내놓고, 성화들의 둥지 속에 숨어 있는 책들을 추려 마침내 한 페이지를 고른다. 프로이센 여왕 조피 샤를로테가 시녀에게 말하는 부분이다. "울지 말거라. 네 궁금증을 풀어주려고, 이제 나는 라이프니츠조차 가르쳐줄 수 없었던 그걸 보러 갈 테니까. 존재와 무의 극한까지 갈 것이다······" - P164

한 손에 들린 나의 노발리스를 꽉 쥔다. 내가 좋아하는 글귀에 손가락이 올라가고, 입술엔 지복의 미소가 떠오른다. 나는 만차와 그녀의 천사를 닮기 시작했으니까······ 이제 완전한 미지의 세계로 진입한다. 책을, 책장을, 쥐고 있다······ 사랑받는 대상은 모두 지상의 천국 한복판에 있다, 라고 쓰여 있다······ - P1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으며, 사고하는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폐지 꾸러미를 차례로 압축기에 넣고 압축한다. 꾸러미마다 한복판에 책 한 권이 가장 아름다운 페이지가 펼쳐진 채 놓인다. […] 나는 밤이 새도록 그녀에게 용서를 빌었지만 헛일이었다. 그녀는 도도하게 몸을 세운 채 레너 호텔을 떠났고, 그렇게 노자의 말도 실현되었다. 치욕을 겪고 명예를 지킨다는. 그녀 같은 사람이 바로 그 명백한 사례다······ 나는 『도덕경』의 해당 페이지를 펼쳐 희생물을 바치는 사제처럼 지저분한 빵 종이와 시멘트 부대로 꽉 찬 압축통 한복판에 놓아둔다. 녹색 버튼을 누르면 오물들이 모두 움직이기 시작한다. 절망의 기도를 올리기 위해 꽉 맞잡은 양손처럼 내 압축기의 아가리가 『도덕경』을 분쇄하는 광경을 나는 지켜본다. 그러고 있노라니 먼 과거로 되돌아가 만차의 삶 한 토막과 아름다웠던 내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 그 모두의 배후에서, 깊디깊은 땅 밑 하수구를 흐르는 더러운 물소리가 들린다. 그곳에서 두 종족으로 나뉜 쥐들이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아름다운 하루다! - P56

무수히 많은 푸른 파리들이 사방에서 미친듯이 날아다녔다. 날개와 몸이 금속성을 내며 소용돌이무늬의 살아 있는 거대한 화폭을 만들어냈다. 얼룩으로 가득한, 잭슨 폴록의 커다란 그림들 같았다. - P60

나는 그 둘의 출현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내 조상들 역시 술을 좀 과하게 마셨을 때는 환영을 보았고, 동화 속 인물들의 방문을 받곤 했으니까.
[…] 그러니 오늘 내가 좋아하는 그 두 사람이 방문했다고 해서 뭐,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고를 통찰하는 데 그들 각자의 나이를 아는 게 필수 조건임을 깨달은 건 처음이었다. 파리들의 광무, 그 성난 날갯짓이 점점 활기를 띠면서 내 작업복도 피로 물들었다. 내가 압축기의 녹색 버튼과 붉은색 버튼을 번갈아 누르는 동안에도 산등성이를 쉬지 않고 오르는 예수의 모습이 보였다. 노자는 이미 산 정상에 올라 있었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열정적인 젊은이와 체념 어린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는 노인. 삶의 근원으로 회귀함으로써 안감을 두둑이 댄 영원의 옷이 만들어진다. 예수는 기도를 통해 현실을 기적으로 만들려고 한 반면, 『도덕경』의 노자는 순진무구의 지혜에 도달하기 위해 자연법칙들을 유일한 방편으로 삼았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 P60

청년들과 아름다운 처녀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빛을 발하는 젊은 예수에게서 나는 눈을 떼지 못한 채 맥주를 단지째 들이켰다. 반면 노자는 홀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무덤을 찾고 있었다. 피 묻은 종이에 극도의 압력이 가해지면서 곤죽으로 짓이겨진 파리떼와 뒤섞인 핏방울이 튀는 와중에도 예수는 그윽한 황홀경에 빠져 있고, 노자는 깊은 우수에 젖어 무심하고도 거만한 자세로 압축통 모서리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믿음이 가득한 예수가 산 하나를 들어 옮기는 동안, 노자는 내 지하실에 불가해한 지성의 그물을 펼쳐놓았다. 예수가 낙관의 소용돌이라면, 노자는 출구 없는 원이다. 예수가 극적인 갈등 상황과 싸우고 있다면, 노자는 도덕과 관련된 상반되는 요소들의 풀리지 않는 문제를 조용히 명상한다. - P62

그 순간 난데없이 소장의 모습이 보였고, 분노와 증오가 가득 서린 목소리가 내 머리 위로 쏟아져내렸다. 고함을 지르는 소장의 손이 고통으로 뒤틀렸다. "한탸, 그 떠돌이 점쟁이 년들이 거기 남아 무슨 짓을 한 게지?" 늘 그렇듯 나는 깜짝 놀라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주저앉아 양손으로 내 압축통을 꽉 잡고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소장이 왜 나를 좋아하지 않는지, 왜 나만 보면 그렇게 험상궂은 표정만 짓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로 말미암은 고통의 낙인이 뚜렷이 새겨지고 부당한 분노가 서려 있는 얼굴. 그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한없이 비참한 심경에 젖곤 했다. 그지없이 고결한 주인에게 추악한 골칫거리나 떠안기는 밉살스러운 고용인, 그 혐오스러운 인간이 나인가 싶어서······ - P70

집시 여자들이 와 있던 내내 예수와 노자가 내 압축기 옆에 남아 있었지만 이제 나는 혼자였다. 줄처럼 감겨오는 검정파리들의 공격을 쉴새없이 받으며 버림받은 자가 되어 무작정 일에 매달렸다. 그러자 윔블던 대회에서 우승을 막 거머쥔 테니스 선수처럼 의기양양한 예수가 보였다. 반면 초라한 외관의 노자는 재고를 넉넉히 두고도 빈손처럼 보이는 장사꾼 같았다. 예수에게서는 상징과 암호로 이루어진 피 흘리는 현실이 읽혔지만, 수의에 싸인 노자는 엉성하게 다듬은 들보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만 있었다. 예수는 플레이보이 같았고, 노자는 내분비선이 고장난 노총각처럼 보였다. 예수는 오만한 손과 힘찬 몸짓으로 적들에게 저주를 내렸지만, 노자는 체념한 사람처럼 팔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예수가 낭만주의자라면, 노자는 고전주의자였다. 예수는 밀물이요 노자는 썰물, 예수가 봄이면 노자는 겨울이었다. 예수가 이웃에 대한 효율적인 사랑이라면, 노자는 허무의 정점이었다. 예수가 프로그레수스 아드 푸투룸이라면, 노자는 레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이었다······ - P72

우리가 아직 도끼를 들고 뛰어다니며 염소를 치던 시절, 집시들은 이 세상 어딘가에 국가를, 이미 두 차례나 쇠락을 경험한 사회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불과 두 세대째 프라하에 정착해 살고 있는 이 집시들은 자신들이 일하는 곳에 제의의 불을 지피는 걸 좋아한다. 오로지 기쁨을 위해 타오르는 유목민의 불이다. 대충 쪼갠 장작개비들에서 피어나는, 인간의 모든 사고 이전에 존재하는 영원의 상징이며 어린아이의 웃음 같기도 한 불이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린 선물 같은 무상의 불이며. 환멸에 젖은 행인은 더이상 알아챌 수 없게 된 요소들의 생생한 표징이다. 방황하는 눈과 영혼을 덥혀주려고 장작개비들을 태우며 프라하 거리의 구덩이들에서 태어난 불이다······ 눈과 영혼을 덥혀주면서 추운 날에는 손도 그렇게 녹여주는 불이라고, 나는 후센스키 주점으로 들어가면서 생각했다. - P76

트럭 한 대가 작업장 안마당으로 후진해 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뒷문을 통해 내 지하실로 돌아왔다. 그날 작업한 꾸러미 열다섯 개가 화물용 승강기 옆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꾸러미들 모두가 폴 고갱의 복제화 〈안녕하세요, 고갱 씨!〉로 장식되어 저마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빛을 발했다. […] 화물용 승강기가 내 꾸러미들을 하나씩 실어갔고, 뒤따르는 파리떼를 두고 짐꾼이 투덜대는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꾸러미가 떠나자 파리들도 성난 광기와 함께 모두 사라지고, 내 지하실 역시 갑자기 버림받은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꼭 내 모습처럼. - P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