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취향이 그대로 반영된 편안했던 공간이 이제는 우리 모두의 실패를 상징하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가구도 장식품도 다 우리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그것들은 엄마가 살아 계신 동안 넘치게 듣던 이야기들을, 별의별 역경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암환자들을 떠올리게 했다. 누군가의 이웃이 명상과 긍정적인 생각으로 사형선고를 물리친 이야기. 림프샘 구석구석까지 암이 퍼졌지만 깨끗한 신장을 떠올리는 방법으로 기적을 일궈내서 지금은 꽤 차도가 보인다는 이야기. 낙관적인 태도만 가진다면 뭐든지 가능할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믿음이 충분치 않았고, 엄마에게 남조류를 억지로라도 충분히 먹게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신이 우리를 미워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암과 싸워 승리를 쟁취한 다른 가족들도 있지만 우리는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갖가지 감정이 밀려와 우리 가슴을 찢어놓았지만 그런 패배감 또한 이상할 정도로 당혹스러웠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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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같은 사람은 여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내가 무슨 다른 도시에서 온 이방인이거나, 저녁식사에 초대한 친구가 데리고 나타난 특이한 손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렸다. 나를 낳아 키우고 나와 18년을 한집에서 살았던, 내 반쪽인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기엔 너무 이상하게 들렸다. 그러니까 내가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듯이 엄마 역시 여태 나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세대와 문화와 언어가 갈라놓은 단층선 반대편에 각각 던져져 기준점도 없이 죽도록 헤매기만 했 을 뿐 서로가 서로의 기대를 생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겨우 요 몇 년 전에 와서야 우리는 불가사의한 문을 열어 서로를 수용할 심리적 공간을 만들어내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아보려고 탐색했다. 그러다 가장 풍성한 이해의 과실을 거둬들여야 했을 시간들이 그만 난폭하게 잘려나가고 말았고, 이제 나는 열쇠도 없이 남은 비밀들을 혼자서 해독해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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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나는 침대에 누워 〈인사이드 디 액터스 스튜디오〉를 시청했다. 〈법과 질서〉에 출연하는 마리스카 하지 테이가 게스트로 나왔다. 진행자 제임스 립튼은 이 배우에게 어머니의 때 이른 죽음에 대해 물었다. 우리는 아름답고 냉정한 성인 여자가 곧장 눈물 터뜨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얼추 40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엄마라는 말 한마디의 파급력은 그 정도였던 것이다. 나는 몇 년 뒤에 똑같은 감정과 맞닥뜨릴 내 모습을 상상했다. 엄마의 죽음이라는 벌에 쏘이는 그 순간부터, 나란 존재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남은 평생을 벌침이 박힌 채로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내 얼굴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엄마도 울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으며 서로의 티셔츠에 얼굴을 파묻고 한바탕 서럽게 흐느꼈다. 우리는 둘 다 〈법과 질서〉를 본 적이 없고 이 배우가 누군지조차 몰랐지만 마치 나의 미래를, 평생 내 안에 가지고 다닐 고통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렸을 때 넌 우리가 어딜 가건 주야장천 내 옆에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었어." 엄마가 힘겹게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속삭였다. "근데 이리 나이를 먹고도 여기 이렇게 나한테 찰싹 달라붙어 있네." - P247

얼굴을 향해 달려든 햇살에 나는 눈을 찡그렸다. 꼭 약을 한 기분이었다. 방금 일어난 일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도 혹시 내 얼굴에 다 쓰여 있는 건 아닐까. 그렇지 않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을 땐 어쩐지 그 역시 잘못된 것 같았다.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다시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고 미소를 짓고 웃고 먹는다면 그것도 잘못된 일일 것 같았다. - P266

나는 우리집에서 시내로 가는 길에 있는 묘지를 골랐다. 언덕을 절반쯤 내려가다보면 나오는, 철문이 있는 긴 담장으로 둘러싸인 묘지였다. 아빠는 매장을 하는 것에 두려움이 좀 있다고 고백했다. 해충 구제업자로 몇 년을 일했으니 벌레들이 앙갚음할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엄마의 재를 땅에 묻는 일은 나에게 중요했다. 꽃을 가져와 놓아둘 공간이 필요했다. 쓰러질 수 있는 땅이, 주저앉을 바닥이, 아무 철이고 와서 눈물을 흘릴 풀밭과 토양이 필요했다. 마치 은행이나 도서관에 찾아간 것처럼 진열장 앞에 똑바로 서 있어야 하는 곳이 아니라. - P268

그토록 잘 아는 누군가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은 어려웠다. 고르고 고른 단어마다 초라하기 짝이 없고 허식만 가득했다. 오직 나만이 드러낼 수 있는 엄마의 특별한 부분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엄마는 단순히 주부나 엄마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엄마가 가장 자랑스러워한 두 역할을 독선적인 태도로 얕잡아보았다. 양육과 사랑을 택한 사람에게도, 돈을 벌고 창작 활동을 하려는 사람이 얻는 만큼의 성취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엄마의 예술은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고동치는 사랑이었고, 노래 한 곡 책 한 권만큼이나 이 세상에 기여하는 일, 기억될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사랑 없이는 노래도 책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 어쩌면 나란 존재가 엄마가 세상에 남기고 간 자신의 한 조각에 가장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그냥 겁이 났던 건지도 모르겠다. - P269

이모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이모는 언제나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 그런 이모가 엄마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집, 엄마의 부재가 그득한 집안을 보자 감정이 있는 대로 폭발했다. 나는 이모가 어떤 기분일지, 세 자매 중 장녀로 두 동생이 몇 년 사이 같은 병으로 죽는 걸 지켜본 심정이 어떨지 헤아려보려 했다. 세상이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뉜 것만 같았다. 이미 고통을 느껴본 사람들과 앞으로 느낄 사람들로. 이모는 우리와 같은 부류였다. 이런 고통을 너무도 잘 알았다.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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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은 어때? 너무 두껍게 되지 않았어? 눈썹 너무 진한 거 아냐?"
"아니, 딱 좋아. 그렇게 해야 사진이 예쁘게 나와." 세상에 우리 엄마만큼 내 기분을 있는 대로 잡쳐놓을 수 있는 신랄한 사람도 없지만, 또 우리 엄마만큼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피터조차도 그렇게는 못했다. 나는 언제나 엄마가 하는 말을 마음속 깊이 믿었다. 내 머리가 조금이라도 헝클어졌거나 화장이 진하게 됐을 때 내게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줄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엄마가 고쳐주기를 계속 기다렸지만 엄마는 아무 지적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약간 멍한 표정으로 웃고만 있었다. 어쩌면 약에 취해 제대로 분간을 못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소한 비판이 더는 중요하지 않다고 내심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 P240

"여태까지 나는 내가 결혼이란 걸 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 해본 적이 없었어. 하지만 지난 6개월 동안, 상대가 기쁠 때나 괴로울 때나 함께 있어준다는 약속을 지킨다는 게 어떤 뜻인지 직접 겪고 나서 보니,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한 내가 이렇게 여기에 서 있게 됐구나.
나는 사랑은 행위이고, 본능이고, 계획하지 않은 순간들과 작은 몸짓들이 불러일으키는 반응이며,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아프다는 걸 알고 나서 혼자 브루클린 창고에 누워 있는 나의 손을 잡아 주려고 이 남자가 일이 끝난 새벽 세시에 뉴욕까지 차를 몰고 달려왔을 때, 사랑이 바로 이런 거란 걸 더없이 절실히 느꼈노라고 말했다. 내가 필요할 때마다 이 남자는 몇 번이고 5천 킬로미터라는 거리를 날아 내게로 와주었고, 6월부터는 연일 하루에 다섯 번씩 해대는 전화를 받아 참을성 있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우리 결혼이 좀더 이상적인 환경에서 시작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내 앞에 놓인 미래를 용감하게 걸어 나가는 데 오직 이 남자 하나뿐이면 된다는 확신을 준 게 바로 이 시련이었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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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글학교 밖에서는 한국인 친구가 없었다. 저녁식사 시간이면 겉도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그래서 30분 동안 쉬는 시간마다 우리 놀이터가 되어준 주차장만 뱅뱅 돌았다. 농구대도 하나 있었는데 거긴 늘 나이 많은 남자아이들 차지였다. 나머지 아이들은 연석 위에 앉아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애썼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가 다 한국인이었다. 나는 그들이 두 이민자의 합동작전으로 갖추게 되었을 순종이라는 덕목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고군분투했다. 그들은 자기 엄마가 사준 선캡 모자를 군말 없이 쓰고 다녔고, 일요일이면 온 가족이 함께 교회에 갔다. 기독교는 좁은 한국 지역사회에서 사실상 구심점 역할을 했지만, 엄마는 일찌감치 교회 에서 빠져나왔다. 십중팔구 내가 혼혈아로 태어나 자란 탓이었을 텐데, 어쨌든 나는 자꾸만 내 자신이 나쁜 아이처럼 느껴져 더 말썽을 피웠던 것 같다. 내가 버릇없이 굴면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이 계속 수업을 듣는 동안, 나를 한쪽 구석에서 손 들고 서 있게 했다. 아무튼 꾸준히 한글학교에 다닌 덕분에 나는 한국말을 잘 알아듣지도 말하지도 못하지만 어찌어찌 읽고 쓸 줄은 알게 됐다. - P140

병원 문을 나서는데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나는 차에 온전히 혼자 있게 되자 그제야 하루종일 받은 충격이 몰려와 눈물을 쏟아냈다. 내가 살면서 해온 모든 일이 터무니없이 이기적이고 하찮게 느껴졌다. 내 자신이 미웠다. 은미 이모가 아팠을 때 이모에게 날마다 편지를 쓰지도, 더 자주 전화하지도 않고, 나미 이모가 보호자 역할을 하느라 고생한 것을 충분히 헤아리지도 못한 내가 미워 죽을 것 같았다. 유진에 더 일찍 오지도, 진료 예약날에 같이 따라가지도 않고, 진작 주의를 기울여야 했을 증상들도 까맣게 몰랐던 내 모습도 미웠다.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겠지만, 내 증오는 이제 슬금슬금 아빠에게로, 여러 가지 경고를 귓등으로 흘린 아빠에게로 향했다. 처음 증상이 나타났을 때 우리가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가기만 했어도 이런 고통은 피할 수 있었을 지 모르니까. - P147

나는 이제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바랐다. 부디 내가 대신 고통받을 방법이 있기를, 내가 얼마나 엄마를 사랑하는지 엄마에게 증명할 수 있기를, 엄마의 병상에 기어들어가 엄마에게 바짝 몸을 밀착시키기만 하면 그 무거운 짐을 내가 송두리째 흡수해버릴 수 있기를. 인생이 공평하려면 자식 된 도리를 다할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 같았다. […]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가까이에 누워 있는 것밖에 없었다. 엄마의 지원군이 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규칙적으로 느리게 울리는 기계 신호음과 나지막이 쌔근거리는 엄마 숨소리를 들으면서. - P149

아빠는 리스크가 크고 승산이 희박한 게임에서 전혀 달갑지 않은 파트너였다. 이 사람은 내 아빠였고 나는 아빠가 침착하게 나를 안심시켜주기를 바랐다. 나를 들들 볶아대서 이 절망스러운 길을 외롭게 걸어가도록 하는 게 아니라. 나는 아빠 앞에서 울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하는 순간 아빠는 분명 내 슬픔에 자기 슬픔을 얹을 터였다. 누가 엄마를 더 사랑하는지, 누가 더 상실감이 클지 경쟁이라도 하듯이 호소하면서. 게다가 아빠는 절대 입 밖에 내서는 안 될 말까지 집이 떠나가라 말해서 내 속을 있는 대로 뒤집어놓았다. 엄마가 이 병을 이겨 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어쩌면 이제 엄마 없이 우리 둘만 달랑 남게 될 수도 있다고. - P154

나는 엄마 옆에 쭈그리고 앉아, 덜덜 떨고 있는 엄마를 감싸안았다. 나 또한 몰라볼 정도인 거울 속 모습에, 우리 인생에 들어온 이 거대한 악마의 물리적 현현에, 나도 엄마와 같이 엉엉 울고 싶었다. 그러는 대신 나는 몸이 뻣뻣해지고, 심장이 단단해지며, 감정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내 안의 목소리가 명령했다. ‘울면 안 돼. 네가 울면 지금 우리가 위험한 상황에 빠졌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말아. 네가 울면 엄마는 울음을 멈추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나는 울음을 삼키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의의 거짓말로 엄마를 달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 스스로도 진심으로 그걸 믿게 하려고.
"그냥 머리카락이잖아, 엄마. 금방 다시 자랄 거야." - P158

사춘기란 그런 것이었다. 중학교라는 사회화 훈련 시설에서 시작되는 하나의 거대한 자학적인 농담. 중학교는 아이들이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민감한 3년이라는 시간을 견디는 곳이다. 이미 D컵 브라를 입을 정도로 가슴이 커지고 오럴 섹스를 아는 여자아이들이, 갭에서 산 어린이 브라를 입고 아직도 만화 캐릭터와 사랑에 빠져 있는 여자아이들 옆에 앉아 있는 곳이다. 우리의 독특한 부분은, 다수가 생각하는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아름다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부분은 고통스러운 마맛자국이 되어 자기부정이 유일한 치료법이 되는 때다. - P163

최악은 내가 ‘정미‘라는, 엄마의 이름을 딴 미들 네임이 없는 척했다는 점이다. 미셸 자우너 같은 이름은 서류상으로 보면 전혀 튀지 않는다. 나는 그 생략이 세련되고 현대적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극단적인 상황이라도 피하려는 듯이, 이를테면 사람들이 실수로 정미를 ‘차우멘‘이라고 발음하기라도 하면 또 다시 느끼게 될 굴욕감을 피하려는 듯이.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그냥 한국인이 되는 게 곤혹스러워진 것이었다.
"학교에서 달랑 나 혼자 한국 사람이라는 게 어떤 기분인지 엄마는 몰라." 나는 엄마한테 불평을 쏟아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근데 너는 한국 사람이 아니야. 너는 미국 사람이잖아." - P166

"난······원숭이를 끝까지 데리고 갈래." 마침내 내가 결정을 내렸다.
"재밌네." 이모가 말했다. "음, 각 동물은 우리가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상징해. 그러니까 네가 맨 처음에 버리는 것이 너한테 가장 덜 중요한 거지. 가장 마지막까지 버리지 않는 것이 네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거고. 사자는 자존심을 상징해. 넌 그걸 가장 먼저 버린 거야."
"그거 말 되네." 내가 말했다. "난 그게 다른 동물들을 몽땅 잡아먹어버릴까봐 걱정됐어. 자존심이 다른 중요한 것들을 잡아먹어버리듯이. 자존심이 너무 강하면 다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수가 없잖아. 모든 게 자기 발밑에 있다고 느끼면 자기 일도 더 발전하기 어렵고." - P189

은미 이모는 유언으로 엄마가 교회에 나가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지만 엄마는 그 유언을 따르지 않았다. 엄마는 가족 중 유일하게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었다. 더 높은 차원의 힘이 있다고는 믿었지만 조직화된 종교에서 어떤 대상을 무작정 숭배하는 분위기는 좋아하지 않았다. 유진의 한인사회 대부분이 교회를 중심으로 강하게 결속돼 있었는데도.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어떻게 신을 믿는단 말이니?" - P195

우리를 묶어줄 엄마가 사라지고 나면 아빠와 나는 거의 남남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우리는 암암리에 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엄마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아빠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고,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면 우리 두 사람은 계속 티격태격할 게 뻔했다. 가족이라는 닻이 올려지고 완전히 해체되어버릴 가능성이 다분했다. 나는 엄마가 나를 꾸짖어주길 기다렸다. 그분은 내 아빠라고, 내 핏줄이라고 뚝 잘라 말하길 기다렸다. 내가 이기적이라고, 평생 우리를 먹여 살린 사람에게 그러면 못쓴다고 말하길 기다렸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말을 하는 대신 내 등에 가만히 손을 대고, 우리가 차마 서로 말 못 하고 있는 부분은 자기도 어쩔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너는 네 도리를 다할 거야." - P212

그때까지 나는 살아가기와 죽어가기는 명백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나는 식물인간으로 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본 터였다. 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이미 찢겨나간 육체적 자율성의 조각들은 하루하루 누더기 꼴이 되어갔고, 이제 살아가는 일과 죽어가는 일은 그 차이를 분 간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엄마는 병상에 묶여 혼자 걸을 수도 없었고 각종 장기도 더는 잘 움직이지 않았다. 음식도 팔에 연결된 수액 주머니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로 섭취하다가 이제는 기계의 도움 없이는 숨도 혼자 못 쉬는 지경에 이르렀다. 살아간다고 할 수 있는 모습에서 하루가 다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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