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관해, 그가 만질 수 있는 것과 만질 수 없는 것에 관해 규칙을 정했다. 대체로 그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대개는 지켜보았고 때로는 그마저도 허용되지 않았다. 우리는 독재 자였다. 규칙을 정하고 또 이 규칙을 바꾸면서 그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는 데에서 쾌락의 대부분을 얻었다. 이 기간의 여러 밤 동안 벌어진 일은 처음에는 낯설고 입에 올리지 못할, 현실 세계의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거품과도 같았다. 그러나 일주일 정도 지나 우리는 처음으로 그에게 그날 하루 지켜야 할 규칙을 정해주었고, 그러자 돌연 세계가 쩍 갈라지면서 가능성으로 넘쳐났다. - P179
어린 테드는 그 어떤 허무맹랑한 상상 속에서도 자신의 짝사랑이 응답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결코, 단 한 번도 품지 않았다. 그는 멍청하지 않았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 결코 멍청한 부류는 아니었다. 그가 원한 것은 단지 상대가 그의 사랑을 용납해주고 어쩌면 알아봐주는 정도까지 이르는 것이었다. 그는 짝사랑의 대상을 흠모하며 그 곁에 오랫동안 머물고, 벌이 꽃을 스치듯 어쩌다 한 번씩 가볍게 그들과 부딪치는 정도만이라도 허용되기를 갈망했다. - P200
이들 짝사랑 상대들이 그에게 잔인하게 굴지는 않았다. 테드는 멋진 부류의 여자들에게 끌렸고 이들은 노골적으로 잔인하게 행동하는 것을 질색했다. 대신 여자들은 자신들이 보여준 작은 관심이 테드가 제멋대로 들어오는 통로가 되었다고 이해했는지 자기들 쪽에서 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여성 긴급 행동 규칙을 실행하여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그에게 말을 걸며, 실내에서는 가능한 한 그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차가운 예의의 요새에 방어벽을 치고 그 안에 웅크리고 숨은 채 그가 멀어 질 때까지 언제까지고 계속 기다렸다. - P201
그는 애나를 짝사랑했고 애나는 마르코를 짝사랑했으며 아마 마르코는 그들이 만나본 적 없는 누군가를 짝사랑했을 것이다. 세상은 냉혹하다. 아무도 다른 누군가를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 P211
테드는 평생 사람들에게 오해받아왔다는 생각, 다시 말해 그를 거부한 여자들이 그에게 태생적으로 불쾌한 점이 있는 것처럼 그를 대한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을 고수해왔다. 그는 주변에서 가장 멋진 남자는 아닐지 몰라도 형편없는 남자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따금 그는 밤에 자지 않고 누워 이제껏 그를 거부한 모든 여자로 구성된 심판위원회 앞에서 레이철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가 저지른 속임수, 그녀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좋아하는 척했던 것, 사실은 이기적이고 거짓말 덩어리면서 "좋은 사람"의 가면을 쓰고 있었던 게 밝혀지자 심판위원회 여자들은 즐거워했다. 애나를 중심으로 하는 심판위원회 여자들은 모두 충격을 받으면서도, 이제껏 당연히 그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 줄곧 여겼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 놀라지 않았다. - P224
자존심이 완전히 으깨져 없어지고 더는 스스로에 대한 무거운 짐을 끌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지점이란 게 있을까? 생각이 교묘하게 일그러진 채 수면 위로 불쑥 기분 나쁘게 모습을 드러내는 이런 순간의 느낌을 일컫는 독일어가 있을 텐데. 붐비는 쇼핑몰에서 거울 앞을 지나다가, 끔찍한 몰골을 한 저 멍청이는 누구지? 왜 저렇게 누가 한 대 치기라도 할 것처럼 몸을 움츠리고 있는 거지? 내가 한 대 치고 싶네. 아 잠깐, 나잖아, 하고 생각하는 순간. - P2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