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밀 할아버지, 왜 대답을 안 해주세요?"
"넌 아직 어려. 어릴 때는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게 더 나은 일들이 많이 있는 법이란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 P12

나는 개 가게에 들어가서 푸들을 한번 만져봐도 되냐고 물었다. 여주인은 내게 개를 넘겨주었다. 나는 개를 받아서 쓰다 듬다가 냅다 도망쳐버렸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뛰어 달아나는 것이다. 그걸 못 하면 살아가는 데 지장이 많으니까. - P25

로자 아줌마는 자신이 경찰서장을 잘 아는데, 그 사람도 창녀의 자식이기 때문에 사정을 잘 봐준다는 것. 그리고 아주 감쪽같이 위조서류를 만들어주는 유태인을 한 사람 알고 있다는 말 등으로 그녀들을 위로했다. 난 한 번도 그 유태인을 본 적이 없다. 로자 아줌마는 그 유태인을 함부로 소개해주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독일의 유태인 거주구역에서 알게 된 사이인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후에 다시는 체포되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 유태인은 프랑스인 거주구역 어딘가에서 미친 듯이 위조서류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로자 아줌마가 그렇고 그런 여자가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증명하는 서류를 지니게 된 것도 다 그 사람 덕택이었다. 그녀는 그것만 가지고 있으면 이스라엘 사람들조차도 자기에게 불리한 증거를 전혀 찾아내지 못할 거라고 했다. 물론, 죽기 전까지 백 퍼센트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인생에는 원래 두려움이 붙어다니게 마련이니까.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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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서 길을 건너면 브롱크스강에 둑을 대 생긴 작은 호수와 폭포가 나온다. […] 테라스 끝에는 반원 모양으로 벤치들이 여러 개 놓여 있다. 벤치는 매년 연두색 페인트로 덧칠했다. 벤치에 앉아 어떤 각도에서 보면 호수는 끝이 안 보이고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다. 그 호수에 못해도 백 번은 갔기에 어떤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얼마나 작고 막혀 있는지도 잘 알았다. 그럼에도 벤치에 앉아 있을 때마다 물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저 굽이진 곳 끝까지 가면 호수에 갑자기 신비로운 수로가 나타나고 내가 가본 적 없는 세상으로 통할 거야. 나는 벤치에 앉아 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전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거라고, 벤치는 원래 몽상가들이 앉는 곳이라고, 사람들은 꿈을 꾸기 위해 이 호숫가 벤치에 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 P144

73번가에서 렉싱턴애비뉴로 꺾어 휘트니미술관으로 향했는데 최근에 열린 특별 기획전을 한 번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술관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근처 갤러리에 걸린 독일 표현주의 그림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갤러리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보이는 벽에 에밀 놀데의 커다란 수채화 두 점이 걸려 있었다. 그 유명한 꽃 그림이었다. 나는 놀데의 꽃 그림을 전에도 여러 번 본 적이 있지만 이건 난생처음 보는 그림들 같았다. 발산하듯 넓은 붓질로 두껍게 칠한 강렬한 색채의 꽃에 어떤 의도가 있음을 그제야 느닷없이 깨달았다. 놀데의 의도는 꽃이 선사한 타오르는 열정을 진지한 인내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 안에는 자신의 주제에 명확하고 완고하게 천착하는 예술가가 있었다. 그림의 의미가 그제야 보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작품에 힘을 주는 건 집중력이구나. 내 안의 공간이 넓어진다. 내 안의 직사각형 공간 속으로 빛과 공기가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곳에서 사고가 명징해지고 언어가 풍부해지고 지성이 작동을 개시한다. 외로움, 불안, 자기연민으로 가득했던 내면의 공간이 놀데의 꽃을 보며 점점 확장된다. - P157

다시 한번 내 안의 공간이 기대치 않게 확장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 공간이란 뭘까. 내 이마 한복판에서 시작돼 가랑이에서 끝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 공간은 내 몸만큼 넓기도 하고 화살구멍만큼 좁아지기도 한다. 생각이 자유롭게 흐르는 날이면, 그리고 더 깊이 생각할수록 명확해지는 날이면 감사하게도 이 공간은 무한히, 아름다운 날씨처럼 확장된다. 그러나 불안과 자기연민이 치고 들어오는 날이면 쪼그라든다. 얼마나 삽시간에 쪼그라드는지! 이 공간이 넓어져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 나는 그 안의 공기를 맛보고 또 느낀다. 나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호흡한다. 마음은 평화롭고 기대감에 차서 사는 게 즐겁고 어떤 영향력이나 위협에서도 놓여난다. 그 어떤 것도 나를 건드릴 수 없을지니. 나는 안전하다. 나는 자유롭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 생각과의 전쟁에서 지면 경계선은 좁아지고 공기는 오염되고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사방이 수증기와 안개뿐이다. 숨쉬기가 어려워진다. - P159

나는 열일곱이었고 엄마는 쉰이었다. 나는 아직 스스로를 감히 엄마와 대적할 만한 인물로 여기진 않았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고, 엄마는 타고나길 게임의 승자여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이제 우리 사이에는 선이 그어졌고 우린 단 한 번도 서로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항상 서로가 던진 미끼를 물었다. 싸움은 폭풍처럼 집 안을 뒤흔들고 벽에 칠해진 페인트에 금이 가게 하고, 바닥의 리놀륨 장판을 찢어지게 하고 창 유리를 덜컹이게 했다. 우리에겐 단 한 번도 휴전이 없었고, 대재앙이 닥칠 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 P168

한번은 내가 당시 사귀던 남자애랑 잤다고 단단히 확신한 엄마가 내 팔을 너무 아파서 눈이 엇뜨일 정도로 세게 꼬집었다. "너 그 남자 맛봤구나, 그런 거지?" 힐난과 낭패감이 서린 까칠하고 낮은 목소리다. 엄마가 삽입 성교를 비유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이었다. "너 그 남자 맛봤지? 그랬지?" 이 문장은 들을 때마다 충격적이었다. 이 말은 나의 신경종말을 자극했다. 억압의 멜로드라마. 악의에 찬 수동성, 힘의 부재에 대한 분노, 이 모든 것이 저 문장에 압축되어 있었고, 처음 들었을 때부터 알 수 있었다. 엄마가 그 말을 할 때면 우리는 이름은 없지만 떡하니 존재하는 무인지대를 가로질러 서로를 마주했다. - P17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적인 여자의 삶이라는 개념은 우리를 절대 놓아주지 않고 매년 다달이, 날마다 우리를 더 깊은 갈등과 혼란 속으로 밀어 넣을 뿐이었다. 삶에 대한 확신이 약하면 약할수록 자기 방식이 옳다고 독단을 부리게 된다. 우리 각자는 자기가 특별하다고, 다르다고, 더 숭고한 목적에 헌신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서로를 분리시키면서 연민도 함께 거둔다. 남몰래 다른 사람들에게서 마음에 들지 않는 특성을 수집하기 시작하고 그들과 자신을 더욱 열심히 분리하면서 마치 나와 너의 이 차이가 구원이라도 되는 줄로 착각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는 안 저러니 다행이야‘ 타인을 보며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혼잣말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렇게 판단을 한댔자 삶이 개선되는 건 아니다. 우리는 환상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분노에서도 자유로워지지 못한다. 단단한 껍질 아래서 노여움에 차 조용히 부글부글 끓고 있을 뿐이다. 이 억제되지 못한 노여움이 우리를 고갈시키고 죽이기도 한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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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무렵이면, 거무스레한 담벼락이 서쪽으로 기우는 황금빛 햇살을 받아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골목마다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놀 때였다.
불과 하루 전, 그러니까 어제 보았던 사율라의 초저녁 풍경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뛰노는 동안, 대낮의 햇살을 뿌리치듯 날개를 파닥이는 비둘기 떼가 파란 지붕들 위로 옮겨 다니는 모습도 눈에 익은 정경이었다. - P19

그 여자가 다시 나에게 인사했다. 그때서야 나는 뛰노는 아이들과 비둘기 때와 파란 지붕을 보지는 못했지만 마을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귀에 들리는 것은 정적뿐이었는데, 이는 내가 아직 그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 머릿속이 이미 세상의 소음으로 가득 차 있는 탓일지도 몰랐다. - P21

"거기선 내 말이 더 잘 들릴 거다. 얘야, 이 어미는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게다. 나중에 내가 세상을 떠나면, 그때는 너도 알게 되겠지. 죽은 어미의 말보다 어미가 간직하고 있는 추억의 소리가 훨씬 더 잘 들린다는 것을." - P21

문이 없었다. 우리가 들어왔던 통로가 방문이었다. 그 여인이 초에 불을 붙이자, 텅 빈 공간이 보였다.
- 여긴 잠을 청할 만한 곳이 아니군요.
- 걱정 마요. 졸음이 가장 좋은 침대가 아니겠어요? 먼 길을 오느라 고단했을 테니 오늘은 여기서 눈을 붙이도록 해요. 침대는 내일 들여놓을 테니까. 젊은이가 이해해요. 혼자 사는 늙은이가 이것저것 챙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모친이 조금만 더 빨리 알려줬어도 이렇지는 않았을 거예요. - P23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로 모래 마당에 물구멍이 나게 만들고, 돌담 사이에 낀 월계수 이파리를 부르르 떨게 만들던 사나운 비바람이 물러간 뒤끝이다. 간간이 이는 바람에 석류나무 가지에 달려 있던 물방울이 허공에 빛을 발하며 흩어지는데, 마당에는 여태껏 구석에 틀어박혀 졸고 있던 암탉들이 몰려나와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쪼아댄다. 그사이 비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오색찬란한 햇살은 소담스러운 돌멩이 위에 내려앉아 물기를 빨아올리는가 하면, 산들바람에 나풀대는 나무 이파리에 가만히 다가가 살랑인다. - P25

‘너를 생각하고 있어, 수사나. 그 푸른 언덕을. 바람이 이는 계절이었지. 우리가 마을에서 올라오는 생생한 소리들을 듣고 있을 때, 바람이 연출을 끌어가고 있었지. 수사나, 도와줘!" 연출을 잡은 손에 겹쳐지던 부드러운 손. "실을 더 풀어!" 그 바람은 우리를 웃게 만들었지. 그 바람에 손가락 사이로 풀려나가던 연줄이 마치 날아가던 새의 날개에 걸려 부러지기라도 한 것처럼 툭 소리를 내며 끊어질 때까지, 우리의 눈길은 하나로 모아졌지. 헝클어진 연줄을 매단 종이 새가 허공에서 빙빙 돌다 떨어져 초록 들판으로 사라질 때까지.
너의 입술은 촉촉이 젖어 있었어, 수사나. 마치 이슬에 젖은 듯한 그 입술······.‘ - P26

‘저 하늘, 저 구름 위에,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너는 숨어 있어, 수사나. 하느님의 거대한 공간에, 당신의 섭리 뒤에, 결코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곳에, 내가 찾을 수 없는 곳에 너는 숨어 있어. 나의 간절한 소망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곳에······.‘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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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와 내가 여행 다닌 장소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가고 싶어한 곳이었다. 우리의 마지막 여행이 병원 격리 생활로 변해버리기 전에 엄마가 나를 데려가려 한 곳이었다. 엄마가 나와 함께 만들려던 마지막 추억이고, 엄마가 나를 키우며 내가 사랑하도록 만든 것의 원천이고, 내가 기억했으면 하는 맛이고, 내가 절대 잊지 않았으면 하는 감정이었다. - P344

대체로 나는 꽤 잘 적응했다. 대도시에서의 새로운 삶이며 어른의 제대로 된 직업이며 모든 게 너무 낯설었지만, 바꿀 수 없는 일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만 몰입하려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가끔씩 나도 모르게 지난날이 떠올라 괴로웠다. 뜬금없이 고통스러운 생각의 고리에 불이 붙으면 그동안 억누르려 애쓰던 모든 기억이 내 마음 맨 앞자락으로 훌렁 삐져나오기 일쑤였다. 엄마의 희뿌연 혀, 보라색 욕창 자국, 내 손에서 빠져나가는 엄마의 무거운 머리, 저절로 번쩍 떠진 눈. 하지만 내면의 비명이 텅 빈 가슴을 뚫고 나와 온몸을 소용돌이치며 뒤흔들 뿐, 그 감정이 제대로 해소되지는 않았다. - P353

내 기억을 곪아터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트라우마가 내 기억에 스며들어 그것을 망쳐버리고 쓸모없게 만들도록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 기억은 어떻게든 내가 잘 돌봐야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공유한 문화는 내 심장 속에, 내 유전자 속에 펄떡펄떡 살아 숨쉬고 있었다. 나는 그걸 잘 붙들고 키워 내 안에서 죽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했다. 엄마가 가르쳐준 교훈을, 내 안에, 내 일거수일투족에 엄마가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언젠가 후대에 잘 전할 수 있도록. 나는 엄마의 유산이었다. -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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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간에 나눈 어떤 대화도 기억나지 않는다. 말없이 서로를 안아주는 장면도 내 기억엔 전혀 없다. 우리 가족과 친척들에게 감정 과잉은 자연스러웠지만 다정한 위로는 당연히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를 벙어리로 만든 건 누가 뭐래도 엄마였다. 엄마의 비통함이 아빠의 죽음을 더욱더 비참하게 만들었고 다른 이들은 사건의 결과를 숨죽이고 지켜보는 관객으로 위축시켰다. 엄마는 온몸으로 우리가 절대 위로할 수 없고 살아낼 수도 없는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못해도 영원히 발전이나 성장을 저해할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모든 드라마의 주연은 엄마였고 남은 사람들은 뒤에서 발을 끌고 돌아다니거나 말도 눈물도 없이 불행이라는 질척한 진흙탕 속에서 어기적거리는 단역이었다. 우리 모두는 엄마의 극적인 자포자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 죽음을 애도하지 못하고 엄마의 애도만 지켜보아야 하는 먼 문상객이 되어버렸다. 침울한 집 안을 배회하는 동안 우리 머리와 가슴속에 가득 들어찬 이는 오직 엄마—지금 이 난리통 속에서 아빠를 생각할 여유가 어디 있나?—이 사람을 지켜보아야 하고 돌봐야 한다. 사력을 다한 엄마의 비탄은 다른 평범한 애도를 닦아세웠다. 우리 집의 비극은 며칠 전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 P101

그렇다고 해도 누구 한 사람 나를 부드럽게 위로해주는 이는 없었다. 그 어디에서도, 부엌에서도 거실에서도 나를 치유할 수 있는, 아니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고 진정시켜줄 만한 건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실과 부엌 사이엔 질식과 생존만 한 간극이 있었다. 거실은 칙칙하고 음울하고 단색이며 무언가 갑갑하게 엉겨 있는, 공기가 희박한 곳이었다. 부엌에 가면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참을 수 없는 순간에 내뱉을 수 있었고 그 공기는 밖으로 나가거나 밑으로 깔렸다. 부엌엔 목소리와 말투가 있었고 분위기는 나빠졌다가 좋아지기도 했으며, 기분은 가라앉기도 나아지기도 했다. 움직임이 있고 공간이 있고 빛과 공기가 있었다. 적어도 숨을 쉴 수 있었다. 살 수 있었다. - P106

남편을 여읜 처지는 엄마를 더 고귀한 인간 존재로 승격시키는 것 같기도 했다. 엄마는 아빠의 죽음에서 회복되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부엌일하던 시절에는 가져본 적 없던 당신의 타고난 진지함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후 30년을 한결같이 바로 그 진지함에 헌신했다. 지치지도 않았고 지루해하지도 초조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진지함이 가져다준 낙을 유지할 새로운 방법들을 끊임없이 찾아냈고 영락없이 그걸 당신 것으로 만들었다. - P117

아빠를 애도하는 일은 엄마의 직분, 엄마의 정체성, 엄마의 페르소나가 되었다. 몇 년 후에 나는 우리 모두가 깊이 몸담었던 정치사상(마르크스주의와 공산주의)의 여러 국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데, 내가 만난 배관공 제빵사 재봉사 들이 본인을 사상가 시인 학자로 여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남과 다른 사람들, 공산당원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도 당신의 과부 처지를 그와 같은 방식으로 여긴 건 아닌가 생각한다. 엄마가 볼 때 당신은 남편을 잃었기에 더 차원 높은 인간, 정신적으로 우월한 사람이 되었고 감정은 더욱 심오해졌으며 수사는 더 풍부해졌다. 아빠의 죽음은 의식과 신조를 제공하는 하나의 종교였다. 일생에 단 하나뿐이던 사랑은 정통파 유대교와도 같았고 엄마는 탈무드를 기록하듯 그 안에서 율법과 유산을 찾아냈다. - P118

내가 숨 쉬는 공기는 엄마의 절망 안에 푹 담겨 있다 나오면서 진해지고 의기양양해지며 자못 흥미롭고도 위험한 것이 되었다. 엄마의 고통은 나를 구성하는 요소, 내가 거주하는 국가, 내가 바짝 엎드려 따라야 하는 법과 규칙이 되었다. 나를 지휘하고 통솔하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반응하게 했다. 나는 끊임없이 엄마에게서 벗어나기를 갈구했지만 엄마가 방에 있을 때면 한시도 그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엄마의 퇴근을 두려워하면서도 엄마가 귀가하면 잠시도 집을 떠나지 않았다. 엄마의 존재가 내뿜는 불안은 내 허파를 부풀어 오르게 했다(물리적으로 심장이 조여들었고 가끔은 쇠갈고리가 골을 파고드는 느낌까지 들었다). 욕실 문을 잠그고 혼자 숨어서 엄마를 대신해 하염없는 눈물을 쏟았다. 금요일이면 꼬박 이틀간 이어질 게 뻔한 눈물과 한숨, 불씨가 꺼져도 식식거리며 새어 나오는 연기 같은 엄마의 우울증이 공기 중에 내뿜는 묘한 책망의 기운에 대비를 해야 했다. 나는 죄책감 속에서 일어나 죄책감 속에서 잠들었고 주말이면 죄책감이 점점 더 쌓여가다 얕은 열병에 걸린 상태가 되었다. - P119

나는 엄마로 뒤덮여 있었다. 엄마는 어디에나 있다. 내 위아래에 있고 내 바깥에 있고 나를 뒤집어봐도 있다. 엄마의 영향력은 마치 피부조직의 막처럼 내 콧구멍에, 내 눈꺼풀에, 내 입술에 들러붙어 있다. 숨을 쉴 때마다 엄마를 내 안에 들였다. 나는 엄마라는 마취제를 들이마시고 취했고 풍요로우면서도 밀실처럼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엄마의 존재감, 엄마라는 실체, 숨통을 틀어쥐는 고통받는 여성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물론 당시에는 그 반도 못 헤아렸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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