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랑제
(순진하게) 그래, 그런 것 같아…… 술기운이 배에서 올라오는군…....


아니, 술기운이 자네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네. 도대체 이 근처 어디에 늪지대가 있단 말인가? 우리 고장이 소(小) 카스티야‘라고 불리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소린가? 너무 건조한 지방이라 말이야!

베랑제
(몹시 귀찮고 피곤한 듯) 그럼, 난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지? 혹시 그놈이 자갈밭에 숨어 있었나……?
아니면 마른 나뭇가지위에 둥지를 틀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자네처럼 관념을 맹신하는 사람들의 추리는 대개 오류로 끝나지. 그 점을 알아 두게! 그런 역설들이 지겹지도 않은가……? 자네 말은 진지하지가 않아, 그럴 자세도 능력도 없지만 말이야! - P31


(베랑제에게) 이봐, 자네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야.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지! 생각하게, 그럼 자네도 존재할 걸세. - P38


(베랑제에게) 자넨 본래부터 허풍쟁이였군. 거짓말쟁이라고. 인생에 흥미가 없다고 말하지만,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베랑제
누구?


자네의 귀여운 직장 동료 말일세. 방금 이곳을 지나갔던 아가씨. 자네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어.



(베랑제에게) 자넨 그녀에게 이런 처량한 모습을 보여 주길 원치 않았지. (베랑제의 제스처) 바로 이점이 자네가 모든 일에 무관심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거야.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데이지가 술주정뱅이에게 매력을 느끼길 기대하나?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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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와 함께 병실로 올라오면서 쇠약해진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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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법도 있을 테니 더는 이런 식으로 학대받고 싶지 않다. 통증은 나를 작아지게 만든다. - P12

그에 반해 아침엔 기분이 좋았다. 나는 목욕을 하면서 볕에 그을린 납작한 몸과 다시 만났다. 나를 은근히 위로해주는 몸.
"걱정하지 마. 해변, 다른 사람들의 육체, 실크 드레스 등을 위해 나는 여기 있으니까"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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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학자
공포란 비이성적인 것입니다. 이성으로 공포를 물리칠 수 있어요.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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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9시에 샹젤리제 부근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집과 나무들이 뿌연 안개 속에서 어렴풋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걸 지켜보고 있노라니, 마치 현상 중인 사진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정오가 되면 분명 태양이 안개를 꿰뚫을 것 같은, 그런 날씨의 아침이었다. - P119

전차가 또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커브 길을 돌 때는 문이 제멋대로 열렸다. 가끔씩 차내의 전등이 꺼지기도 했다. 비에 젖은 유리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니, 거리풍경이 일그러져 보였다. 한여름에 피어오르는 열기로 거리가 일그러져 보일 때와 마찬가지였다. - P147

나는 집 안에 있는 침대를 떠올렸다. 밤새 발을 대고 있던 부근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을 것이다. 방안의 닫힌 창문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속눈썹 끝으로 느끼는 새벽녘의 태양이 그리웠다. - P147

이렇게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 정오에, 라카즈양과 만나는 것이 마치 약속돼 있던 일인 것만 같았다. 사실, 나는 며칠 전부터 이날의 데이트를 기다려 오지 않았던가.
나를 부추기는 미지의 감정이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 소녀에게 육체적인 욕망 따위는 품고 있지 않다. 원래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려는 생각 따위는 절대 하지 않는다. 내 지론에 따르면, 그 순간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감미롭다.
나는 계속해서 거리를 걸었다. 이성을 잃은 내 영혼이 육체를 떠나 기뻐 날뛰었다. 지나는 행인들이 접어든 우산은 아직 물기로 빛나고 있었고, 벽과 인접한 보도에 깔린 포석들이 점차 말라 가며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 P151

가끔 하는 생각인데, 어쩌면 나는 머리가 좀 이상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늘 행복을 손에 넣으려 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라 모든 걸 망쳐 버리고 만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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