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집에서 사라지자, 나는 그 전까지는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이 여행, 아니 차라리 귀향이라고 부르는 것이 나을 이 여정을 결심하게 되었다. 내가 그토록 도망치고자 했던 "나의 고장"—장 주네Jean Genet라면 이렇게 불렀을 것이다—을 다시 찾는 여정 말이다. 내가 거리를 두던 이 사회적 공간은, 내가 그것에 맞서서 나 자신을 구축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내 존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는 정신적 공간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왔다. 그녀와의 화해의 시작이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 자신과의 화해, 내가 거부하고 내쫓고 부인했던 나 자신의 어떤 부분과의 화해의 시작이었다. - P12

어린 시절 우리의 삶과 사회화된 방식의 흔적들은 성인의 나이에 이르러 생활 조건이 변화한 후에도, 심지어 우리가 이 과거로부터 멀어지기를 원했을지라도 계속해서 남아 있다. 따라서 우리가 떠나온 환경—혹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가까스로 빠져나온 환경—으로 되돌아갈 때면 우리는 항상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에게로 되돌아가게 되며, 부인된 만큼이나 보존되어 있는 나 자신과 다시 만나게 된다. […] 기이하게도 우리가 그것을 극복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단지 진정시키려고만 해도, 이 은밀하고 흐릿하던 불편함의 윤곽은 훨씬 뚜렷해지고 한층 깊어진다. 이 감정들은 언제나 거기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제야 그것들이 거기 있었음을, 우리의 심연 속에 숨은 채로 우리 안에서, 우리를 향해 작용하고 있었음을 발견, 아니 재발견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진정 이 불편함을 극복할 수 있을까? 멜랑콜리를 진정시킬 수 있을까? - P14

나는 곳곳에서 전조 증상들을 발견한다. 겁내는 만큼 자꾸 의식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그 후의 내 일상은 알츠하이머의 유령에 사로잡혔다. 장차 닥칠 미래를 보여주어 날 불안하게 만드는 과거에서 온 유령. 이런 식으로 아버지는 내 존재 속에서 계속 현존한다. 고인이 된 사람이 자기 아들의 머릿속—위협이 자리 잡는 장소—에서 살아남는 이상한 방식. 라캉Jacques Lacan은 ‘세미나Seminaires 시리즈‘ 중 한 권에서 아버지의 사망이 어린 자식, 특히 남자아이에게 열어놓는 불안에 관해 아주 잘 말한 바 있다. 아이는 죽음 앞 최일선에 홀로 남겨진 자신을 발견한다. 알츠하이머는 이 존재론적 불안에 일상적인 두려움을 덧붙인다. 우리는 그 지표들을 감시하고 해석한다. - P18

내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느낀 감정과 얼마나 다른지 헤아려본다. […] 하지만 나는 시간이 장악하지 못할, 지울 수 없는 고통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내가 느낀 것은 고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혼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개인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질문에 의해 촉발되었다. 사회적 숙명, 사회의 계급적 분화, 사회적 결정요인들이 주체성의 구성에 가져오는 효과, 개인 심리, 개인들 간의 관계 등에 관한 질문 말이다. - P20

그녀는 벽장에서 사진이 가득 든 상자를 꺼냈다. […] 우리 앞에서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몸들과 비교할 때, 과거의 사진에 찍힌 몸들이 우리 시선에 얼마나 즉각적으로 사회적·계급적 신체로서 나타나는지 확인하는 일은 언제나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 마찬가지로 ‘추억‘으로서의 사진이, 개인—이 경우에는 나—을 그의 가족적 과거로 데려감으로써 그를 사회적 과거에 정박시키는 것을 확인하는 일 역시 그러하다. 낡은 사진들 속에서 다시 솟아나는 사적인 것과 내밀한 것의 영역은 우리를 우리의 출신 배경인 사회세계의 칸막이 속에, 특정 계급에 속한 것으로 여겨지는 장소들 속에, 그리고 어떤 지형도 속에 다시 기입한다. 근본적으로는 매우 개인적인 관계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를 집합적인 역사와 지정학 안에 위치시키는 (의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 각자가 가장 심층적인 진실 가운데 하나로 자기 안에 품고 있는 개인적 계보학이 사회적 고고학이나 위상학과 분리 불가능한 것처럼) 지형도 속에 말이다. - P21

내가 태어나 청소년기까지 보낸 도시를 떠나 파리로 가기로 한 스무 살 때의 결정은, 내 사회적 환경의 점진적인 변화를 의미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내 동성애 성향을 확인하고 인정하려는 욕망, 즉 내 개인적인 여정에서 성적인 ‘벽장‘에서의 탈출은 또 다른 위장이자 또 다른 유형의 분리된 인격, 혹은 이중적 의식이 제약을 가하는 일종의 사회적 벽장으로의 진입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이 사회적 벽장은 잘 알려진 성적인 벽장과 동일한 메커니즘을 가진다. 이를테면 실마리들을 흐트려놓는 책략, 비밀을 알고는 있지만 지켜주는 극소수의 친구들, 상황과 상대방에 따라 달라지는 말투, 아무것도 삐져나오지 않게 하고 스스로를 ‘배반‘하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과 몸짓, 억양, 표현에 대해 가하는 지속적인 통제 등등). - P24

그러니 서로 뒤얽힌 두 여정이 있는 셈이다. 자기 자신을 재발명하는 상호의존적인 두 가지 궤적. 하나는 성적 질서와 마주한 궤적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적 질서와 마주한 궤적이다. 그런데 내가 글을 쓰기로 했을 때 분석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성적 억압과 관련된 첫번째 궤적이었지, 사회적 지배와 관련된 두번째 궤적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러한 실존적 배반은 바로 이론적 글쓰기의 몸짓에 의해 한층 심해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글 속에 주체의 사적인 차원을 연루시키는 글쓰기의 한 가지 유형 [내 섹슈얼리티의 분석]을 채택한 셈인데, 이는 또 다른 유형 [내 계급적 출신 배경의 분석]을 거의 배제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선택은 현재의 시간 속에서 나를 정의하고 주체화하는 방식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내 과거, 즉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 내가 과연 누구였는지를 선택하는 방식을 구성했다. 노동자의 아들이 아닌 게이 어린이, 게이 청소년으로서 말이다. - P30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엽에는 박애주의자들이 꿈꾸고 실현해낸 경관의 가치가 많이 퇴색했다. 조부모님과 막내 삼촌, 숙모가 여태껏 살고 있었던 푸아예 레무아의 ‘정원 주택단지‘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정작 그것이 감추려고 했던 궁핍함에 의해 부식되고 좀먹은 듯이 보였다. 그 흔적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그곳은 병폐가 생기기 쉬운 환경이었고, 실제로 다양한 사회병리 현상이 발전했다. 통계적으로 볼 때 비행을 통한 일탈은 이 구역의 청소년들에게 주어진 길 가운데 하나였다. 오늘날에도 유사한 사례가 사회적·도시적 분리가 이루어진 공간들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의 역사적 영속성에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더 넓은 맥락에서 볼 때 크고 작은 불법 행위들은, 일상에서 적대 계급의 도구로서 지각되며 언제 어디서든 그 권력을 드러내는 국가의 법률에 집요하게 맞서는 일종의 민중적 저항으로 기능하는, 이 구역의 규칙이었다. - P42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공적 발언권을 주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가? 공적인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동자들은 어떤 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가?) - P45

민중 계급과 ‘노동 계급‘에게 좌파 정치는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감내하는 것들을 아주 실용적으로 거부하는 것을 의미했다. 관건은 전지구적 관점에서 영감을 받은 정치적 기획이 아니라 항의에 있었다. 우리는 시공간적으로 먼 곳이 아니라 우리 주변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자주 "혁명이 제대로 한번 일어나야 하는데"라고 되뇐다 해도, 이는 다른 정치 체제를 수립해야 한다는 관점에 기반한 것이라기보다는 고된 생활 조건과 참기 힘든 부정의와 관련된 틀에 박힌 표현이었다. 우리는 혁명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는 자문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닥친 모든 일이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보였기에 ("이건 전부 의도된 거야"), ‘혁명‘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의 삶에 그렇게나 많은 불행을 초래한 사악한 힘—우파, 부자 놈들‘ ‘거물들‘—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하나의 신화에 맞서는 또 다른 신화—인 양 소환되었다. - P46

당시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의 위계 안에서도 가장 낮은 위치였다. 아버지가 그의 삶의 무대이자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지평을 구성하게 될 환경 속으로 들어간 것은 열네 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아버지는 6월 말 초등 교육을 마치자마자 일을 시작했는데, 열네 살이 되기 석 달 전이었다). 공장이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장이 아버지를 위해 거기 있었고, 아버지도 공장을 위해 거기 있었다. 또한 공장은 그의 뒤를 따르게 될 형제들과 여동생들도 기다리고 있었다. 공장은 앞으로 태어나 그의 가족이 될 이들, 그와 같은 사회적 정체성을 갖게 될 이들을 기다려왔고 계속해서 기다릴 것이었다. 사회적인 결정논리determinisme social는 아버지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를 지배했다. 그는 우리가 ‘재생산‘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온갖 법칙과 메커니즘이 그를 규정해놓은 것으로부터 빠져나가지 못했다. - P53

나는 의무교육 연령이 16세까지로 연장되었을 때 가족들이 얼마나 분개했는지 기억한다. "뭣 하러 애들이 좋아하지도 않는 공부를 억지로 계속하게 만드는 거야? 애들은 오히려 일을 하고 싶어 한다고." 이러한 ‘취향‘, 아니 공부에 대한 ‘무취향‘이 얼마나 차별적으로 분포되어 있는지를 전혀 의문시하지 않고, 사람들은 이런 말을 되풀이했다. 학업에서의 도태는 마치 스스로의 선택과 요구에 따라 이루어진 것인 양, 많은 경우 자발적인 도태의 과정을 거친다. 학업 기간의 연장은 다른 사람들, 그러니까 ‘형편이 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인데, 이들이 ‘학교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결국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가능성의 장champ des possibles—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은 고사하고, 단순히 구상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조차—은 계급 위치에 의해 엄격하게 제한된다. 마치 각각의 사회세계가 거의 물샐틈없이 가로막혀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 그리고 이 동떨어진 사회적 영역에서 매우 명백한 규칙을 구성하는 것에 접근할 수 없을 경우,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 됐든 배제되었다거나 박탈당했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는 단지 사물의 질서일 따름이며, 그것이 전부다. 우리는 그 질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려면 스스로를 외부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삶과 타인들의 삶에 대해 내려다보는 시각vue en surplomb을 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P54

사회적 운명은 일찌감치 결정된다. 모든 것이 미리 작동된다! 우리가 미처 의식하기도 전에 판결은 이미 내려져 있다. 태어나는 순간 선고문이 우리 어깨에 낙인처럼 새겨지고, 우리가 차지할 자리도 우리에 앞선 것들, 그러니까 우리가 속한 계층과 가족의 과거에 의해 규정되고 제한된다. 아버지에게는 민중 계급 아이들의 학교 교육 이수와 성취를 보여주는 졸업장인 초등교육 증명서를 획득할 기회조차 없었다. - P57

실제 가족은, 법적인 가족뿐만이 아니라 생물학적 가족과도 겹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른바 ‘혼합‘ 가족은 1990년대에 와서야 생겨난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세계에서 부부와 가족의 구조는 아주 오래전부터, 좋고 나쁨을 떠나 복잡성, 다양성, 절연, 잇단 선택, 재구성 등으로 특징지어져왔다(‘동거하는‘ 남녀, ‘배다른‘ 아이들, 이혼하지 않은 채 각각 다른 여자, 다른 남자와 사는 유부남, 유부녀 등등). - P77

사회질서는 모든 사람에게 지배력을 발휘한다. 모든 것이 잘 ‘규정되어 있고‘ ‘의미‘와 ‘기준‘으로 충만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리 의식 깊숙한 곳에 새겨진 규범에 대한 애착에 기댈 수 있다. 그러한 애착은 어린 시절부터 사회세계에 대한 지속적인 경험을 통해서, 그리고 성장 환경이 법적·정치적 규칙에 어긋날 때 느끼게 되는 불편함—수치심—을 통해서 형성된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문화는 그러한 규칙을 유일하게 살 만한 현실이자 도달해야 할 이상으로 표상한다. 이러한 가족적 규범—규범적 가족—이 실제의 삶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부부란 무엇이고 가족이란 무엇인지, 또 어떤 이들은 인정하고 어떤 이들은 거부하는 사회적·법률적 정당성의 관념을 애써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그들의 상상 속에서 말고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는 모델들을 소환한다. 오늘날 내가 그러한 자들을 떠올릴 때 품게 되는 혐오감은, 여러 대안적 형태를 자의식 속에서 일탈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열등하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경험하도록 요구받았던 과거에서 비롯한 바 크다. - P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슌킨 이야기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박연정 외 옮김 / 민음사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걸 사랑이라 해야할지 집요라고 해야할지, 숭고하다 해야할지 미련하다 해야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막부 시대의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햇빛도 들지 않는 깊숙한 규방에 틀어박혀 자란 양갓집 규수의 투명하고 하얀 피부와 풋풋함, 가냘픔이란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더구나 시골 뜨기 소년 사스케의 눈에는 그 모습이 얼마나 요염하고 아름답게 보였던 것일까? 당시 슌킨의 언니가 열두 살, 여동생이 여섯 살이었는데, 갓 상경한 사스케에게는 그 자매들이 시골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소녀로 보였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맹인이었던 슌킨의 형용할 수 없는 기품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고 한다. 슌킨의 감긴 눈이 자매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보다 맑고 아름답게 느껴져서 이것이 진정한 슌킨의 얼굴이며 예전부터 이랬어야만 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네 자매 중 슌킨의 미모가 가장 뛰어나다고 평판이 자자했지만, 아무리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녀의 장애를 안타깝게 여긴 동정심이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사스케에게는 슌킨이 아름답다는 사실이 곧 진실이었다. - P23

‘아아! 이것이 진정 스승님이 살고 계신 세상이구나! 이제 비로소 스승님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겠구나!‘ - P98

"누구나 눈이 먼 것을 불행하다 여기겠지만 나는 맹인이 되고 한 번도 그런 감정을 겪지 못하였단다. 도리어 이 세상이 극락정토라 느꼈지. 스승님과 나, 오로지 두 사람이 살아가면서 죽어야만 당도하는 극락정토의 연화대 위에 사는 기분이었다. 눈이 멀고 나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많은 것이 보이게 되더구나. 스승님의 얼굴 역시 그러하단다. 그 아름다움을 절절히 느끼게 된 것은 맹인이 되고 나서란다. 그리고 부드러운 손발, 매끈한 피부, 아름다운 목소리도 진정으로 알 수 있었다. 눈이 보였을 때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느끼지 못했을까 의아스러울 정도였지. 더구나 실명한 후에야 스승님의 절묘한 샤미센 선율을 비로소 충분히 음미할 수 있었다. 입으로는 줄곧 스승님이야말로 이 분야의 천재라며 칭송했지만 그제야 겨우 그 진가를 알게 되었으니 미숙한 내 기량과 너무나도 현격한 차이가 있음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껏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니 이 얼마나 송구스러운 일인지······. 내 어리석음을 반성하게 되었단다. 신께서 다시 앞을 보게 해 주신다고 해도 거절했을 게야. 스승님과 나는 맹인이었기에 앞이 보이는 사람이 모르는 행복을 맛볼 수가 있었단다." - P108

사람은 기억을 잃지 않는 한 꿈을 통해 죽은 이를 볼 수 있다. - P1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런 종이를 오려 붙여놓은 듯한 보름달이 어찌나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던지. 그 달을 바라보는데, 하얀 개가 짖어대던 그 시절 반월성에 뜬 달도 지금 내가 바라보는 달과 똑같은 것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갑자기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 멀리 보이는 첨성대를 등대 삼아 그 길을 걷노라면, 들판에 내려앉은 어스름 너머로 황남동 인가의 불빛들이 나지막이 반짝이는 것이 보입니다. 그쪽을 바라보며 계속 걸어가면 빈 들판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멀고 가까운 무덤들이 서로 겹쳐졌다 멀어지지요. 그 풍경을 바라보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군요. 달은 천 년 전의 달과 똑같은데, 사람은 한번 헤어지고 나면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렇게 걸어가는 발걸음에 따라 서로 겹쳐졌다 멀어지는 무덤들을 바라보며 어스름 속을 걷는데, 시원한 저녁 바람에 기분이 좋아져 하하하 호호호 서로 농담하고 웃는 관광객들 중에 제가 우는 걸 눈치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구요. 그래서 좋았다는 거예요, 제 말은. 아무도 제가 우는 줄을 몰라서. 여러분도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우셔도 됩니다. 그 길을 그렇게 계속 걸었습니다. 여기 대릉원 주차장이 나올 때까지 계속 걸었어요. 그렇게 경주에 내려와 살게 됐지요. 그리고 저녁이면 마냥 걸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얼마든지 걸어도 좋으니까요." - P129

언젠가 시각장애의 본질은 보지 못한다는 게 아니라 보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나이듦의 본질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감각능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타인의 감각 대상에서 멀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감각 대상에서 멀어지면 모든 존재는 사라지게 되어 있었다. - P136

"그래, 우리의 위치가 모든 걸 결정해. 우리가 감각하는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크거나 절대적으로 작은 것이 없어. 멀고 가까운 것만 있는 거야. 그러니 어떤 대상의 크기는 우리가 어디에 있느냐에 달려 있어. 그 위치가 우리의 의지를 뜻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우리 위치에 따라 얼마든지 작게 만들어버릴 수 있어. 그러다가 아주 멀어지면 어떻게 되지?"
"소실점으로 사라집니다."
지훈이 대답했다.
"우리가 바라보는 물리적 세계에는 그런 소실점들이 한두 개가 아니지. 지금도 수많은 것들이 그 소실점으로 사라지고 있어. 이게 우리가 사는 물리적 세계의 참모습이야. 그럼 그 사라지는 것들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뭘까?" - P137

사랑이란 제 쪽에서 타인을 바라볼 때의 감각이었다. 그것에는 절대적인 크기가 없었다. […] 누구도 스스로 존재할 수는 없다. 누군가를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 P1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조지 오웰이 광부들의 세계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을 제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거, 기억납니까? 그 세계는 우리가 디디고 선 이 땅의 아래에 있습니다. 지상의 사람들은 몰라도 되는 세계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는 세계는 아닙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광부들의 세계는 존재합니다. 조지 오웰에게 소설가란 이 두 세계 사이를 넘나드는 존재입니다. 비유하자면 소설가는 마르고 젖은 존재인 셈이죠. 소설가는 몰라도 되는 세계를 인식함으로써 그 세계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니 글쓰기는 인식이며, 인식은 창조의 본질인 셈입니다. 그리고 창조는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에서만 나옵니다. 조지 오웰이 광부들의 세계에 대해 말한 것도 다정함 때문입니다. 타인에게 이유 없이 다정할 때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의 삶의 플롯이 바뀝니다. 그러면 지금 이 순간 가능성으로만 숨어 있던 발밑의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 P113

관계라는 건 실로 양쪽을 연결한 종이컵 전화기 같은 것이어서, 한쪽이 놓아버리면 다른 쪽이 아무리 실을 당겨도 그전과 같은 팽팽함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 P119

이미 잡았던 손을, 이미 입맞췄던 입술을, 이미 안았던 몸을, 다시 한 번 잡고 입맞추고 안는다면, 다시 한 번 그 인생을 살면서도 마치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사람처럼, 그 손을 잡고 그 입술에 입맞추고 그 몸을 안는다면, 그렇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요, 라고 말하며 이진혁씨는 전시 제목에 얽힌 이야기를 끝냈고, 나는 몇 년 전 동네를 떠난 그 여자를 다시 생각했다. 한번 더 그 인생을 살 수 있다면 과연 어떨까? 여름 환한 빛 아래, 어떤 사람은 곧 어머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속에서 정든 동네를 떠나고, 어떤 사람은 창밖의 나무들을 바라보며 그녀를 동정한다면. 그 푸른 나무들 사이로 수업을 마친 아이가 돌아온다면. 마치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사람처럼 다시 그 아이를 맞이할 수 있다면. - P123

십 년이 얼마나 긴 시간인 지 나로서는 전혀 가늠되지 않았다. 그 일이 일어나고 난 뒤부터 시간은 제멋대로 흐르기 시작했으니까. 어떨 때는 시간이 그대로 멈춰 있는 듯했고, 어떨 때는 한평생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간 것 같기도 했고, 또 어떨 때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과거로, 오로지 과거로만 치달았다. - P126

"그게 아니라 너무 아름다워서, 청년은 그 아름다움에 지칠 때까지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네요"라고 말했다. 누군가의 무덤을 두고 아름답다니, 그래도 되나요?‘라고 내가 물었고 "그럼요. 그래도 됩니다"라고 그녀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 P127

만약 그날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경주행 수학여행 버스 기사가 내리막길에서 과속하지 않았다면? 아니, 아이가 문과가 아니라 이과를 선택했다면, 그래서 사고 직후 멈춰 선 뒤쪽 버스에 탑승한 아이들과 같은 반이었다면? 아니, 아니, 빈말이었을지언정 수학여행 안 가면 안 되느냐고 물었을 때 선뜻 그래, 이번에는 나도 안 갔으면 좋겠어, 라고 말했더라면? 가정의 지옥으로 흘러든 마음은 고통의 하구를 지나 마침내 죄책감의 바다에 이르렀다. 그 바다에서 모든 질문은 ‘너는 죽었는데 왜 나는 살아 있는가?‘로 귀결됐다. 지금 나 역시 그 바다의 한복판에서 표류 중이다. 그 바다 위로 천 년 전의 푸른 무덤들이 마치 다도해의 섬들처럼 군데군데 솟아 있다. - P1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