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을 살다』에는 저자가 한밤에 깨어나 아름다운 장면을 포착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때 그는 고통을 당하고만 있는, 주체성을 상실한 사람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주체가 된다. 그리고 ‘시‘를 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향유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향유한 순간을 역사에 기입하는 것이다. 자신이 다시 고통의 격량으로 빨려들어가더라도 그 바깥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음, 그 힘을 가진 주체였음을 기록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를 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커다란 격차가 있다. - P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