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흡족한 기분이 들 때마다 다른 뭔가가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주변을 어른거리며 맴도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특히 홍초가 빨간 꽃을 피울 때면 그녀 뒤를 바싹 쫓아오는 것만 같았다. 그녀가 아무리 필사적으로 달아나도 그것들은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들은 허공을 이리저리 떠다닐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과거를 기억해내라며 도발하고 부추기기까지 했다. 예전에 느꼈던 두려움이 떠올라 그녀는 눈을 감고 절대 기억해내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말려들지 않을 거야. 너희를 잡지 않을 거라고. 과거 따위는 필요치 않아.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내 이름이 뭔지도 알 필요 없어. 무엇보다 우리집에 누가 있었는지도 떠올릴 필요 없다고. 나는 다 필요 없어. 내 기억은 우 의사부터 시작하면 돼. 내 삶은 칭린만으로 충분해. 망각에는 망각의 이치가 있다고 우 의사가 말했어.
그 말을 할 때 우 의사는 정말 젊었다. - P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