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는 조용한 일이 별로 없어서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며 무슨 일인지 서로 물었다. 침묵은 궁금증을 불렀다. 신비롭고 스릴을 가져다주고 들을 수 없는 발자국 소리를 내며 섬을 가로지르는 검은 망토를 걸친 얼굴 없는 이방인 같았다. 침묵의 시간은 계절마다 달라서 겨울에 땅이 얼었을 땐 길게 찾아오고, 여름에는 한 차례 바람이 불고 그다음 바람이 불어오는 사이, 밀물과 썰물 사이에 잠깐 찾아들거나 인간에게 기적이 일어나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걸 바꿀 때 찾아왔다. - P105
바로 그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우리는 폭풍 전의 고요를 이야기하며 침묵이 경고 혹은 행동을 취하라는 신호라고 말하거나 한참 동안 성경을 뒤져 그 중요성을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섬의 침묵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도 그 침묵에 대해 말하지 않고 강한 인상을 받아도 그 침묵을 기억하거나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침묵이란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아주 잠시 죽음을 본 것에 불과했다. - P106
잉그리드는 그렇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과 잘 지냈고 전혀 두렵지 않았고 그저 신이 나서 항상 웃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다. 선생님은 수업시간엔 세 가지 이유로 웃어서는 안 된다고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지적했다. 웃으면 수업에 방해가 되고, 다른 학생들도 따라 웃게 되고, 바보처럼 보이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먹을 때도 웃으면 안 되었다. 잉그리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필요할 때 웃지 못하게 하는 건 한쪽 다리를 빼앗는 것과 같았다. - P116
한스는 걸음을 멈추고 봄에 새끼 양이 얼마나 많았는지 물었다. 그리고 그녀가 양을 가리키며 세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양들 사이로 걸어가 직접 세며 양들의 이름을 들었고 지금부터 그 무엇도 전과 같지 않으리란 걸 깨달았다. 한 해가 흐르면 그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잉그리드가 어쩌고 있는지 물어본다면 아내는 평상시처럼 대답할 테고, 그건 아직도 그가 자기 눈으로 본 것을 믿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 P122
고양이 카놋과 라스가 가장 크게 슬퍼했다. 라스는 울부짖으며 눈앞에 보이는 것을 닥치는 대로 부숴 버렸다. 한스는 말이 없었다. 바브로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조용히 흐느꼈다. 마리아의 얼굴은 가뭄에 동물들이 죽을까 봐 걱정할 때처럼 굳고 핼쑥해졌다. 그리고 잉그리드는 어떤 슬픔은 자신이 아는 다른 슬픔보다 더 사무친다는 사실을 알았다. 잉그리드는 부두 창고 근처 해머로 가서 커다란 손이 나타나 자신을 바다로 쓸어 버리고 파도가 숨을 앗아가길 바랐지만 물속에 뛰어들 기력도 없고 육지에서 끝낼 수도 없을 노릇이라 그저 온 마음을 다해 흐느꼈다. 마리아가 다가와 바위 끝에서 딸을 끌어내리며 정신 차리라고 말했다. 이제 잉그리드는 라스와 페링을 타고 몰래 나간 게 어떤 행동이었는지 이해했다. 마틴은 노인이고 아이들은 아이들이라 그 차이는 엄청났다. - P171
바위틈, 초원, 작은 만······. 이들 이방인은 자기 손등처럼 바뢰이섬 구석구석을 알았고 다시 마주하는 걸 매우 기뻐했다. 잉그리드는 모든 보물과 비밀을 안고 있는 섬 주민이 자기만이 아니며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는 방문객들도 한때 이곳에서 살았고 그들의 어린 시절 또한 결코 지울 수 없기에 앞으로도 남으리란 걸 알았다. - P174
잉그리드는 다시 해머로 가서 바다에 휩쓸리고 싶었다. 하지만 사촌 조세핀의 무신경한 눈동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삼촌이 앞으로 넘어져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았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웃으려고 했다. 눈물을 조금 쏟았지만 미소가 지어졌다. 한편 잔잔한 비처럼 밤이 찾아올 때까지 모든 질문에 대답하며 바뢰이를 낯선 도시로 만들어 버린 사람들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고, 그 너머로 엄마의 매우 낯선 모습도 계속 보게 되었다. 잉그리드는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안됐다는 마음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 P176
잉그리드는 왜 이렇게 두려워했는지 궁금했다. 어쩌면 섬에서 너무 오래 기다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세상이 그녀를 원하지 않은 게 아니라 자신이 상황을 오해한 것이고, 그러니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엄마가 외로워서 딸을 붙잡았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뇌리를 스쳤지만 잉그리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 P191
잉그리드의 방 창문 너머로 바다와 섬들이 보였다. 바뢰이는 다른 섬보다 더 어둡게 보이는데 절벽이나 바위보다는 풀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매일 밤 바뢰이를 바라보며 잘 자라, 인사하고 아침에 섬을 다시 마주하지만 가끔은 분명하게 보이고 어떤 때는 그림자처럼 아른거렸다. 지금은 가을이고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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