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과 마찬가지로, 대화가 매끄럽게 이어지며 두려움에 대한 염려를 떨쳐낸 덕분에 엘리너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마도 그녀는 모두를 대표해 이따금 두려움을 토로할 자격을 얻은 듯했다. 다른 이들이 그녀를 달래면서 그들 자신도 다독여 두려움을 떨쳐내는 것이리라. 아마도 그녀는 모두를 대신해 온갖 두려움을 담기에 충분한 역량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저들은 어린애 같아. 서로 먼저 도망치라고 배짱을 겨루며 달아날 채비를 하다가 마침내 누가 달아나면 욕을 퍼붓지. - P158
엘리너는 꼼짝도 않고 가만히 서서 문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막막했지만, 아직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자신이 심각하게 겁을 먹은 것은 아니며, 최악의 악몽을 꾸는 것보다 무섭지는 않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소리보다 한기가 더 괴로웠다. 등을 간질이는 차가운 손가락의 감촉에는 시어도라의 따뜻한 가운도 소용없었다. 어쩌면 앞으로 걸어가 문을 여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리라. 순수한 과학적 연구라는 박사의 취지에도 잘 맞았다. 하지만 설령 발이 문 앞까지 간다 하더라도 손이 손잡이까지 올라가지 않을 성싶었다. 정당하고도 객관적으로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세상 그 누구의 손도 저 손잡이를 만질 수는 없을 거야, 손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녀는 문이 쿵쿵 부딪힐 때마다 조금씩 뒤로 물러나며 몸을 떨었다. 소리가 점점 가라앉자 점차 진정되었다. - P203
그는 브랜디병과 잔을 들고 있었다. 엘리너는 앞으로 새벽 4시에는 시어도라의 방에 모여 앉아 브랜디를 마시며 즐겁게 놀아야겠다 싶었다. 가볍게 수다를 떠는 동안, 호기심에 서로를 은밀히 엿보며 각자 궁금해하리라. 다른 이들은 어떤 공포를 맛보았을까. 얼굴이나 몸짓에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어떤 약점을 경솔히 드러내어 파멸의 문을 열지는 않았을까. - P207
그들의 염려 어린 얼굴을 바라보노라니 모두 불안을 얇디얇은 막 아래 감추고 다른 이의 도움을 받기 위해 비명을 지를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성과 분별력은 사실상 전혀 보호막이 되지 못했다. - P237
"두려움에 떠는 것은 이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합리적 사고를 버리는 짓이죠. 두려움에 굴복하거나 싸워 이기거나 둘 중 하나이지, 그 중간을 택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 P244
"두려울 때면 세상의 이성적이고 아름다우면서 두려움이 없는 면이 분명하게 보여요. 의자와 탁자와 창문은 어떤 영향도 받지 않고 그대로 있죠. 꼼짝하지 않아도 카펫의 섬세한 짜임새를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동시에 이런 세상과 단절되는 느낌을 받아요. 사물들은 두려워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아뇨. 우리는 자신을 아무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거죠." "우리가 진실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를 두려워하죠." - P245
그녀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이었다. 나에게만 알려 줄 수 있는 뭔가를 말해 봐요. 혹은, 당신을 기억하기 위해 뭔가를 주지 않겠어요? 혹은 심지어, 가슴 속에 한없이 중요한 뭔가가 자리 잡고 있어요. 도와줄 수 있나요?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어리석은 것인지, 대담한 것인지. - P252
그녀는 생각했다. 되도록 좋은 인상을 남길 표현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는 거야. 대답을 들으면 나를 어떻게 여기는지 알 수 있겠지. 과연 나한테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 할까? 자그마한 신비주의에 내가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독특한 사람인 척 보이려고 애쓸까? 용감한 사람처럼 굴까? 그렇다면 나는 정말 창피할 것 같아. 내가 용감한 남자한테 끌린다는 걸 그가 알고 있다는 뜻이니. 아니면 신비로운 사람처럼 굴까? 미친 사람처럼?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착각일 수도 있건만 벌써부터 이렇게 확신하다니, 루크가 당연히 나의 가치를 알아본다고 여기다니.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내가 깨닫지 못하기를, 그가 지혜롭거나 내가 맹목적이기를,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 확실하게 드러내지 않기를, 그녀는 간절히 소망했다. - P252
두려움과 죄책감은 자매인 법이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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