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전혀 두렵지 않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죽음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하면, 이 순간 죽음이 내 눈앞에 다가와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두렵다. - P139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게 자는 것처럼 죽고 싶다. […] 얼마나 대단한 박사들인지는 모르지만, 만난 적도 없는 정형외과 선생이니 마취과 박사니 뢴트겐과 선생들에게 둘러싸여 사뭇 대단한 사람인 양 대접받으며 숨이 막혀 죽어 가기는 싫다. 그런 긴박한 분위기에 둘러싸여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게 아닐까? 호흡 곤란이 일어나서 숨을 헐떡거리기 시작하고 차차 인사불성이 되어 기관지에 튜브를 꽂았을 때의 심정이란 어떤 것일까? 죽음은 두렵지 않지만 죽음에 동반하는 고통과 긴박감과 공포감은 질색이다. 필시 그 순간 칠십 평생 쌓은 갖가지 악행들이 주마등처럼 잇따라 나타나겠지. 아아, 자네는 이런 짓도 했군. 그런 짓도 했군. 그러고도 편히 죽으려 하다니 너무 뻔뻔하군. 지금 이렇게 고통받는 건 당연해. 꼴좋다. 어디에선가 그런 소리도 들릴 것이다. - P140
그녀가 돌을 짓밟으며 ‘나는 지금 노망난 그 늙은이의 뼈를 이 땅속에서 짓밟고 있다.‘라고 느낄 때, 내 혼도 어디에선가 살아서 그녀의 무게를 느끼며 고통스러워하고, 곱고 만질만질한 발바닥의 부드러움을 느끼리라. 죽어서라도 나는 느껴 볼 것이다.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 땅속에서 기꺼이 그녀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내 혼의 존재를 느낄 것이다. 어쩌면 흙 속에서 뼈와 뼈가 딱딱 소리를 내며 뒤얽혀서 서로 웃으며 노래하고 삐걱거리는 소리까지 들릴지 모른다. 아니, 그녀가 실제로 돌을 밟고 있을 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신의 발을 모델로 한 불족석의 존재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 돌 아래에서 뼈가 울고 있는 소리가 들릴 터다. 나는 울면서 ‘아파, 아파‘라고 외칠 것이며, ‘아프지만 즐거워, 더없이 즐거워, 살아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즐거워.‘라고 외칠 테다. 또 ‘더 밟아 줘. 더 세게 밟아 줘‘라고 외치리라.······ - P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