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쓸 만한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럴 때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조금 써 보겠다. 노년이 되면 누구나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날 이 하루도 없다. 물론 내 경우 요즘에만 그런 것은 아니다. 꽤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20대부터 그랬는데 요즘에 특히 더 심해졌다. ‘내가 오늘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루에 두세 번이나 한다. 그것이 꼭 공포를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젊었을 때는 엄청난 공포심을 동반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어느 정도 즐겁게 생각되기도 한다. 그 대신 내가 죽을 때나 사후의 광경을 세세하게 공상하며 어렴풋이 그려 본다. - P21

50대 정도까지는 죽음에 대한 예감이 그 무엇보다 두려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제 인생이 피곤해서 그런지, 언제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일전에 도라노몬 병원에서 단층 사진을 찍었을 때 암일지도 모른다는 말에 같이 있던 할멈이나 간호부는 새파랗게 질렸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의외였다. 길고 긴 인생이 이제 드디어 끝나는구나 하며 어느 정도 안도감이 들 정도였다. 섣불리 집착하는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살아 있는 한 이성에게 끌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생각은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리라 생각된다. 90세가 되어서도 보란 듯이 자식을 낳은 구하라 후사노스케와 같은 정력은 없고 이미 완전한 무능력자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간접적인 방법으로 변형된 성적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현재의 나는 그와 같은 성욕의 즐거움과 식욕의 즐거움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 P25

병마를 견딘다는 것이, 정상적인 성의 쾌락을 향유할 수 없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을 이렇게까지 뒤틀리게 하는 것일까? - P36

일기를 쓴다는 것은 쓰는 것 자체에 흥미 가 있어서 쓰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서 쓰는 것은 아니다. 시력이 무섭게 나빠져서 독서도 생각처럼 되지 않고 달리 시간을 보낼 방법도 없으니 시간 때우기 삼아 쓸 생각이다. 읽기 쉽게 붓으로 크게 쓴다. 다른 사람이 읽으면 안 되니까 탁상용 금고에 넣어 두었다. 금고가 벌써 다섯 개나 찼다. 조만간 태워 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남겨 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때때로 예전의 일기를 꺼내서 보면 이렇게 기억력이 나빠졌나 하고 놀란다. 1년 전의 일이 마치 새로운 일처럼 느껴져서 흥미진진하다. - P46

"나, 이 문을 잠근 적이 한 번도 없어. 샤워할 때도 항상 여기는 열어 놔요."
내 목욕 시간은 오후 9시 이후로 정해져 있다는 의미인지, 나를 신용한다는 것인지, 보고 싶으면 보여 드릴 테니 들어오라는 것인지, 늙은이의 존재 따위 문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인지, 무엇 때문에 굳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 P53

방금 전 발바닥의 감촉이 아직 입술에 남아 있어서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았다. 사쓰코의 발가락 세 개를 입안 가득 물었을 때, 아마 그때 혈압이 최고에 달했을 것이다.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한꺼번에 피가 머리로 쏠렸기 때문에, 이 순간 뇌졸중으로 죽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이제 죽는 것인가, 지금 죽는 것인가 하는 기분이 든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이 생기리라고 전부터 각오했지만, 역시 ‘죽는다.‘라고 생각하니 무서워졌다. 그리고 열심히 마음을 진정시켜야지, 흥분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 내게 다짐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녀의 발을 빠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가 없었다. 아니 멈추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미친 듯이 빨게 되었다. 죽는구나, 죽는구나 하면서도 빨았다. 공포와 흥분과 쾌감이 번갈아가며 가슴을 벅차게 했다. 협심증 발작과 같은 통증이 격하게 가슴을 조였다. - P80

"보세요, 도쿠 도련님. 이제 가을이에요. 귀뚜라미가 울죠."
유모가 말했다.
"자, 저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깨 물어라, 옷자락 물어라. 어깨 물어라, 옷자락 물어라‘라고 하는 것처럼 들리죠? 저 소리가 들리면 가을이 온 거예요."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 탓인지 잠옷으로 입은 흰 홑옷 소매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휭 하고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빳빳하게 풀을 먹인 홑옷을 입는 것이 싫었다. 잠옷에서는 항상 풀이 썩는 듯한 들척지근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와 귀뚜라미의 울음소리, 그리고 가을 아침의 촉감이 하나로 뒤엉켜 나의 아득하고 희미한 기억에 남아 있다. 일흔일곱인 지금도 새벽에 저 찌르륵찌르륵하는 귀뚜라미 소리를 생각하면 그 옷의 풀 냄새, 유모의 말씨, 뻣뻣한 잠옷의 촉감이 되살아난다. 비몽사몽간에 지금도 와리게스이의 집에 있는 것 같았고, 침상 안에서 유모에게 안겨 있는 것 같았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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