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정신적인 권력이 로마로 흘러가고 있었다. 황제가 더 이상 로마에 거주하지 않는다. 그 사실은 교황이 옛 수도 안에서 대적할 자가 없는 권력과 권위의 원천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반면, 콘스탄티노플의 대교부는 자기보다 더 빛나면서 더 끈질기게 자신을 감시하는 황제라는 존재를 곁에 두고 있었다. 1054년, 이렇게 불꽃을 튀기던 양측의 경쟁은 대분열Great Schism이라고 불리는 사태로 돌입하게 된다. 확연하게 다른 기독교의 두 버전이 탄생했다. 하나는 동쪽의 정교회orthodox Church였으며, 다른 하나는 로마의 교황을 정점으로 삼는 서쪽의 가톨릭교회catholic Church였다. 그 이후, 양쪽 모두 자신만의 스타일과 문화를 가진 두 개의 기독교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교회의 성직자들은 대개 턱수염을 기르고, 가톨릭 성직자들은 그렇지 않다. 정교회 신부는 결혼할 수 있고, 가톨릭 신부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이런 표면적인 차이들 뒤에는 로마의 교황이 가지고 있다고 하는 최고 권위의 원천을 둘러싼 깊은 의견 대립이 여전히 존재한다. - P252
그는 무슬림이 기독교의 성지를 소유한다는 것을 모욕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되찾기로 결심한다. 그는 가톨릭교회를 위해 예루살렘을 무슬림으로부터 되찾아야 한다고 유럽의 기독교 전사들을 설득하는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무슬림의 도전에 대응하여 전투에 나갔던 사람들을 십자군Crusaders이라고 불렀다. 그 말은 십자가로 표식을 했다는 의미였다. 십자가 휘장을 앞세우고 로마 근처 밀비안 다리Milvian Bridge에서 경쟁자와 싸웠던 콘스탄티누스처럼, 십자군은 십자가에서 처형된 예수의 상징을 앞세우고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던 무슬림과 싸우는 전투에 돌입했다. - P256
교회는 오래전에 성스러운 땅에 살았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지만, 이제는 교황이 예수의 지상의 대리자로서 군림하고 있다. 성서에서 말하는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교황이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천국이나 지옥의 열쇠를 가진 사람은 교황뿐이었다. 그것을 기록한 오래된 책은 라틴어로 쓰여 있었기 때문에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미사에서 그 책의 내용을 이해하면서 읽는 신부도 거의 없었다. 그것은 이해하지 못해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지는 쿠란 낭독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 P263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마르틴 루터의 마음속에서 불타고 있던 강박관념이었다. 루터는 자신과 마찬가 지로 강박관념에 빠져 있던 사람인 성 바울의 편지들을 읽으면서 신에 대한 통찰의 순간, 즉 계시revelation를 경험했다. 사람은 끊임 없는 기도나 순례로 구원을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또는 교황이 직접 서명한 면죄부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런 것들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비즈니스적인 거래, 즉 돈으로 살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변질시킬 뿐이다. 루터는 돈으로 신의 사랑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그때 번뜩 깨달았다. 신의 사랑은 살 수도 없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는 깨달음이다. 왜냐하면 신은 대가 없이 자기 사랑을 주기 때문이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교회가 중개하는 싸구려 거래가 아니라 신의 사랑이다. 우리는 교회나 교황이나 다른 어떤 인간 대리인이 아니라 오직 그의 사랑, 오직 신의 사랑을 믿어야 한다. - P265
과거에 종교는 신이 사람들을 벌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문제에 대해 시험을 치르고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러 다른 종교들이 서로 상호 경쟁적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문제를 미리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태어나, 전혀 모르는 문제를 놓고 시험을 치를 때, 그것에 대비하여 우리를 지도해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P268
그러나 교회는 신의 친절divine kindness에 근거한 종교를 인간의 잔인human cruelly에 근거한 종교로 바꾸어놓고 말았다. 그것은 예수 십자가의 깃발을 휘날리며 적을 살육했던 콘스탄티누스의 방식이었다. 그것은 십자군이 무슬림을 죽이러 성지로 진격했을 때 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심문관이 이단의 팔을 형틀 위에서 부스러뜨리며 한 일이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아는 신의 버전을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복종시키는 것이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신에 대한 버전이 사실은 단지 자신들만의 버전에 불과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 P270
힌두교는 이런 종류의 차별을 시행했던 유일한 종교는 아니었다. 그것은 유대교 안에서도 발견된다. 유대교는 음식을 구별할 뿐 아니라 인간도 차별했다. 예수에게 씌워진 혐의 중 하나는 이런 금기들을 무시했다는 것이었다. 예수는 죄인들에게 말을 걸었을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기도 했다! 그의 길을 따른다고 주장했던 교회조차도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의 본보기를 따르지 않아야 할 이유들을 발견했다. 식사 금기는 아직도 기독교 안에서 지켜지고 있다. 기독교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주님의 만찬, 또는 성찬, 혹은 미사라고 불리는 의례화된 식사다. 그것은 예수가 죽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한 식사에서 유래 한다. 그때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기억하며 계속 그런 식사를 하라고 말한다. 그 이후, 기독교도들은 그것을 실행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사람과 함께 먹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로마가톨릭 신자들은 개신교도와 함께 먹으려 하지 않는다. 개신교도들 중에는 다른 종파에 속하지 않는 사람과는 함께 먹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많은 기독교도들은 죄를 지은 자는 성찬을 함께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마치 잘못 행동한 벌로 저녁을 먹이지 않고 아이를 잠자리로 보내는 것과 같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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