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말 때문에 늦었어요. 나가려고 하는 순간에 왔지 뭐예요."
"약속 있다고 그냥 나오지 그랬어요?"
"그럴 수가 없어요. 형이니까요."
형한테는 그러면 안 되고 마리나는 기다려도 된다는 의미였다. 무슬림의 가족은 양날의 검처럼 장단점을 모두 갖고 있었다. - P197

마리나는 그와의 만남도 별 볼일 없으리라는 걸 간파했다. 루스탐은 대단한 미남이었다. 그런 사람이 왜?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딱해서? 그렇다면 큰 오산이다. 그녀는 가진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잃은 것도 없었다. 게다가 아직 그녀의 인생에 저녁은 오지 않았고, 앞으로 좋은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터였다. 이 남자가 아니라면 다른 남자를 만나면 된다. 물론 아예 안 만날 수도 있다. 사실 남자는 종족 번식을 위해 필요할 뿐이고, 그녀에겐 이미 아이들이 있었다. 프로그램은 완료된 셈이었다. - P194

마리나는 교무실에 있는 사람들이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사무적으로 말했다. 업무 전화임을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하긴 따지고 보면 사랑도 일 아닌가? 인간의 삶에 존재하는 모든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 P196

슬픔이 피 속에 아드레날린을 주입하자 행복이 그것을 잘게 쪼개서 몸 밖으로 배출한 것인지도 모른다. 더욱이 사람은 본능적으로 사랑을 통해 슬픔을 치료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복과 슬픔은 양날의 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둘이 합쳐서 하나의 몸을 이룬다. - P199

마리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남자의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그게 어떤 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생 각하는 사랑은 여권에 찍힌 혼인 신고 도장과 함께 그 남자와 합법적으로 동거하는 거였다. 꼭 함께 살아야 사랑하는 건가? 감정 없는 잠자리를 갖고 서로 늘 짜증을 내며 보드카로 귀결되는 끊임없는 부부싸움이 사랑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흔한 말로 릴랙스하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도 하지만 결국 보드카의 도움으로 슬픔을 치료하고 그로 인해 다시 쇠퇴한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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