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는 몇몇 사람들은 나를 싸움꾼이라고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싸움꾼이 아니다. 누가 나를 아는 게 싫어서 눈에 팍 띄는 싸움질은 되도록 피했다. 단지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놀린 놈들만 두들겨 팼다.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낯간지러운 이유로 팬 건 아니다. 쪽팔리고 열 받아서 팼다. 진짜 난쟁이인 아버지를 놀렸든 그 핑계로 나를 놀렸든. - P10
"왜? 너도 쪽팔려? 새끼야, 가난한 게 쪽팔린 게 아니라, 굶어서 죽는 게 쪽팔린 거야." 나는 당신이 담임이라는 게 쪽팔려. "잔말 말고 가져가. 그리고 잡곡밥은 좀 남겨라." 똥주는 앞장서서 걸었다. 건들건들 걷는 모습이 동네 양아치 저리 가라다. 수급품. 내 체면을 생각해서 조금 조용히 해 줄 수 없을까. 우리 집 앞에 몰래 놓고 가주는 자비는 바라지도 않는다. 이건 뭐, 자기가 먹으려고 수급대상자인 제자한테 배달시키니, 천하의 야비한······. - P11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 키를 넘어섰다. 아버지는 그렇게 키 작은 어른이었다. 절대로 어린애가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야, 너, 이봐, 식으로 애 부르듯 불렀다. 아버지가 어깨만 흔들어도 웃어대더니 이제는 싫은 모양이다. 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정말 싫었다. - P16
시끄럽고 어두운 곳에서만 일하던 사람들이 조용하고 환한 곳에서 일하려 한다. 낮에는 숙소에서 나오지도 않던 두 사람이 낮에 나가는 일을 택했다. 작업환경이 이렇게 급작스럽게 바뀌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 P17
"글은 잘 쓰고 있냐?" "······." "대학 가라." "······." "좋은 데 가라는 말 아니다. 남들이 해보는 건 해봐라. 때 놓치면 하고 싶어도 못 한다. 2호선 타고 도는데, 대학생 애들······ 보기 좋더라." 몽키 몽키 몽키, 몽키 매직. 몽키 몽키 몽키, 몽키 매직. 서른이 넘은 삼촌의 디스코, 보기 좋았다. - P21
똥주 말은 틀린 게 없다. 분명히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맞는 말이 나는 영 거슬린다. 남의 비밀을 폭로하면서 ‘내가 거짓말했어? 진짜잖아.‘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남의 자존심을 긁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 안 해도 될 말을 굳이 끼워 넣어서 웃음거리로 만들고 마는 인간. 내가 한 잘못을 나한테서 끝내지 않고 아버지까지 들먹이는 너절한 인간이다. 아프다, 엉덩이. - P28
오늘은 고급 스타킹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급 스타킹에는 관심 없었다. 자기 앉은키와 비슷한 아버지에게 관심 있었다. 대놓고 보지도 못했다. 안 보는 척 힐긋힐긋 보았다. 카바레에서 하던 아버지의 바람잡이 실력은 지하철에서도 빛을 발했다. 평상시에는 거의 웃지도 않으면서 바람잡이 할 때는 정말 신나게 웃는다. 어렸을 때 나는 저 웃음이 정말 좋아서 웃는 웃음인 줄 알았다. - P29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넉넉한 나라에서, 꼴 같지 않게 제3세계니 뭐니 해가며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아낌없이 무시해주는 나라에 서, 어머니가 무척 힘들었을 거라고. 그럼 그 조건에 +1 해서, 어머니 없이 사는 나는 뭔가. 주가 위로랍시고 하는 말이, 아버지는 장애를 숨기지 않고 서류에 썼는데, 가운데에서 브로커가 그 부분을 싹 지우고 결혼을 진행시켰단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어머니를 신부로 맞기 위해 사기를 친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 P41
"자기 집 앞에 차를 댔는데, 못으로 씨불놈이라고 써놓는 게 정상입니까? 저분이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저 양반이 그런 짓을 할 수 있었겠냐고요. 사회가 이러면 안 됩니다." 똥주는 책상을 탕탕 치며 매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오늘 연기 좀 한다. "거기가 왜 저 양반 집 앞이야! 내 집 앞이지." "두 대문이 꼭 마주 보고 있는데, 왜 당신 집 앞만 돼! 차도 없는 양반이." "나는 내 집이고, 저 양반은 세 들어 사는 사람 아냐!" "세를 냈으니까 집 앞까지 쓸 자격이 있지!" - P47
늘 어둠침침한 곳에서만 춤을 추던 두 사람이 이제 시장에서 춤을 춘다. 아직 장에서 춤추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확실한 건 카바레 다닐 때보다 건강해 보인다는 것이다. 카바레······ 아버지가 맞는 모습을 봤고, 그러면서도 웃는 모습을 본 곳이다. 웃는데 그 웃는 모습이 싫었고, 웃으면서도 울까 봐 괜한 걱정을 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을까. - P50
"완득아. 너도 내 춤이 우습냐? 헤헤헤. 나는 되는데, 사람들은 왜 자꾸 안 된다고 하지? 리듬은 키가 타는 게 아니라, 몸이 타는 건데. 바보 천치들, 그 쉬운 걸 몰라요. 딱 십 센티만 더 컸으면······ 헤헤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이런 말을 했었다. 그리고 그 말은 내가 아버지 키를 넘길 때부터 가슴 무겁게 들리기 시작했 다. 나는 열네 살 때 카바레를 떠났다. 내 기억의 첫 번째 장소 카바레. 가끔은 그곳이 그립다. - P51
아버지는 변두리 지역이라도 꼭 서울을 고집했다.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녀야 괜찮은 대학을 가는 줄 안 것이다. 거리가 먼 2 지망 학교가 배정되면서 아버지는 학교 근처로 집을 옮겼다. 말이 근처지 개천을 따라 버스로 세 정거장을 간 뒤, 가파른 골목 꼭대기 까지 올라가야 나오는 옥탑방이었다. 조용히 살자는 내 인생 철학에 제동을 건 똥주가 사는 동네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어설픈 맹부 삼천지교가 내 인생을 이렇게 꼬이게 할 줄이야.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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