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성이 뭐 어때서. 세상에 삶만큼 죽음만큼 상투적인 게 또 어디 있다고. 그 ‘반복‘의 무게에 머리 숙이는 게 결국 예의 아니던가. - P231

나는 내 감정이 인간적인 호감인지, 성적 주체가 되는 기쁨인지, 성적 대상이 되는 설렘인지 헷갈렸다. 어쩌면 그 모든 게 섞인 총체적인 무엇일지 몰랐다. 감정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사실 대상과 무관하게 외국어 수업에는 어느 정도 성애적인 측면이 있었다. 일말의 더듬거림과 망설임, 지연과 기쁨, 찰나의 교감, 수치심과 답답함, 긴장과 해소, 갑자기 터져나오는 웃음, 실수와 용서 등이 그랬다. - P233

잠시 후 노래가 끝나자 헌수는 ‘왠지 ‘가지 말라‘는 청보다 ‘보고 싶다‘는 말보다 ‘너한테 배웠어, 정말 많이 배웠어‘라는 가사가 더 슬프게 다가온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 것 같다며. ‘삶은 대체로 진부하지만 그 진부함의 어쩔 수 없음, 그 빤함, 그 통속, 그 속수무책까지 부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인생의 어두운 시기에 생각나는 건 결국 그 어떤 세련도 첨단도 아닌 그런 말들인 듯하다‘고 했다. ‘쉽고 오래된 말, 다 안다 여긴 말, 그래서 자주 무시하고 싫증 냈던 말들이 몸에 붙는 것 같다‘고. - P249

그땐 미처 몰랐지만 아마 헌수 마음속에서는 하고 싶은 말과 해선 안 되는 말, 할 수 없는 말 등이 뒤엉키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건 ‘좋은 부모‘나 ‘그렇지 않은 부모‘의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일지 몰랐다. 마치 내가 나의 삶에 계속 놀라게 되면서부터 다른 사람 삶도 잘 판단 않게 된 것처럼. - P252

‘다음 단계‘를 꿈꾸던 젊은 나도 없는 이 방에서 ‘너한테 배웠어, 정말 많이, 정말 많이 배웠어‘란 가사의 노래를 듣는다. 보다 정확히는 네가 아니라 너의 부재로 부터 무언가 배웠다고. 그런데 여전히 그게 뭔지 모르겠어서 지금은 그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내 쪽에서 먼저 원곡 위에 ‘안녕‘이란 한국어를 덧씌워 부른다고. 우리 삶에는 그렇게 틀린 방식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고 아마 나는 그걸 네게서 배운 것 같다고. - P253

나는 로버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실력도 안 될뿐더러 지금 내 마음을 어색하게 번역했을 때 일어나는 어쩔 수 없는 누락과 손실이, 하찮은 세부 하나하나가 내 감정의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부분으로 느껴질 것 같아서였다. 기쁨이라면 상관없었다. 하지만 슬픔은 달랐다. 고통만큼은 내 슬픔의 언어, 감정의 뿌리, 모국어로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모국어로 말한들 과연 그게 온전히 전해질까?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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