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미렐라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해졌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모녀 사이라는 것을 잊을 때, 가끔 절대적인 신뢰 속에 우리 둘이 강력하게 연결된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미렐라는 마치 병이 옮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 P286

"저도 많은 생각을 해요. 정말이에요. 끊임없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되물어요. 엄마는 제가 냉소적이고 차갑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저는 엄마와는 다를 뿐이에요.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엄마는 옳고 그름에 대한 전통적인 기준을 따르기만 하면 돼요. 그러니 엄마는 운이 좋은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요. 무슨 일이든 받아들이기 전에 제 기준에 따라 살펴보고 판단을 내려야만 해요." - P296

우리 사이에는 아이들과 마리나와 칸토니와 평생토록 설거지한 산더미 같은 접시들과 남편이 사무실에서 보낸 시간과 내가 내 사무실에서 보낸 시간과 어젯밤처럼 냄비에서 나오는 김 때문에 보이지 않는 눈을 비벼가며 끓인 수프가 있었다. - P323

과연 내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생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 싶다. 그것들은 더 이상 우리 부부의 생각이 아니라 나만의 생각이었다. 신혼 초에는 모든 생각이 우리의 생각이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침묵의 힘을 빌려 여전히 우리의 생각이 일치하는 것처럼 연기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몇 년 전부터 자주 남편과 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는 거다. 지금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나 자신을 돌아보고 긴 글을 써야 할 것만 같다. 그것은 너무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일이기에 나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다른 남자를 생각하면서 아직도 진심으로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 이 생각이 끈질기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 P334

너무나 불안하다. 일기 쓰기를 그만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피곤해서 객관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가끔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미켈레를 사랑하지 않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사이에 사랑의 감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이 사랑만큼 가치가 있지만 전혀 다른 감정들로 대체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습관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 같다. - P335

미렐라가 엄마처럼 살기 싫다고 고백하기 전까지 나는 미켈레를 향한 내 감정이 아직 사랑이라고 확신했다.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행복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켈레와 함께할 때의 행복은 얼어붙은 행복이다. 귀도가 내게 이야기를 걸어오고 그가 내 손을 잡을 때 느껴지는 행복과는 다른 감정이다. 귀도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야말로 사랑이다. 미켈레와 함께하는 행동은 애정이나 연대감 혹은 습관일 뿐이다. 그와 가끔 나누는 가장 친밀한 행위마저도 사랑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자비와 연민에 가까운 행동이다.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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