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쓰기는 무엇을 생략할지, 무엇을 잊을지를 솎아내는 선택의 연속이다.

기억할 만한 샌드위치 하나, 기억할 만하지 않은 층층의 계단. 아무도 기록하지 않는 수다스러운 말소리로 가득한, 기억할 만한 잠깐의 대화. - P10

나는 어느 공책 표지 안쪽에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사랑 편지 삼아 시 몇 구절을 필사해 두었다.

그대가 다 늙어 머리는 허옇게 세고 잠이 늘어 난롯가에서 꾸벅꾸벅 졸 때, 이 책을 꺼내어 천천히 읽으며 떠올려봐요. 한때 그대 눈이 지녔던 그 유순한 눈빛과 깊은 그림자를···.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그대가 늙거든(When You Are Old)』 - P11

그때는 일기장이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잊는지를 아직 모르던 때였다. - P13

간혹 일기 쓰기를 매일 하는 운동이나 기도나 자선 활동처럼 고결한 행위로 간주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시도만 몇 년째예요, 라고 그들은 말한다. 매년 1월이면 일기를 쓰기 시작해요, 라거나 전 기본자세가 안 돼 있어요, 라고도 말한다. 그들은 나를 의지력이나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일기를 쓰지 않는 편이 더 힘든 걸요, 하고 해명해 본다. 내게 일기 쓰기는 (한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지긋지긋한 숙제 같은 것이 아니다. 운동을 하거나 돈이 되는 일을 하거나 불운한 사람들을 돕는 데 시간을 쓰는 대신 나는 일기를 쓸 따름이다. 하나의 악습인 셈이다. - P14

오늘이라는 시간은 몹시 벅차다. 하지만 문제는 오늘이 아니다. 문제는 내일이다. 내일이 없다면 나는 오늘 안에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진짜 하루하루 사이에 여분의 하루하루가, 완충 역할을 하는 하루하루가 필요하다.

하루 이상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고 시간을 그저 흘려보낸다면, 두렵지만 그렇게 해본다면, 나는 그 시간에 휩쓸려 사라질 것이고, 무언가를 지속하는 행위의 목적을 더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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