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은 반드시 합당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꽃은 벌을 유인하기 위해 좋은 향을 낸다. 반면 냄새가 고약한 것은 말려서 바람에 날려 버려야 한다. 흔적도 없이 말이다. - P11

하지만 이번만큼은 여자의 생각이 틀렸다. 나타샤는 그녀의 생각과 달리 불행하지 않았다. 젖소과 함께 초원에 앉아 있는 것만큼 좋은 일이 또 있을까? 그것도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평선에서 말이다. 젖소는 아이처럼 순하고 순박하며 예쁘기까지 하다. 술을 병째 들이켜고 나면 세상은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눈물이 날 정도로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이었다. 공기를 가르며 불행을 예고한다는 말벌조차 신의 창조물이며 제 역할과 기능이 있으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P14

안젤라는 집(좀 더 정확히는 잠시 신세 지는 여자의 집)으로 3번 전차를 타고 갔다. 전차는 텅 비어 있었다. 안젤라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모스크바 사람들을 보려다 갑자기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으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전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아가씨, 왜 울어요?"라고 묻는 사람은 고사하고 그녀를 애써 위로하는 사람도 없었다. ‘인생은 길고 앞으로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조금씩 그녀의 슬픔에 빠져들었고, 그들 역시 어느새 훌쩍이기 시작했다. 어린 아가씨의 슬픔과 자기 연민에서 비롯된 흐느낌이었다. 물론 자기 연민만으로도 눈물을 쏟을 이유는 충분했다. - P15

인노켄치는 인체가 수분으로 구성된 것처럼 90퍼센트의 게으름으로 이루어진 사람이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벽장에 있는 드릴을 꺼내서 콘센트에 꽂고 벽에 구멍 낸 뒤 망치로 못을 두드려 벽에 고정하는 일은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안 날 만큼 어마어마한 결단이 필요했다. […]
그는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에겐 이끌어 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누군가 리드해 주면 어떤 목표라도 이뤄 낼 수 있고 하늘의 별이라도 따 올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리더도 선두도 아니었다. 그들의 뒤를 따르는 2등으로 만족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2등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1등은 한 명뿐이다. 잔다르크나 미하일 쿠투조프 같은 이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군대는 2인자로 이루어진 조합이다. 2인자 없이 1인자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뤄 낼 수가 없다. 그래서 세계는 수많은 2인자로 이루어진 것이다. - P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