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 저녁이었다. 후카 가와의 요정 히라세이 앞을 지나던 세이키치의 시선 속으로 문득 요정 앞에 대기하고 있던 가마가 들어왔다. 주렴이 드리워진 그늘 사이로 여인의 새하얀 맨발이 드러나 있었다. 예리한 그의 시선에는 사람의 발이 얼굴과 똑같이 복잡한 표정을 가진 것으로 비춰졌는데, 그 여인의 발은 고귀한 살갗으로 이루어진 보석처럼 느껴졌다. 엄지에서 시작해서 새끼로 끝나는 가지런한 다섯 발가락의 섬세함, 에노시마 해변에서 캐낸 연한 선홍빛 조개에도 뒤지지 않을 발톱의 색감과 구슬과도 같은 발뒤꿈치의 완곡미, 그리고 바위틈에서 새어 나오는 맑은 샘물이 항시 발치를 씻어 내고 있다고 착각할 만한 윤기. 바로 이 발이 머지않아 사내의 생 피로 살을 찌우고, 그 사내의 몸을 짓밟을 발이리라. 그리고 이 발의 주인이야말로 그가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여인 중 가장 이상적인 여인일 것이었다. - P10
"너를 정녕 아름다운 여인으로 만들기 위해 나는 문신에 내 혼을 모두 쏟아부었단다. 이제 이 나라에서 너보다 아름다운 여인은 없어. 지금까지 네 안에 있던 나약함은 이제 다 사라져 버렸다. 남자라는 남자는 모두 너의 비료가 될 게야······." - P17
분홍색 커튼이 쳐진 창 안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신비로운 울림······. 때로는 숲속 요괴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치는 것 같다가 어떤 때는 동화 속에서 난쟁이들이 빼곡히 한데 어울려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수천 개의 섬세한 상상의 비단 색실로 어린 마음에 미묘한 꿈을 한 땀 한 땀 새겨 넣는 그 신비로운 울림은 마치 이 오래된 늪 밑바닥에서 퍼져 나오는 연주 소리 같다는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 P31
잠시 후 방 안의 적막을 깨고 쥐 죽은 듯 고요했던 옆방에서 갑자기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왔다. 싸라기눈이 은반 위를 내달리는 것처럼, 골짜기에 맑은 물이 졸졸 흘러 이끼 위에 방울져 떨어지는 것처럼, 이 세상의 소리가 아닌 듯 신비로운 음률이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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