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중 누가 더 명확하게 보고 있었던 걸까? 감독의 여성에 대한 태도와 감독의 과거 여자 문제에 영향받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일까. 누군가는 그것을 특권이라고 부르지 않나? 자서전적 오류를 저지르지 않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혹은 프로젝트를 생기 있게 만드는 충동을 알아볼 수밖에—혹은 느낄 수밖에—없는 사람은 누구인가?
난 정말 궁금해서 묻는다.
자신들이 객관적이라 자부하는 관객들은 정말로 자기 생각만큼 객관적일까? - P56

권위가 말하길, 작품은 작가의 삶에 의해 훼손되지 않은 채 순수하게 남아 있어야 한다고 한다. 권위가 말하길, 자서전은 오류라고 한다. 권위는 작품이란 이상적인 상태(역사를 초월한 곳, 고산, 설원, 순수) 위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권위는 창작자의 이력과 과거사를 알면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는 감정을 무시하라 말한다. 권위는 그런 것들에 코웃음을 친다. 권위는 자서전과 역사와 상관없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권위는 남성 제작자의 편을 든다. 관객이 아니다. - P58

나는 관객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관객은 무언가를 보고 읽고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그들은 관객이 된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면서 관객에게 새로운 임무가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현대사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불현듯 씁쓸한 깨달음이 스쳐 간 순간에 관객은 다른 무엇이 되어 있었다. 새로운 괴물에 의해 새로운 분노를 계속 키우고 또 키우고 또 키워 가는 집단이 된 것이다. 관객은 괴물을 고발하는 드라마를 보며 전율을 느꼈다. - P59

우리가 도덕적 감정을 느낄 때 자아도취라는 감정은 결코 뒷자리에 오지 않는다. 윤리적 언어의 침대에 감정을 살포시 올려놓기로 하고 그렇게 하는 스스로를 칭찬한다. 우리는 감정에 지배되고 그 감정을 중심으로 언어를 배열한다. 우리의 미덕을 전달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이상하게도 짜릿하게 느껴진다. - P59

나는 인간의 조건이 자신 안의 사악함과 나약함을 은밀하게 의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왜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에게 매혹되곤 할까? 우리 안에, 내 안의 무언가가 그 끔찍함에 공명하면서 내 안에 그 끔찍함이 있음을 인식하는 동시에, 그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문제의 괴물을 요란하게 비난하는 드라마에 짜릿함을 느끼는 건 아닐까.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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