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지나가는 학기 중에 묘하게 잠시 정지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윌리엄 스토너는 차츰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레이스가 자신의 삶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과 어쩌면 자신이 훌륭한 교육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 - P156
10년이나 늦기는 했지만, 이제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차츰 알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발견한 새로운 자신은 예전에 상상했던 것보다 더 훌륭하기도 하고 더 못나기도 했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교육자가 된 기분이었다. 자신이 책에 적은 내용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인간으로서 그가 지닌 어리석음이나 약점이나 무능력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예술의 위엄을 얻은 사람. 그가 이런 깨달음을 입으로 말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사람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것의 존재를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 - P158
그레이스가 제 책상에 앉아 책에 빠져 있었다. 책상 위의 스탠드 불빛이 아이의 머리카락에 부딪혀 반짝이고, 그 불빛에 작고 진지한 아이의 얼굴 윤곽이 도드라지게 보였다. 지난 1년 동안 아이가 많이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싫지 만은 않은 작은 슬픔에 윌리엄은 잠깐 목이 메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자신의 책상으로 갔다. - P167
이 일의 중대한 의미가 서서히 다가왔기 때문에 그는 여러 주가 지난 뒤에야 이디스의 행동이 지닌 의미를 인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인정하는 순간이 왔을 때에는 놀라움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이디스가 워낙 영리하고 노련하게 행동했기 때문에 그는 그녀의 행동에 불평을 늘어놓을 합리적인 근거를 전혀 찾아낼 수 없었다. 그녀가 그날 밤 거의 난폭하게 보일 정도로 갑작스레 그의 서재에 들이닥친 일을 되돌아보니 마치 기습공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이디스는 그보다 간접적이고,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전략을 사용했다. 사랑과 염려라는 가면을 쓴 전략이었으므로, 그는 그 앞에서 무기력했다. - P170
한편 아이에게 강박적으로 집착하던 이디스의 태도가 조금 느슨해졌기 때문에 아이도 이제 가끔 미소를 지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편안한 태도로 이야기를 건넬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가끔 이만하면 살 만하다고, 심지어 행복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했다. - P1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