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으로는 관객들의 싸늘한 냉기가 느껴진다. 무대 인사를 하며 무의식중에 앞줄에서 본 것이 헛것이 아닐까 봐,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다. 당연히 착각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당장 짐을 싸서 무대를 떠나야만 해결될 일이다. 어떤 여자의 기침. 어떤 남자의 기침. 아득히 멀고 큰 그 기침 소리가 연주 홀의 크기를 짐작케 한다. 괜찮아, 오른쪽에는 아무 일도, 아무것도 없어. 얼음, 적, 그리고 죽음만이 있을 뿐. - P9
도이치 번호 960의 안단테 소스테누토 악장은 다뉴브강의 안개로부터 찾아오는 죽음과 같아서 처음에는 아주 멀리 있다가 조금 지나면 소스라치리만치 가까이에 와 있다. 페레 브로스는 삼 분간 지속되는 이 주제 부분의 극적인 긴장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매우 서서히 진행되는 크레센도의 조절은 금으로 만든 손에 다이아몬드 열 개가 각각의 손가락에 박히지 않은 이상 거의 연주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재현부에서 그는 청중을 압도적인 고요로 몰아넣는 데 성공했고, 연주 홀의 벽을 감싸는 나무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이유만으로, 단지 그 이유만으로도 그는 파르도에게 잠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붉으락푸르락하며 그를 따라오는 매니저 를 뒤로한 채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가 문을 쾅 닫았다. 내가 말이야 저자의 목소리나 마찬가지란 말이야, 내가 없으면 스케줄도 못 짜고, 일정도 기억을 못 한다고! - P14
두 친구는 튜닝이 안 된 비를 한참 동안 말없이 듣고 있었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땅 위에 버려진 금속성의 물체를 두드리며 도#의 소리를 쉬지 않고 냈다. 꽤나 거슬렸다. - P16
트루욜스 선생에게 악기를 배우기 시작한 아홉 살 때부터, 뵈브 암발로 채워진 잔을 들어 올리고 있는 마흔일곱 살까지, 총 삼십팔 년간 손떨림증은 가시지 않았다. 자신의 건강을 위하여, 그리고 항상 완벽하고, 몸을 사리지 않고, 따뜻하고, 인간적이고, 훌륭하고, 안정감 있고, 자신만만하고, 강렬하고, 미묘하고, 부드럽고, 무결하기 위해 연습한 시간을 위하여 그는 술잔을 들이켰다. 항상, 항상, 항상, 항상.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나서, 헛된 시간이여, 그는 지금에 와서 당장 그만두겠다고, 수백 개의 전구가 달린 거울 하나만 덩그러니 놓인 골방에서, 그것도 연주회 중간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오래 연습을 해 놓고도 슈베르트가 무섭다니. 그를 내보내라고, 기세등등한 샴페인 잔에 낮게 소리쳤다. 그를 쫓아내 버려. 그는 여기 있을 권리가 없다고! - P20
친구의 차가운 반응에 낙심할까 봐 얼른 전화를 끊고 그는 생각했다. 인생이란 왜 이토록 잔인한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내 호텔로부터, 내 갈망으로부터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머물고 있고, 내가 그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구나.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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