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사이엔, 심지어 가장 감미롭고 다정한 순간에도, 불안하고 난폭한 무언가가 자리 잡았다. 그들은 더러 이 불안감으로 괴로워하면서도, 혹여 그들 중 누군가의 가슴에서 이 불안감이 사라진다면 그건 동시에 사랑도 사라졌다는 의미라는 걸 막연하게나마 인식했다. - P186
상대의 진실만큼이나 꾸민 모습, 나아가 반 거짓말까지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 보고 좋아하는 사랑의 단계였다. 상대가 그런 모습까지 보여 주는 것이야말로 궁극의 신뢰의 증거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 P189
앙투안은 이따금 의문스런 눈초리로 루실을 힐끔거렸다. 루실의 게으름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고 아무것에도 대비하지 않을 수 있는 엄청난 능력, 행복할 수 있는 재능 – 그토록 텅 비고, 무위하고, 그날이 그날인 날들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 – 이 그에게는 때로 괴이하다 못해 거의 끔찍하게 느껴졌다. 앙투안은 루실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그래서 그와 함께 있으면 그가 그녀와 함께 있을 때 그렇듯 지루해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이런 끝도 없는 무위를 루실에 대한 열정으로 견디는 것과 달리, 루실에게는 이런 삶의 방식이 그녀의 뿌리 깊은 천성에 보다 근접해있으리라고 느꼈다. 마치 불가해한 짐승, 처음 보는 식물, 만드라고라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 P192
그들은 점차로 서로의 몸을 정확하게 파악했고 그것으로 거의 학술을 정립할 수 있을 정도였으나 오류가 많은 학술이었다. 상대의 쾌락을 배려하는 데 기반을 두었으면서도 자신의 쾌락 앞에서 무력하고 허술해지며 흐지부지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엔 두 사람은 자신들이 지난 30년간 서로를 모른 채 살아올 수 있었다는 걸 믿기지 않아했다.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진실이 아니며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을, 몇 번이고 서로에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 P193
그렇게 꿈처럼 8월이 흘렀다. […] 거리엔 가느다란 빗줄기가 힘없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앙투안은 빗물이 미지근하리라 짐작했다. 어쩌면 눈을 뜬 채로 조용히 울고 있는 루실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처럼 짭짜름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루실이나 구름에게 이 눈물의 이유를 물어볼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여름이 끝났고, 그것은 그들 생애 가장 아름다운 여름이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 P193
돈의 유일한 매력이라면 바로 이 모든 걸 피하게 해주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다림, 짜증, 그리고 다른 것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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