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녀를 육체적으로는 소유했으나, 인간으로서는 완벽하게 놓쳤다. 물론 그들은 함께 웃었고, 웃음은 사랑의 고유한 특성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프레카틀랑에서 눈물이 차오른 루실의 눈을 본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그를 엄습했던 그 기이한 향수를 되새기면서,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에게 그들이 쾌락으로 맺어지고, 웃음으로 맺어진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그들은 고통으로도 맺어져야 했다. 그녀가 그와 다른 의견을 내세울 수도 있는 거였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더는 그에게 다른 의견을 내세우지 않을 터였다. 떠나버렸으므로. - P170

어떻게 두 달 동안 둘이서 그토록 행복했으면서 그녀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는 어떻게 그토록 비관적이고 이기적이고 분별없을 수 있었을까?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그녀는 후회했고, 그래서 몰래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쩌면 그는 보름 동안 그녀 생각만 했는데도, 정작 그녀는 그가 자기를 잊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녀는 그, 앙투안의 뿌리 깊은 어리석음 때문에 불행해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속히 그녀를 찾으러 가야 했다. 가서 모든 걸 설명하고, 그녀가 원하는 모든 걸 하리라. 그녀를 품에 안고서 용서를 구하고, 몇 시간이고 키스하리라. - P172

칸 역에 도착 하니 침대칸이 남아있었다. 밤새, 그들의 뒤엉킨 얼굴들 위로 열차의 울부짖음과 조명 빛들이 어른거렸다. 더러 열차가 철컹거리며 기차역에 정차할 때면, 철도원이 쇠막대로 바퀴 상태를, 파리로 향하는 그들의 여로를, 그들의 운명을 점검했다. 속력은 그들의 쾌락을 증폭시켰다. 열차가 미친 듯 질주하면, 고이 잠든 벌판에 대고 이따금 격렬한 신음을 쏟아내는 건 바로 그들이었다. - P177

이럴 줄 알고 있었다. 이렇게 끔찍할 줄. 또한 그가 이럴 줄 알고 있었다. 이렇게 완벽할 줄. 모든 것이 그녀가 짐작하던 대로 전개되었다.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 수밖에 없는 절망감이 그녀 안에서 그에게 사랑받았다는 희미한 자부심과 뒤섞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를 이렇게, 이 커다란 아파트에 홀로 남겨 두고 떠날 수는 없는데··· - P181

루실은 신비롭고 기이한 병의 포로가 된 기분이었고, 그것이 행복이라는 걸 알았으나 그렇게 부르기가 망설여졌다. 똑똑하고 예민하고 비판적인 두 존재가 그 지경으로 숨을 헐떡이면서, 그 지경으로 단단히 밀착되어서, 울먹거리는 것 같은 목소리로 덧붙일 다른 말은 아무것도 없기에 단지 ‘사랑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어떤 의미로는 터무니없게 여겨졌다. 그녀는 덧붙일 다른 말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다. 실제로 더 바랄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그것은 결국 우리가 충만함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루실은 언젠가, 어느 훗날엔, 이 충만함의 기억을 넘어서기 위해 어찌하면 좋을지 의문이었다. 그녀는 행복했고, 두려웠다. - P184

두 사람은 어긋나고 위태했던 공동의 과거 속을 달렸던 반면, 평화롭고 영구적일 수 있을 공동의 미래를 꿈꾸지는 않았다. 루실은 계획들과 평범한 삶을 앙투안보다 더 두려워했다. 그들은 지금으로서는 홀린 사람들처럼, 펼쳐지는 현재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침이면 떠오르는 태양이 서로에 대한 허기가 충족되지 않은 채 한 침대에 누운 그들을 비추며 바라보았고, 저녁이면 지는 태양이 열기가 가신 부드럽고 비할 데 없는 파리의 거리를 거니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순간순간 그들은 지극히 행복해서, 더는 서로 사랑하지 않는 기분을 느꼈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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