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이 갈래?" 잠시 후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가 내게 그런 초대를 한 것은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고, 한편에서는 그러겠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랬다간 어머니가 나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터였다.
"저 수영 팀이에요." 나는 말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영 팀이라."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렇지, 맞다. 물론 그래야지." 그런 다음, 그것이 우리 사이의 차이점을 영원히 설명이라도 해줄 것처럼, 아버지는 내 어깨를 두드리고 테라스로 통하는 미닫이 유리문을 열고 사라졌다. - P33

나는 늦게까지 수영 연습을 했고, 차우네 식구들과 저녁을 먹었고, 늦은 밤에 혼자 해변을 산책했다. 어머니가 데이비드와 데이트를 하는 것으로 아버지 마음에 상처를, 입히려 한다고 스스로 확신했다. 나는 아버지가 떠나버린 책임을, 소식 한 자 없이 지나가는 그 세월에 대한 책임을 어머니에게 전가했다. 어머니는 스스로 아버지 자리를 대신하려는 듯이 보였고, 나는 남은 생을 밖에서 보내야 하는 게 아닌가—저녁마다 어머니와 데이비드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몇 시간이고 기다리면서—걱정이 됐다. - P35

내 거실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 영화의 프리미어 시사회 날 밤에 찍은 사진이 있다. 그들은 뉴욕의 어느 소극장 밖에 서 있고, 아버지는 위쪽으로 보이는 마르키의 불빛을 가리키고 있다. 아버지는 슈트 차림으로, 어머니는 긴 이브닝드레스 차림으로, 둘이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본 내 기억 속 유일한 때다. 그들은, 그 둘은, 바람 불어오는 쪽으로 몸을 살짝 숙이고, 자신들이 아직 보지 못하는 무언가에 맞서, 서로를 감싸안은 모습으로 미소를 머금고 있다. - P45

휴스턴은 예전의 휴스턴이 아니다. 나는 이곳에 오래 살아서 오일 붐을 기억하고 있다. 소도시에 지나지 않았던 우리 마을은 하룻밤 사이에 도시가 됐고, 마을은 예전의 것들을 너무 쉽게 잃어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더이상 그 시절을 낭만적으로, 일부 사람들이 하는 식으로는 바라보지 않지만, 이따금은 그 시절이, 대기에 흐르던 그 에너지와 그때의 낙관과 희망이 그립다. 내가 좋아한 것은 단지 돈만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세상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바에 앉아 있으면, 누군가 걸어들어 와, 당신 눈빛이 마음에 든다며 백 달러짜리 지폐를 내밀 수도 있었다. 그다음날 밤에는 누군가에게 백 달러짜리 지폐를 건네는 사람이 당신이 될 수도 있었다. - P51

"당신은 자연스러워." 그날 밤 그녀는 내게 말했다. "당신은 진짜야."
"비현실적이지 않다는 뜻인가?"
"비현실적이기도 해. 좋은 의미로." - P53

일 년 후 우리는 같이 살게 되었고, 다시 일 년 후 우리는 결혼을 했다. "나는 다시는 결혼하지 않을 거야." 결혼식 날 밤 그녀가 내게 말했다. "그러니까 그 점을 분명히 알아둬. 왜냐하면, 좋든 싫든, 당신은 이제 내게서 떨어질 수 없으니까."
"그거 협박이야, 약속이야?"
"둘 다지." - P54

"있잖아, 폴." 그녀가 말한다. "가끔씩은 긴장을 푸는 것도 괜찮아. 그건 죄악이 아니잖아."
"뭐가 죄악이 아니야?"
"행복한 거." 그녀가 내 손을 잡으며 말한다. "그건 죄악이 아니야." - P57

대학 때 이후로는 대마초를 피워보지 않았는데, 부엌 식탁에서 대마초를 얇게 펴 마는 동안 아마도 캐런은 평생 이런 것을 피워본 적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녀가 내 행동을 못 마땅하게 여기리라 생각하며 수영장으로 나가 불을 켠다. 그런 다음 천천히 물속으로 들어가 담뱃불을 붙이고, 잠시 후 수면 위에 반듯이 누워, 별들 아래서 유유히 떠다닌다. 중력 없이, 짝도 없이, 길을 잃고서. - P66

나는 방문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다. 나는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자기들 삶의 어떤 시기에는 이런 경험을 할 거라고 상상해본다. 나는 나의 아버지가 내 방문 앞에 서서, 내가 한 번도 데이트해보지 못한 온갖 여자아이들에 대해서 친구들과 떠들어대는 소리를 듣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 P68

대신, 내 아내는 우울해 보인다. 그녀를 지켜보고 있노라니, 나는 그녀가 자기 자신의 삶에 너무나 낙담하고, 지치고, 모든 환상이 깨진 나머지, 다른 누구에게 무엇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P72

나는 마흔여섯의 나이에 대마초를 피우는 습관이 들어버릴 가능성에 대해 생각한다. 이것은 희극적이며, 굉장히, 정말 굉장히 슬프게 느껴지는 일이다.
나는 거울에 비친 나를 본다. 뭔가가 잘못되었어! 나는 큰 소리로 말한다. - P76

"내 인생은 끝났어요." 탤벗이 말한다. "나는 열여덟 살인데 내 인생은 끝났어요."
"스탠퍼드 말고도 학교는 많아."
"나한테는 없어요."
지금 이 순간 나의 의식 상태가 변질돼 있지 않다면, 나는 뭔가 친절한 말을, 이 아이를 위로해줄 만한 말을 해줄 수 있을지 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탤벗을 보며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렇지만 언제든지 편입할 수 있잖아. 줄곧 그런 제도가 있었어."
"네. 아마도요." - P79

나는 그가 내 대답에 보여주는 관심이 고마웠고 내가 말을 할 때마다 차분하면서도 사려 깊은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고마웠다. 그는 나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각별히 노력하는 듯 보였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아래쪽을 흘끗 내려다보는 살짝 불안한 습관이 이상하게도 내 자신감을 북돋워주었다. 강의실 밖에서는 얘기라곤 나눠본 적이 없었지만, 나는 그와 함께 있다는 사실로 인해 이미 핏속부터 편안하고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버지의 친구분들, 농담을 주고받기 쉬운 나이 많은 남자들, 젊고 매력적인 여자를 앞에 두고 부끄러워하는 모습 때문에 무해한 존재가 되는 그런 남자들과 있을 때 느껴지는 따스함이었다. - P90

"자만심은 물리학자에게 있어 가장 큰 방해 요인이지요." […] "뭔가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발견의 기회를 없애버리게 되니까요." - P92

그에게 얘기를 하는 동안 나는 가슴속에서 따뜻한 일렁임을 느꼈다. 그것은 내 또래 남자들과 있을 때 느껴지는 열뜬 흥분과는 또다른 종류의 감정, 좀더 부드럽고 보다 포괄적인 온기였다. 나는 그가 내게 숨김없이 질문하는 것과 내가 이야기할 때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그는 나를, 내가 상상하기에 자신의 동료를 대할 것 같은 태도로, 성인으로, 대등한 사람으로 대했다. - P93

나이가 들면 역설에 환멸을 느끼기가 쉬워지지요, 라고 그는 말했다. 젊어서는 도전뿐이에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저 피곤해지거든요. 모든 물리학자에게, 자기를 넘어서는 수준의 사고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때가 와요, 자기가 절대 이해하지 못 할 수준, 하고 그는 말했다.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들도, 보어조차도, 그 지점에 도달했지요, 하고 그는 말했다. - P94

나는 팔꿈치를 괴고 누워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순간이면 그의 얼굴은 언제나 더없이 온화하고 순해 보였고, 그러면 나는, 기숙사 방의 희미한 불빛 속에서, 그가 언젠가 내가 결혼할 남자가 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느낌과는 아주 다른 감정이다. 나는 내가 그를 사랑하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잠든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남은 생을 그와 함께 보낼 수 있으리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와 함께 가정을 일구고 그의 곁에서 늙어갈 수 있었다. 그와 함께라면 그런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리란 것을, 불행하지 않을 수 있으리란 것을, 나는 알았다. - P99

그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고, 나와 함께 있는데도 취할 만큼 나를 믿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봐야 단둘이 보낸 두번째 시간이었고, 우리의 공식적인 첫 데이트였는데도,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나 빨리 편안하고 평온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마치 평생토록 어떤 깊은 방식으로 그를 알아온 것 같았다. 와인을 마시고 웃으면서 조그만 부엌에서 그의 곁에 앉아 있을 때, 내 마음이 은밀하게 떨렸던 것도 기억하고 있다. - P101

나는 어떤 일도, 아무리 우스꽝스럽고 부끄러운 일이어도, 모두 다 말할 수 있었다. 우리가 그 아파트에서 나누는 모든 말들은 그 바깥의 세상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을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소녀 시절 품었던 환상, 아버지의 친구분들이나 학교 선생님들—그러니까 항상 나이가 많은 남자들—이 연루된 환상에 대해 고백할 때면 로버트는 미소를 짓곤 했다. 나는 그때 이미 내 안에 어떤 충동이 있었고, 그런 상사 편의 열병을 고백함으로써, 그에게 뭔가를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이용할 수도 있었을 그 기회를 잡아 이용하지 않았다. 대신, 나의 소녀 시절의 성적 로망을 듣고 그저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 P106

그것이 로버트가 내게 가장 가까이 다가온 순간이었다. 나는 그에게 그 이상 나아갈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희로써 의도된 종류의 희롱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단지, 자기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일부는 그가 그 순간에 뭔가를—손을 잡거나 키스를 하거나—해주길 바랐지만, 그가 나를 안으려는 의도를 품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사실 나는 로버트가 우리 관계에 대해 나처럼 죄의식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우정을 다음 단계로 가져가는 것에 대한 그의 양면적인 감정은, 그로 인해 훗날 내가 자신에게 분개할지도 모른다는 깊은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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