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저녁 식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거고 나의 삶은 마침내 평범해지리라고 정말로, 진지하게 믿었다. 하지만 시칠리아의 저택에서부터 제노바의 오두막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일 텐데, 오르시니 집안에서도 식사 자리는 역시 단순한 식사 자리 이상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무대였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비극을 익살극처럼 연기했다. 이야기가 심각해질수록, 더 우스꽝스러워졌다. - P562
「말에는 의미가 있어, 미모. 명칭을 불러 주는 건 그걸 이해 한다는 거야. 〈바람이 부네〉, 그건 아무 의미도 없다고. 죽음을 몰고 오는 바람인가? 파종의 바람인가? 수확하기도 전에 식물을 얼려 죽이거나 태워 죽이는 바람인가? 만약 말들에 의미가 없다면 내가 어떤 의원 노릇을 할까? 다른 의원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겠지.」 - P566
엠마누엘레는 하나의 관념이었다. 조금은 나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어긋남, 비정상이랄까. 혹은 아직 도래한 적 없는 정상성의 표현, 다른 세상을 알리는 선구자로서, 그 세상에서는 엠마누엘레와 같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그들이 저지르는 나쁜 짓이라고는 지나치게 열렬하게 상대방을 끌어안는 것 뿐이다. 그리고 하나의 관념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 P571
17시 56분 기차를 타고 이틀 뒤 피렌체에 도착했다. 치오가 나를 팔아넘겼을 때와 거의 같은 시각. 이제는 겨울이 아니라 봄이기는 했지만, 기차에서 내리면서 받은 인상은 그때와 완전히 달랐다. 도시는 사람을 농락하며 수줍음을 가장했다. 자신을 내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척하면서도 황혼, 살짝 열린 문 등 미묘한 표시를 통해 자신이 품고 있는 거리로 섞여 들라고 권했다. 나는 피렌체를 사랑했다. 프랑스어로는 도시와 여자 사이에 철자 하나 차이밖에 없다. - P579
마을 사람들의 약식 재판은 적어도 한 가지의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강도들의 급습이 그치면서 길이 다시 안전해졌다. 아마도 제거당한 자들이 진짜 범죄자였던 모양이었다. 혹은 이처럼 평온한 고장에서는 몹시 뜻밖이었던, 그런 행위를 저지른 자들에게조차 뜻밖이었던 폭력성에 나머지 강도들이 그런 짓을 그만두었던가. - P582
산피에트로 델레 라크리메 성당의 둥근 천장에 균열이 생긴 뒤로 후작은 더는 전과 같지 않았다. 일요일 미사에 데려다 놓으면 매번 긴 비명을 지르고 아직 유일하게 움직이는 한 쪽 팔을 지옥과 천국 사이가 담긴 손상된 천장화를 향해 내두르며 휠체어에서 버르적거렸다. 그는 거기에서 무엇을 보는가? 자신을 기다리는 여행? 예전 젊었던 시절에 수도 없이 응시했던 그 말끔했던 둥근 천장과 그곳의 프레스코화? 한없이 긴 성사를 보는 동안 꾸벅꾸벅 졸고 후작 부인과 결혼하고 아이들에게 세례를 주고 장남의 장례를 치르는 그를 내려다봤던 그 말끔했던 둥근 천정과 그곳의 프레스코화? 길게 뻗어 나간 시커먼 균열 때문에 볼썽사납게 된 그 둥근 천장과 그곳의 프레스코화? - P584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순진하지 않았고, 고작 70년쯤 된 국가가 통합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또한 이런저런 조직들이 그러한 실망을 이용하기 위해 생겨난다는 것도. 전쟁과 전후는 그런 조직들에게 엄청난 부를 쌓을 수많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도. - P591
「나는 교회를 믿어, 그 말이 그 말이긴 하지만. 정권이나 독재자와는 반대로 교회는 사라지지 않아.」 「그거야 교회의 약속이 지켜졌는지 아닌지를 말해 주러 다시 살아 돌아온 사람이 이제껏 한 명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너희가 이걸 알까? 미치광이들 천지인 너희 가족은 정말이지 신물이 나는 것 이상이야.」 - P592
「독서할 때 안경이 필요한지는 몰랐네.」 내가 안경을 들어 올리면서 한마디 했다. 비올라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내 얼굴을 살피기만 했다. 나는 책 겉표지 위에 안경을 다시 내려 놓았는데, 가족의 서재에서 나온 그 책은 가죽 장정에 영어로 된 제목이 금박으로 박혀 있었다. 존 로크의 『인간 오성론』. 램프가 방 안의 유일한 불빛이었고, 비올라는 그 아래서 책을 읽고 있었다. 어둠이 벽을 타고 기어오르며 녹색과 종이꽃들과 커튼의 장식 술을 슬금슬금 잡아먹었는데, 그 번잡스레 화려한 세계는 어느 모로 봐도 비올라와 닮지 않았고, 내가 이 방에 요란하게 처음 뛰어들었던 이래로 전혀 변화가 없었다. - P593
「빌어먹을, 넌 정상적일 순 없는 거야? 네 평생 단 한 번만이라도, 그저 정상적인 거 말이야.」 […] 「아니야, 미모. 그 말이 맞아. 내 평생, 정상적이기 위해서 네가 필요했어. 그런 노력을 할 때 넌 내 구심점 노릇을 하니까. 그래서 네가 늘 유쾌한 존재일 수는 없는 거지. 하지만 내 안에는 아무리 너라도 절대 고치지 못할 비정상성이 있어. 그건 내가 여자이기 때문이고 그 점에 관한 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지.」 - P594
「떠난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최악의 폭력, 그건 관습이지. 나 같은 여자, 똑똑한 여자, 난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해, 그런 여자가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관습. 그런 말을 하도 듣다 보니 그들은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다고, 뭔가 비밀이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어. 그 유일한 비밀이라는 건 그들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거더라. 내 오빠들, 그리고 감발레네 사람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이 보호하려고 애쓰는 건 바로 그거야.」 - P595
「그 누구도 나에 대해 아무 짓도 할 수 없어. 난 모든 걸 겪 었어. 누가 나를 가장 아프게 한 줄 알아? 나야. 나도 그들 식으로 해보려고 애쓰다가, 그들이 옳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다가. 내가 지붕에서 뛰어내렸을 때, 미모, 내 추락은 고작 몇 초가 아니었어. 그건 26년 동안 계속됐지. 이제야 그게 끝나는 거야.」 - P595
고작 한 시간 전만 해도 나의 분노는 화강암 덩어리였다. 검게 번들거리며 모가 난. 하지만 그것은 환영으로, 비올라가 거는 그런 마법에 속했다. 우리가 피에트 라에서 멀어질수록 주술은 약해져 나의 화강암 덩어리는 진짜 모습으로, 단순한 모래 더미인 걸로 드러났다. 분노를 붙잡아 두려고 갖은 애를 써봤자 허사였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갔다. - P599
고원은 그날 아침 그 어느 때 보다도 장밋빛이었는데, 마치 부서지고 조각이 난 돌이 마지막 숨 대신 그리도 오랫동안 품고 있던 색채를 흘려보내는 듯 했다. - P607
메티가 작품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그는 마리아의 얼굴을, 내가 알았던 그 무한한 온화함을 쓰다듬었고, 그러고는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더니, 천천히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왼손이 존재하지 않는 오른팔을 향해 움직였지만, 좌절될 행위였다. 「털고 일어설 수 없는 부재들이 있지.」 - P612
「잘 들어라. 조각한다는 건 아주 간단한 거야. 우리 모두, 너와 나 그리고 이 도시 그리고 나라 전체와 관련된 이야기, 훼손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축소할 수 없는 그 이야기에 가닿을 때까지 켜켜이 덮인 사소한 이야기나 일화들을,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 내는 거란다. 그 이야기에 가닿은 바로 그 순간 돌을 쪼는 일을 멈춰야만 해. 이해하겠니?」 - P613
어머니는 나의 뺨에 손을 갖다 대면서 중얼거렸다. 「나의 큰아이.」 - P614
그리스도를 제대로 보아야만 한다. 비올라를 보아야만 한다. 나는 그날 폐허에서 봤던 그녀를, 살짝 어긋난 다리와 눕혀 놓았기에 더욱더 납작해져 존재하지 않는 가슴과 얼굴에 흘러내린 머리카락까지 망가진 모습 그대로 숭고한 육신을 조각했다. 하지만 거기 누워 있는 건 아무리 양성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분명 여자로서, 여자의 쇄골과 여자의 가슴과 여자의 엉덩이를 지니고 있다. 눈이 남자를 기대하면 남자가 보이겠지만, 감상자의 온 감각이 담아 내는 것은 눈에 거의 보이지 않고 은밀한 만큼 더욱더 폭발적인 여성성, 맹신자들의 박해로 단절되었다가 분출하는 여성성이다. 어떤 관객들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만다. 극도로 민감한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격렬한 반응이 터져 나오고, 그러한 반응은 이해하지 못한 자들, 결국 모두에게서 엉뚱하고 설명할 길 없는 욕망으로까지 나아간다. 그들은 악마와 과학과 기타 등등을 찾아다녔지만, 사실 비올라만 존재 했다. 본의 아니게, 베드로 성인도 울고 갈 정도로 나 스스로 보기 좋게 배신했고 부인했던 비올라. - P616
하지만 봐라. 만약 그리스도가 고통이라면, 그렇다면 당신들에게는 아무리 고깝더라도 그리스도는 여자가 아니겠는가. - P617
그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알고 싶다. 문턱을 넘어서기, 마지막으로 내쉴 숨. 시작한 문장을 미처 맺지 못하고 떠나게 되는 걸까? 허공에 걸린 말들, 그러고는 더는 아무것도 없고 아름다운 침묵, 뒤따르는 안도? 아니면 내 육신으로부터 나의 영혼을 빼내어 가는 동안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하는 걸까? - P618
나는 나의 삶을, 겁쟁이와 배신자와 예술가의 삶을 사랑했고, 비올라가 내게 가르쳐 줬듯이 우리는 사랑하는 어떤 것을 돌아보지 않고서는 그것과 이별하지 않는 법이다. - P618
나중에 그는 피에타를 보러 다시 돌아갈 거다. 그러고 나서도 이해할 때까지 보고 또 보리라. 아마도 조각가가 떠나기 전에 그에게 하려던 말이 그것일지도 모른다. 보고 또 봐라. 어쩌면 사소한 것을, 정말로 별것 아니지만 모이면 혁명을 만들어 내는 그런 작은 뭔가를 놓쳤을지도 몰랐다. - P620
시계추의 마지막 움직임, 마지막 째깍째깍, 추시계가 곧 멈추려고 한다. 멀리서 알프스산맥이 지평선에서부터 떨어져 나온다. 아직 어두운 하늘에서는 빛나는 한 점이 께느른하게 궤도를 그린다. - P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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