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피에트라달바의 뭔가를, 8월이니만큼 만약 창문이 열려 있다면 가지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 소리라도 포착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귀를 쫑긋 세운 채 기다렸다. 하지만 종소리, 차임벨 소리, 포스타가(街)에서 경적을 울려 대는 자동차 소리 등 바깥의 소음이 나를 로마에 굳건히 묶어 두었다. 부스 안에서 사람들의, 미끄러운 대리석 바닥에서 우아하게 춤추듯 움직이는 속인과 성직자의 오고 감을 관찰하고 있자니 숨이 막혀 왔고, 수화기에 갖다 댄 귀가 축축해 졌다. - P346
「여보세요?」 살짝 쉰 듯하고 어쩌면 조금 더 낮은 듯하나, 어쨌든 그 목소리에 비올라가 통째로 들어 있어서, 피에트라달바가 여름의 열기와 태양 아래에서 지글거리는 들판의 향기를 몰고 전화 부스를 덮쳤다. 나는 부스 벽을 따라 몸을 미끄러뜨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비올라, 나야.」 「알아.」 송진과 강렬한 기쁨과 두려움으로 묵직한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 P347
여러 차례, 어머니를 보러 갈 계획을 세웠다. 그러고는 오만가지 그럴듯한 이유를 대고서 계속 그 계획을 미뤘는데, 일이 있어서, 거리가 멀어서, 그러다가 결국엔 이런 변명까지 했다. 모든 비용을 다 대주면서 나 있는 곳으로 오라고 제안까지 하지 않았던가. 진짜 이유는 빼놓은 온갖 그럴듯한 이유. 어머니가 우리 사이에 만들어 놓은 그 구렁, 1916년 이래로 삐죽삐죽한 가장자리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그 갈라진 땅을 건너기 위한 첫걸음을 먼저 내디뎌야 하는 건 어머니라는 생각이었다. - P352
피렌체에서 보낸 세월을 후회한다고 주장할 수 있으리라. 로마에서 보낸 세월은 더더욱 그러하다고. 내 영혼의 짐을 덜고, 스틱스강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 능숙한 늙은 사공 카론을 구슬려서 보다 편안한 저승길을 보장받기 위해 그런 척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나무가 나이테를 떨쳐 낼 수 없듯이, 나는 내 과거를 떨쳐 낼 수 없다. 피렌체와 로마는 여기, 기우는 햇살을 받으며 네 명의 수도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열에 들떠 투덜거리는 이 몸뚱어리 안에 들어 있다. 피렌체와 로마는 이 안에 있고, 나의 심장이나 신장 혹은 보나 마나 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을 간이나 마찬가지로 뽑아낼 수가 없다. - P353
나는 평생을 본능에 따라 행동해 왔다. 그러니까 이성이 내 삶의 훌륭한 가늠자는 아니었다. 나는 있어야 할 곳에 있었고, 중요한 것은 그게 전부였다. - P361
마지막 만남으로부터 흘러간 8년이라는 긴 세월. 비올라는 더는 청소년이 아니었고 완전한 여자였다. 얼굴 윤곽이 더 확실해졌다. 그녀를 창조한 조물주의 둥근 끌이 몇 번 더 오가면서 아직도 드러나게 될 비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조차 없이, 비올라의 열여섯 살 적 얼굴이 완성된 형태에 도달한 거라고 맹세할 뻔했다. 비올라는 조각 교본이었고, 그런 만큼 멀리 떨어져서 지낸 8년 세월을 더욱더 후회했다. 한 해 한 해 드러나는 그러한 변화를 지켜보고, 어느 날 변화를 조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분석해 뒀더라면 좋았을 텐데. - P362
비올라를 위해 조각했던 곰은 여전히 분수대 근처에 군림하고 있었다. 그 앞을 지나가면서 열여섯 살 미모의 선택 몇 가지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움직임은 생생히 드러났지만 과장됐다. 이제 나는 더 적게 보여 주면서 더 풍부하게 말할 수 있었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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