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게 그랬듯이 내 친구들에게도 피렌체 시절을 미화해서 소개했다. 그러니까 하나도 아프지 않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발치사 저리 가라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그 두 해를 담은 사진에서 비차로와 사라와 다른 친구들을 긁어냈다. 그들에 대한 기억을 잘라 내면서 내가 상처 입히고 있는 건 나 자신임을 이해하지 못한 채 가벼운 자책감만 느꼈다. 나는 열여덟 살이었고, 열여덟 살에는 그 누구도 자신의 실제 모습과 닮기를 원하지 않는 법이다. - P317

나는 거울을 좋아하지 않았고—내 외모 때문에—면도를 할 때조차도 가능한 한 거울과는 덜 마주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옳았다. 나는 잘 생겨서, 뜻밖에도 내 용모는 균형 잡힌 반듯함을 보였으며 눈에는 어머니가 내게 물려준 그 빛깔이, 거의 보랏빛 도는 푸른빛이 담겼다. 강인한 남자의 얼굴이었다. 아버지에게서 체념을 배우지 못한 남자의 얼굴. 그것은 또한 우스꽝스러운 남자의 얼굴이기도 했으니, 체념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고, 우리의 꿈들을 살해하는 수많은 죽음을 체념이 감내하게 하지 않는가. 뼛속까지 비에 젖고 험상궂은 모습으로, 오래전부터 시끄럽게 알려 대는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나머지 이제는 그러한 패배를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으로 남은 남자. 나는 순진하지 않았다. - P324

나는 우리의 이야기에 이런 빈 구멍들을 만들어 냈다고 비올라를 원망했다. 티끌 한 톨 지나갈 틈 없을 정도로 우리 사이가 가까웠는데, 나를 밀쳐 내고 멀리 보내 버렸다고, 나는 그녀를 원망했고, 그렇다는 것을 그녀에게 이해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떠나는 것 말고 다른 수단을 찾아내지 못했다. […] 비올라는 나의 그림자가 되었다. 나는 비올라에게 욕하고 격노했고, 그 애도 그곳에서, 겨울의 차갑고 짙은 안개가 밀려들면 오렌지에 서리가 내리는 그녀의 고원에서 똑같이 그러고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똑같은 격분한 몸짓, 똑같은 쓸데없는 비난. 우리는 둘 다 옳았고, 우리는 누가 누구의 거울인지 더는 알지 못했다. 스스로를 탓할수록 내가 스스로를 탓하게끔 만든 비올라를 더더욱 원망했다. 그 애가 사과하지 않는 한 다시 보지 않을 거라고 맹세했다. 착실한 그림자로서, 그 애도 그쪽에서 나만큼 그러고 있을 터였고,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서로의 삶에서 빠져나왔다. 이 끔찍한 악순환, 이 희비극적 우로보로스가 그 뒤로 이어진 여러 해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P330

나는 그 표정의 강렬함을 포착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나 역시 소중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것을 예전에 본 적이 있으니까. - P335

드디어 나는 탐나는 존재가 되었다. 사람들은 내게 침을 뱉으며 무시했고, 나는 일거리를 구하기 위해 평생 간청해야만 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꼭 소유해야만 하는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새로운 말을 하나 배웠기 때문이었다. 아니요. 이 세 음절의 말이 갖는 권력은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내가 거절할수록, 심지어 차갑게 거절할수록, 사람들은 나를 오르시니 가문의 조각가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나의, 즉 오르시니 가문의 조각가가 만드는 작품을 더더욱 원했다. - P336

갑자기 모든 것이 전과 같이 되어 버렸다. 우리의 서약, 맞잡은 손, 불타는 화주를 조금씩 할짝거리듯이 차가운 공기를 받아들이던 그 겨울밤들, 그 밖의 모든 것. - P342

나는 곧 스물 한 살이 될 터였고, 이는 이전이 더 좋았다고 생각할 나이는 아니었다. 나중에 가서야 그리워하게 될 그 이전을 지금 살아 가고 있었다. - P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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