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 선로를 건너온 어떤 남자가 다가왔다. 채 마흔 살이 안 된 아직 젊은 남자였지만, 나이보다 몇십 년은 더 되는 세월이 눈 속에 켜켜이 쌓였다. 이전에는 옷소매 안에 들어 있었을 튼튼하고 건강한 팔뚝은 사라지고 오른쪽 소매가 텅 비어 덜렁거렸다. 그는 전선에서 돌아왔고, 전쟁은 그의 육신에, 그 나이대의 남자에게는 뜻밖이라고 할 주름 속에, 그가 깨어 있을 때조차 몰려와 소용돌이치면서 그가 아주 미세하게라도 목을 움츠리게 만드는 악몽들 속에 깊이 박혔다. - P233

우리는 추위를 뚫고서 전차들과 애처로운 눈빛의 말이 끄는 마차들 사이로 요리조리 피해 걸으며 도시를 가로질렀다. 건물 하나하나가, 골목 하나하나가, 건물들이 일렬로 들어선 거리 하나하나가 나를 빨아들이는 바람에 갈지자가 된 나의 걸음걸이에 메티의 나무라는 시선이 꽂혔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열 가지의 아름다움의 형식과 열 가지의 서로 다른 서사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교차로 하나하나는 매번 쾌락의 포기였다. 도시가 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고 이제 나를 떠나지 않으리라. 로마의 위대함도, 베네치아의 마법도, 혹은 나폴리의 격정도 절대로 피렌체를 잊게 하지 못했다. 그곳은 이탈리아의 도시들 가운데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아니라 그냥 가장 아름다운 도시였다. 비올라는 더더욱. - P234

절단 작업, 그것은 지옥, 배의 화물창과 마찬가지여서 가장 보람 없는 작업이었다. 우리는 건물 전면에 사용될 대리석 외장재들을 다시 자르고 짜 맞췄다. 가끔은, 채석장에서 작업이 미리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조각에 쓰일 원자재들을 대강 다듬기도 했다. 메티는 그 지역의 가장 근사한 계약 중 하나를, 그러니까 두오모 성당 일부의 개보수 작업을 막 따낸 참이었다. 일이 너무 많아 그는 외지에서까지 사람을 고용했다. 구내식당에서는 정예 조각가들, 음식을 놓고 기꺼이 다툼을 벌이는 쾌활한 그들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먼지를 뒤집어쓰고 아무 말 없이 각자의 접시에 코를 박고 있는 〈절단 작업자들〉 사이의 대조가 선명했다. 조각가들이 아무리 오만하더라도, 실제로 오만했지만, 우리에게 시비를 걸려고 들지는 않았다. 절단 작업장은 거친 사내들, 전과자, 탈영병, 징집 회피자 등의 소굴이었고, 세상은 그런 모든 것을 하찮은 비열함이라고 여겼지만 사실 그런 비열함을 안고 살자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법이었으니까. - P240

「중요한 건 네가 무엇을 조각하는가가 아니야. 왜 그것을 하는가이지.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봤니? 그게 뭘까. 조각한다는 게? 〈형체를 부여하기 위해 돌을 쫀다〉라는 답은 하지 마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잖니.」
스스로에게 단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던 질문에 대한 답은 알 수 없었고, 나는 아는 척하지도 않았다. 메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 조각을 한다는 게 뭔지 깨닫는 날, 넌 단순한 분수대만으로도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게 할 거다. 그동안, 미모, 충고 하나 하지. 인내해라. 이 강, 변함없이 고요한 이 강처럼 말이야. 이 강, 아르노 강이 화를 낸다고 생각하니?」 - P258

술이 잔뜩 오르면 그들 가운데 이 사람 혹은 저 사람이 장엄하게 일어서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그러면 좌중은 조용해졌고, 드높이 솟아오른 오페라 아리아가 귀에 들려오면 우리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남자들은 노래를 불렀는데, 해야 할 말이 있어서였고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서였다. 그런 밤이면, 바닥이 끈적이고 해적판 카루소의 노래에 취한 그 장소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대였다. 그곳의 팔리아치오들은 진정 미치광이들이었고 돈 조반니들은 말할 것도 없었으니, 노래하는 사람들 전부가 쉼 없이 사랑하고 살인을 저질렀으니까. - P260

나는 그에게 고갯짓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그 사람도 나도 감정의 분출을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는 결핍, 조여 맨 허리 띠와 함께 태어난 사람들로, 이런 환경에서는 감정조차 아끼기 마련이었다. - P270

우리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눴고, 으레 그러듯이 다시 보자는 약속을 했고, 그러고 나서 나는 역사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이 벽 저 벽 부딪혀 가며 쌀쌀한 밤공기 속을 배회했다. 미래가 더는 그렇게 암울해 보이지 않았다. 술에 취한 자 특유의 낙관주의가 불안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새벽이 속살대기 마련인 저주에 재갈을 물렸다. - P271

그 순간 익숙한 향내를, 빵 반죽과 장미 와 땀이 뒤섞인 내음을 맡았다.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고, 내가 엄마를 보지 못해도 자신은 나를 보고 있다고 속삭였다. 정향, 제라늄, 백단, 에델바이스, 아니스, 걱정과 슬픔 등 다른 향내도, 격노한 수많은 어머니, 혼령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어머니들의 향내도 떠돌았는데, 자신의 새끼가 학대당하는 일을 겪었던 그들이 내 곁으로 왔다. 잠시 뒤 의식을 되찾은 나는 물에 빠졌던 사람처럼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나는 벽에 기대어 앉았다.
[…]
그래서 나는 내가 세상에 도착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이 가르쳐 줬던 가장 소중한 행위를 했다. 나는 일어섰고, 걸었다. - P272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쉰 살인데도 얼굴에는 태양과 추위와 다양한 방식의 학대에 의해 1백 년 치 모욕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웃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르지 않는 기쁨의 샘에서 길어 올려 신선했다. - P274

「태어난 뒤로 우리가 하는 단 하나의 일이 바로 죽는 거란다. 아니면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그 피할 수 없는 순간을 늦추려고 하거나. 나의 고객들은 모두 같은 이유로 온단다, 미모. 표현 방식이야 제각각일지라도, 그들 모두 겁에 질렸기 때문이지. 나는 카드를 뽑고 위로할 말들을 지어내. 그들 모두 올 때보다는 조금 더 고개를 쳐들고 돌아가고,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조금은 덜 두려워해. 그들은 그걸 믿으니까. 그게 중요한 거야.」 - P281

「네 차례가 되면, 물론 그때가 아직 멀었기를 바라지만, 내 말을 믿어, 너도 겁이 날 거야. 누구나 그러듯이, 겁이 날 거라고.」 - P282

그 시절에는 누군가를 신뢰하기가 힘들었지만, 특이한 명예 코드를 지닌 그 무뢰한들 사이에서만큼 편안한 기분이 들었던 적은 이제껏 없었다. 당신이 파시스트든 볼셰비키든, 가톨릭교도이든 무신론자이든,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간경화에 딸기코에 불콰해진 얼굴의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었고, 밤이 출렁이는 한 새벽까지 서로를 붙잡고 그 시절의 풍랑에서 피신해 있었다. - P283

한 시간 뒤, 우리는 거리에 있었다. 눈은 이미 그쳤다. 달빛 아래 도시가 대낮처럼 반짝였다. 은밀한 슬픔으로 뱃속이 따끔거렸고, 우리의 걱정 없던 시절에서 솟아난 유령이 조롱하듯 자신의 쇠사슬을 흔들어 댔다. - P293

그 늙은 개자식이 왜 그런 행동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숙취와 숙취 사이에 솟구치는 딸꾹질처럼 올라온 인정의 찌꺼기일지도. 그런데 그를 닮은 주제에 그를 비난하다니, 나는 누구인가? - P305

바로 어둠 속에서 흥분이 끓어오르는 법이니까.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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