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아는 이 여행 기념품을 폐기하며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끔찍하군. 이전에 알던 인간들 못지않은 인간들이야. 이 인간들과 헤어지고 나면, 못지않은 또 다른 인간들이 등장하겠지. 별 수 없어. 어쩌겠느냐고. 내가 가는 어느 곳이나 또 다른 샤를로트 플루며 라베르슈며 알돈자며 한때는 잘생긴 청년이었을 역겨운 늙은 이들이 줄줄이 등장할 테니 말이야. 견디기 힘들고, 힘들고, 또 힘든 인간들···‘ - P140
‘아니, 저 커튼도 손 두 개가 들어갈 만큼 찢어졌잖아···. 이건 빙산의 일각일 거야···. 대체 난 무슨 생각으로 그리 오랫동안 집을 비운 걸까? 대체 누구의 영광을 위해서?··· 마치 이곳에선 조용히 슬픔을 삭일 수 없다는 듯이 말이야.‘ - P141
어깨와 가슴을 물 밖으로 드러내어 그 어느 때보다 분수의 조각상 같아 보였던 그녀는 손가락 끝에 매달린 젖은 우편엽서를 흔들었다. "로즈, 로즈! 셰리가··· 플루 씨가 도망쳤대! 젊은 아내를 버려두고서!" 로즈는 대답했다. "저는 놀랍지도 않네요. 이혼이 결혼보다 더 즐거울 걸요. 결혼은 모두가 악마를 짊어지고 사는 거잖아요···." 그날, 거북한 키들거림이 종일토록 레아를 따라다녔다. "아! 이런 악마 같은 녀석! 아! 이런 못된 놈이 있나! 안 그래요?···" 그녀는 낮게 쿡쿡대며 고개를 설설거렸다. 마치 아들이 처음으로 외박한 것을 알게 된 엄마처럼. - P146
그녀는 어깨를 풀썩 추어올리며 생각했다. ‘셰리를 한 번은 구해줘도 두 번은 아니지! 그녀는 손톱에 윤을 내며 광이 죽은 반지에 ‘후‘ 입김을 내뿜는가 하면, 붉은 염색이 제대로 되지 않아 뿌리 쪽이 희끗희끗한 머리칼을 거울에 바짝 대고 들여다보다가 공책에 몇 줄 끼적거리기도 했다. 그녀의 동작은 재빨랐고 평소보다 덜 차분했다. 그녀가 아주 잘 아는 은근한 불안의 침투, 그녀가 - 슬픈 기억까지 부인하면서 - 정신적 멀미라 부르는 것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 P147
‘이런 여자가 늙은이의 품에서 생을 마감할 수는 없지. 이런 여자는 시들시들한 인간한테 손이나 입을 더럽힐 일이 절대 없는 거라고!··· 그래, 젊은 피만 원하는 ‘여자 흡혈귀‘, 그게 바로 나이고 여기 있어···.‘ […] ‘그러니까 그 젊은 피들이 외려 나한테 감사해야지! 대체 얼마나 많은 그들이 내 덕에 건강하고 아름다워지고, 슬플 땐 건전하게 이 겨내고, 감기에 걸리면 레드풀로 회복하고, 무성의하지 않고 단조롭지 않게 사랑을 나누는 습관까지 배게 된 거냐고?··· 그런데 난 이제 침대에서 허전하지 않기 위해 만날 수 있는 남자가 나이 든···‘ - P1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