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서는 잘생긴 사람이 버스에서 내리면 약 30킬로미터 이내의 모든 여자들이 손톱을 날카롭게 다듬는다. 그리고 할리우드 업계의 남자들은 예쁜 여자를 만나면 경계해야 마땅하다. 뭔가 일이 진행된 뒤에야 비로소 그 여자가 무엇을 좇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흉터를 지닌 이블린 로스 같은 여자들이 스크린테스트를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애당초 이 여자가 여기에는 왜 왔는지. - P379
풀라스키 카운티 법원의 배심원석(따지고 보면 미국의 어느 배심원석이든 상관없다)에는 갖가지 인간의 표본이 앉아 있다. 지식과 경험, 각자의 성격과 편견이 어우러진 조각보와 같다. 이렇게 제각각인 사람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납득시키기 위해 법률가는 논리나 과학뿐만 아니라 심지어 정의에도 의존할 수 없다. 사실 소크라테스도 자신이 무고하다고 아테네의 장로들을 설득하지 못했고, 갈릴레이도 교황을 설득하지 못했으며, 예수그리스도도 예루살렘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배심원을 설득하려면, 그들을 반드시 사건의 흐름 속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들이 단순히 시민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법원으로 불려온 것이 아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들은 참여하기 위해 소환되었다. 배심원 각자는 재판에서 맡은 역할을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당사자다. 사람들이 가족 모임이나, 친구와의 저녁 식사 자리나 교회 신도석에서 각자 맡은 역할을 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그런 자리에 함께 앉은 이웃들의 약점과 강점이 우리 자신의 것과 불가분의 관계임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알고 있다. - P385
어느 모로 보나 3월 15일은 완벽한 하루가 될 것 같았다. 9시에 이브가 거실 옆 작은 발코니에서 아침 식사를 할 때 기온은 21도. 날은 화창하고 재스민꽃도 활짝 피었다. 10시, 프렌티스가 전화해서 애프터눈티에 초대했다. 11시, 리비가 전화해서 좋은 소식이 있다며 축하하려고 체이슨스에 2인용 테이블을 예약했다고 말했다. 리비와 통화를 마친 직후에는 셀즈닉 인터내셔널 픽처스에 근무하는 마커스 벤튼이라는 사람이 전화해서,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 의논하고 싶은데 2시쯤 올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 일을 그는 그렇게 말했다. 공통의 관심사라고. 그런 전화를 받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그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이냐고 벤튼 씨에게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브는 프렌티스에게 차를 마시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고 묻지 않았다. 리비에게 체이슨스에서 축하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도 묻지 않았다. 따라서 벤튼 씨에게 셀즈닉 인터내셔널에서 의논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을 이유가 없었다. 깜짝 놀랄 기회를 왜 망치겠는가. - P399
얼마든지 계획과 포부의 증거가 될 수 있었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즐거운 일. ‘하지 말라‘가 아니라 ‘하라‘는 일들의 목록! 목록을 좌우하는 것은 생각이었다. - P403
사람의 성격이 항상 뭘 배우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야. 찰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람들은 자존심이 너무 강하거나, 고집이 너무 세거나, 수줍음이 너무 많아서 새로운 교훈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살다 보면 시련이나 고난을 통해 교훈을 얻을 때가 많은데, 그런 교훈을 얻기 위해 치르는 대가를 가볍게 보면 안 된다.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끝내 배우지 못하는 교훈 중 적어도 절반은 마음만 달라 먹으면 쉽사리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통찰력은 나이를 먹으면 자연히 생긴다. 그때는 새로운 교훈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찬란함을 받아들일 시간도 기운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대부분 스스로 만들어낸 무지 속에서 생을 마감할 운명이다. - P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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