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자기 아이들에게 부자나 마구 평평 돈 쓰는 사람, 혹은 외국 스타일의 이름을 붙여 줘. 가령 타이슨 알렉산더, 혹은 페이버나 에더 또는 윌퍼나 롬멜, 그리고 예이손 등등의 이름을 들 수 있어. 나는 사람들이 어디서 그런 이름을 가져오는지, 혹은 어떻게 그런 이름들을 만들어 내는지 몰라. 이것들, 그러니까 쓸모도 없고 바보 같은 외국 이름이나 억지로 만들어 낸 우스꽝스러운 이름은 가난한 삶 속에서 자기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남보다 낫게 만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야. - P10

나는 길에서 무언가 범상치 않은 것을 눈치챘어. 똑같이 생긴 집들이 죽 늘어선 새로운 동네들 사이로, 내 어릴 적의 낡고 오래된 작은 시골집 몇 채가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던 거야.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마술적인 장소인 ‘봄바이‘ 술집이 있었어. 한쪽으로 가솔린펌프, 그러니까 주유소가 있었어. 주유소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지만 술집은 그대로 남아 있었어. 대들보가 받치고 있는 지붕은 과거와 똑같았고, 회반죽 벽돌로 만든 흰 벽도 똑같았어. 가구는 지금의 것이었지만,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 그곳의 영혼은 계속 그 안에 있으니까. 나는 그것을 내 기억과 비교했는데, 그대로였어. ‘봄바이‘는 그대로였어. 내가 어린아이, 청년, 어른, 늙은이였더라도 항상 나였던 것처럼. 이제는 지겨워진 원한과 증오도 그대로였어. 증오와 원한은 기억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불평과 불만을 잊어버려. - P16

이봐, 알렉시스, 네가 나보다 나은 점이 하나 있어. 너는 젊고, 나는 곧 죽을 몸이라는 사실이 그것이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너는 내가 경험했던 행복을 절대로 경험할 수 없을 거야. 행복은 텔레비전과 카세트 라디오, 펑크광과 록 마니아, 그리고 축구 경기로 가득한 네 세상에서는 존재할 수 없거든. 인류가 텔레비전 앞에 오래도록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서 스물두 명의 유치한 어른들이 공을 차는 걸 지켜본다면, 희망은 없는 거야. 희망은 불쾌하게 만들고, 유감스럽게 하며, 사람들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해. 그렇게 사람들을 영원의 절벽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어서 지구에서 떠나게 하고 결코 못 돌아오게 하려고 해. - P17

인류가 살아가려면 신화와 거짓말이 필요해. 만약 누군가가 그대로 드러난 진실을 본다면, 아마도 자기 머리에 총을 쏴 버릴 거야. - P20

알렉시스는 지금이 아니라 내가 스무 살이었을 때, 그러니까 머나면 과거에 내게 왔어야만 했어. 그러나 수많은 세월이 지난 후 그날 밤, 멈춘 시계로 가득한 그 아파트에서 우리가 만나도록 계획되어 있었지. 내 말은 우리가 만나야만 했던 시간보다 한참 후의 일이란 소리야. 내 인생의 줄거리는 부조리한 책과 같아. 그러니까 먼저 나와야 할 것이 나중에 나오지. 이런 책을 쓴 사람은 내가 아니고, 그것은 이미 쓰여 있었어. 나는 단지 우유부단하게 한 장 한 장씩 실천에 옮기고 있었을 뿐이야. 나는 최소한 마지막 페이지라도 내 손으로 단숨에 써 내려 가고 싶다는 꿈을 꾸지만, 꿈은 꿈일 뿐이야. 아마 그것조차도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아. - P23

"이봐, 그건 음악도 아니고 그 어떤 것도 아니야. 흰 벽을 보는 법과 침묵을 듣는 법을 배우도록 해." - P24

내 오래된 친구인 루피노 호세 쿠에르보는 내가 젊은 시절에 자주 접했던 문법 학자야. 그는 100년 전에 이미 ‘해야만 한다‘와 ‘해야 했을 것이다라는 말은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거든. 앞의 말은 의무이지만, 뒤의 말은 의심이나 추측이기 때문이지. 여기서 두 개의 예를 들어보겠어. 하나는 이거야. "그의 형제들이 공공사업 계약으로 부자가 되고, 대통령도 그걸 허락하기에 그 역시도 도둑놈일 거야." 그러니까 나는 무언가를 단언하지 않지만, 그 무언가가 무엇이든지 내가 믿고 있다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어. 그리고 믿는 것으로 보이기에, 비방이나 중상모략 따위는 없지. - P28

그건 그렇고, 당신은 택시 운전사들이 빈 택시로 다니는데 왜 손님들을 그토록 함부로 대하는 것이냐고 따질지도 몰라. 그건 그래야만 일이 생기기 때문이야. 어느 현자는 "노동이 인류를 타락시킨다."라고 말했지. 그럼 버스로 다니는 건? 음악 소리를 듣지 않고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그렇다면 그것은 산소 없이 숨을 쉴 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 P31

바닥에 엎드리라고? 나 말이야? 절대 그럴 수는 없어! 나는 명예와 체면이 있어서 그런 행동은 하지 못해. 그래서 내 귓가에는 마치 전기면도기의 날처럼 윙윙거리며 날아오는 총알 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 총알들 사이로 계속 길을 걸어갔어. 그러면서 오래된 시구를 생각했어. 그게 누구의 시더라? "아, 죽음이여, 화살에 실려 조용히 오라."라는 시구였어. 나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멀쩡하게 그곳을 지났고, 뒤를 바라보지 않은 채 계속 걸어갔어. 호기심이란 악당들의 나쁜 습관이거든. - P34

도망친다고? 줄행랑친다고? 그건 내가 절대로 하지 않았던 행동이었어. 결코 말이야. 죽음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심부름꾼이거든. - P35

햇빛을 받은 그의 몸에서는 금빛 솜털이 반짝거렸어. 그러니 어떻게 내가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있겠어! 하나의 영상이 1000개의 단어보다도 더 가치 있다면, 우리 아이가 살아 있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게 있겠어! - P38

그 장소에서 떠나기 전에 나는 우글대는 구경꾼들을 슬쩍 쳐다보았어. 그들의 야비하고 천한 영혼 밑바닥부터 말할 수 없는 은밀한 기쁨이 용솟음치고 있었어. 심지어 나보다 더 행복해했어. 죽은 사람과 전혀 관계없는 그 사람들이 말이야. 오늘 먹을 게 없을지 몰라도, 이야깃거리는 있으니까 그랬을 거야. 적어도 오늘 그들은 벅차고 충만한 삶을 산 것이거든. - P40

그는 병을 땄고, 한 모금을 마시고서, 입에 머금은 술을 내게 주었어. 그렇게 나는 그의 입에 있는 술을 마셨고, 그는 내 입에 있는 술을 마셨어. 그렇게 어리석은 삶, 불가능한 사랑, 타인을 향한 증오를 두고 헛소리를 지껄이면서 큰 술병을 모두 비웠어. 그리고 다음 날 토사물 속에서 눈을 떴어. 그건 메데인, 그러니까 저주받은 도시의 악마들이었어. 우리가 그곳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삼켜버린 악마들이었어. 그들이 눈이나 귀, 코나 입으로 우리 안으로 들어왔던 거야. - P41

시간은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려. 심지어 관습까지도. 그래서 변화에 변화를 겪으면서 사회는 점차 유대감과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헤지고 누덕누덕 기운 침대보처럼 되어 버려. - P44

미래에 희망이 있으면, 현재는 아주 잘 흘러가거든. 과거에 대해 말하자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이 과거이고, 그것이 나를 지금 이렇게 지탱해주는 거야. - P53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계속 길을 갔어. 뛰는 건 좋지 않아. 뛰는 사람은 체면과 품위를 잃어버리고, 꼴사납게 엎어지고, 결국 체포되고 말아. 게다가 여기서는 오래전부터, 정말로 오래전부터 아무도 도둑을 뒤쫓지 않아.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어렸을 때는 천하고 시시한 보행자일지라도 법이라는 것의 보호를 받아 도둑놈 뒤를 쫓곤 했어. 하지만 오늘날엔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아. 그를 잡는 사람은 죽거든. 집단정신과 단체정신은 비열하고 야비하게 변했어. 겁쟁이 사냥개 같은 개자식들은 그걸 잘 알고 있어. 쫓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가만히 있으면서 아무것도 보지 마. 당신이 계속해서 보고 싶으면 말이야. 주변에는 경찰이 없었어. 아니 그들을 도와줄 경찰이 없었지. 세 개의 총탄이 내 아이의 쇳덩이에 있었고, 그래서 다른 세 명의 이마에 재의 십자가를 그릴 수 있었어. 우리는 죽기 위해 태어나거든.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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