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로 나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어. "다시는 거짓말하지 마." 네 엄마가 나에게 경고했거든. 그때 네 엄마에게 나머지 진실은 절대 말할 수 없으리란 걸 알았다. 말했다가는 나를 떠날 테니. 나는 내 이야기, 진짜 이야기를 내 안 가장 깊은 곳에 감춰 두었어. 그곳에서는 내가 여전히 이 언덕 위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던 어린아이였지. 내가 어디 출신인지는 절대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어. 말하지 않는 것일 뿐, 거짓말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어. - P231
사람이 어떤 행동을 왜 하는지 어떻게 알겠니? 그 순간을 머릿속에서 계속 되풀이해 보았지만 아직도 모르겠어. 자기 파트너 하고 무슨 내기라도 한 걸까? 담배가 지겨워져서 없애 버리려고 한 걸까? 덫 가장자리까지 와서 갑자기 움찔 경계하며 본능적으로 털을 곤두세우는 짐승의 행동 같은 것이었을까? 궁지에 몰리면 귀를 내리깔고 간사하게 사람 아기처럼 울음소리를 내는 재칼처럼 군 걸까? 외로웠던 걸까? 어리석었던 걸까? 친절했던 걸까? 그 사람들은 우리를 훑어보며 재 볼 때 머릿속으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 때문에 어떤 날에는 우리를 칭크라고 부르고 다른 날에는 그냥 내버려 두고 또 어떤 날에는 자선을 베푸는 걸까? 나는 모르겠다, 루시 걸. 아무래도 모르겠어. - P234
"넌 어디서 왔어? 저 사람들하고 같아?" 그날 밤 나는 반은 미친 상태였고 억눌러 놓은 진실이 배 속에서 출렁이고 있었어. 그러다 보니 말하게 됐지. "이 지역 출신이야. 여기서 멀지 않아." 그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어. 나는 그의 파이프를 입에 넣었어. 그의 담배를 급히 빨았어. 파이프 불빛 너머 지평선에서 아직도 불이 타고 있었어. 동물들이 달아났고 아마 영영 돌아오지 않겠지. 나는 파이프를 빨아 불빛을 내며 뭐가 웃기냐고 물을까 생각했지만, 그 사람을 비롯해 수천 명이 지난해 이곳에 와서 이 땅을 파괴하고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 한다는 게 떠올랐지. 저렇게 불타고 있는 게 원래는 내 땅이고 빌리의 땅이고 인디언들의 땅이고 호랑이와 버펄로의 땅인데—그때 네 엄마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정의. - P235
불의 생각은 달랐어. 불은 그냥 불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솟구쳤어. 거대한 짐승이 하늘로 솟아올랐어. 검은 연기 줄무늬가 있는 주황색 불꽃. 언덕에서 태어난 존재, 이 땅이 느끼는 분노에서 태어난 존재. 전혀 온순하지 않았지. 짐승을 궁지에 몰아 본 적이 있니? 생쥐조차도 최후의 순간이 오면 돌아서서 문단다. 죽을 게 확실하다 싶으면. 그 불꽃과 연기 속에서 루시 걸, 그 언덕이 정말로 호랑이를 낳았어. - P237
오랜 세월이 질문이 나를 따라다녔어. 어떤 사람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증오할 수 있나? 나는 그렇다고 생각해. 그럴 거야. - P238
정말 그랬을까? 베인 상처가 깊지는 않았는데 힘줄을 깔끔하게 끊어 버려서 그 뒤로 다시는 제대로 걸을 수 없었어. 피부는 아물었지만 내 안의 무언가, 어떤 본질이 베여 나갔어. 그 날카로운 상처가 우연히 생긴 걸까? 아니면 송곳니를 드러낸 포식자, 다른 모든 게 다 죽고 사라진 뒤에도 이 언덕을 지키는 짐승의 발톱 때문이었을까? 내 주머니 속의 비밀, 짤랑거리는 은에 대한 보복이 었을까? 호랑이의 얼굴을 직접 본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이야기가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아? - P242
네가 더 크면, 루시 걸, 때로는 아는 게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쁘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나는 엄마 소식을 알고 싶지 않았어. 엄마가 뭘 하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지, 다른 남자의 얼굴을 보면서 무얼 느끼는지. 나를 아프게 할 지도 위의 정확한 지점을 알고 싶지 않았어. - P245
나는 부(富)를 찾아냈으나 그게 내 손가락에서 미끄러져 갔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이 땅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냈다는 생각이 든다. 너랑 샘을 만들었으니까. 너희는 잘 자랐잖아? 나는 너희를 강하게 가르쳤어. 단단해지라고 가르쳤어. 살아남으라고 가르쳤어. 지금 네가 샘을 돌보고 내 시신을 제대로 묻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니 그 가르침이 헛되지 않았다 싶다. 그러니 미안해할 필요도 없겠지. 다만 더 오래 살아서 더 많이 가르치지 못한 게 아쉽다. 부족하나마 그걸 가지고 어떻게 해 봐야 할 거야. 지금껏 평생 그래 온 것처럼. 너는 똑똑한 아이니까. 이것만 기억해라. 가족이 무엇보다도 우선이야. 팅워.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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